끊이지 않는 아동학대…처벌은 ‘솜방망이’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5 08: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 어린이집서 아동 학대 의혹…경찰 수사

아동 학대 사건이 좀처럼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울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동 학대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5일 울산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최근 북구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는 4세 원생이 보육교사로부터 학대받은 것으로 의심된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됐다. 이 같은 사실은 피해 아동 부모가 지역 한 맘카페에 '아이가 새벽마다 잠꼬대를 하거나 끙끙대며 엄마를 찾는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면서 알려졌다.

피해 원생 부모라고 소개한 A씨는 "보육교사가 4살난 쌍둥이 아이들을 엉덩이, 머리 등을 때리고 온몸을 꼬집거나 휴대전화로 뺨을 때렸다"고 주장했다. A씨는 "아이들에게 물으니 화장실에서 맞았다고 했다"며 "화장실은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또 "아이들이 어린이집 이름, 선생님, 어딜 어떻게 맞았는지를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한다"고 했다. A씨는 자신의 아이들 외에도 피해 아동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작 피해를 입은 우리 아이들은 퇴소해 친구마저 잃었는데, 해당 교사는 여전히 근무하고 있다"며 한탄했다.

훈육이란 명목으로 자행되는 아동 학대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연합뉴스
훈육이란 명목으로 자행되는 아동 학대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해당 어린이집 CCTV 영상을 확보해 학대 정황을 확인하는 한편,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 등을 상대로 아동복지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 어린이집에서는 다른 아동도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사가 몸을 붙잡고 누른 의혹이 제기됐다. 학부모 측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이런 사실을 알렸고,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지난 2월에는 국공립 어린이집 아동 학대 의혹이 제기됐다. 울산중부경찰서는 30대 보육교사 2명과 원장 등 3명을 아동학대처벌법 등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만 1세반 교실 내 설치된 CCTV 영상 분량을 확보하고, 혐의 적용이 가능한 50여 건을 분류했다. 이 사건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한 아이가 선생님이 때렸다고 말하자, 학부모들이 CCTV 열람을 요구하면서 촉발됐다.

경찰 입회하에 어린이집에서 CCTV 영상을 본 학부모들은 보육교사가 아이의 팔을 잡아 질질 끌고 가고, 팔을 잡은 채로 아동 스스로 머리를 때리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한 원생은 교사 다리 사이에 끼인 채 20여 분 동안 앉아 옴짝달싹 못 하거나, 다른 아동은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벽에 붙어 서 있어야 했다. 또 교사가 낮잠 시간 아동의 이불이나 베개를 뺏어 던지기도 했다고 학부모들은 설명했다.

한 어린이집에서 긴급보육을 마친 어린이와 학부모가 집으로 가고 있다ⓒ연합뉴스
한 어린이집에서 긴급보육을 마친 어린이와 학부모가 집으로 가고 있다ⓒ연합뉴스

영상 속 교사들의 행동이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단순 훈육 차원인지 여부를 놓고 조사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신체적 학대를 넘어 정서적 학대까지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경찰은 이달 말쯤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전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은 "아동 학대 사례 대부분은 아이의 잘못을 고치기 위한 훈육이었다고 설명한다"며 "잘못은 때려서라도 가르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학대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울산 아동 학대 검거, 3년 만에 두 배 증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울산지역에서 최근 4년여 동안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건수가 768건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 115건, 2017년 159건, 2018년 189건, 2019년 230건, 2020년 5월 기준 75건 등이다. 특히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검거 건수가 꾸준히 증가해 3년 만에 두 배로 증가했다. 이는 전국 아동학대 건수 증가율인 51.8%보다 훨씬 가파른 추세다. 

아동 학대 신고도 급증하고 있다. 울산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아동학대 신고는 547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449건보다 98건(21.8%)이나 증가했다. 특히 신고 의무자가 아닌 일반인의 신고는 457건으로, 지난해 332건보다 125건(37.7%)이나 크게 늘었다. 울산시는 적극적인 아동학대 신고 홍보 활동으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 신고 의무자가 아닌 일반인의 신고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동 학대 신고가 늘어나면서 피해와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실제 남구의 한 어린이집 교사였던 B씨는 지난해 11월말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돼 몇 개월 동안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중순 검찰로부터 ‘불기소 처분’ 통보를 받았다. 경찰의 기소의견에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해당 교사는 어린이집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또 실명 등 신상이 노출되면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다. 해당 어린이집도 맘카페에서 이름이 공개됐고, 학부모들의 항의로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결국 쫓겨났다. 정신적·물질적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해당 교사는 신고를 한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법적 대응 여부를 검토 중이다.

울산 북구가 어린이집 원장 대상 아동학대 예방 교육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있다ⓒ울산 북구청
울산 북구가 어린이집 원장 대상 아동학대 예방 교육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있다ⓒ울산 북구청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처벌 강화 필요

학부모들은 아동 학대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아동학대 범죄를 처벌하는 기본법인 아동복지법은 2000년, 2006년, 2017년 등 세 차례에 걸쳐 개정되면서 매번 처벌이 강화됐다. 성학대의 경우 법 제정 당시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이었지만, 2000년 개정 때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된 데 이어 2006년 5000만 원, 2017년에 1억 원으로 벌금 상한선이 꾸준히 높아졌다.

하지만 처벌 수준은 제자리걸음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 받은 비율은 2018년 기준 각각 46.5%, 27%에 달한다. 반면 실형을 선고 받은 비율은 13.6%에 그쳤다. 

훈육이라고 하지만 폭력은 폭력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체적·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이는 폭력이나 따돌림 등 학대에 노출되면 큰 상처를 받고, 그 상처의 트라우마는 평생 지속된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는 동심을 멍들게 한다.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할 때 보다 강도 높은 처벌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만 강력과 처벌과 함께 어른들이 어린이 인권 보호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동문학가 방정환은 100년 전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봐 주시오"라고 했다. 아이들을 올려다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할 때 아동학대는 사라진다는 전문가 의견이다.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은 "정부와 국회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실천하는 입법을 통해 아동권리 실현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