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의사들의 경고 “트윈데믹, 최악의 가을 온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8 14:00
  • 호수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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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독감 동시 발생하면 의료체계 마비⋯“겪어보지 못한 최악 상황 대비해야”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초기부터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코로나19 가을 대유행이 임박했다. 그야말로 폭풍 전야다.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였던 8월23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400명에서 세 명이 모자란 397명을 기록했다. 이후 세 자릿수를 이어가고 있다. 수도권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은 전국으로 퍼졌고 무증상 감염도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러스 생존에 유리한 조건(낮은 기온과 습도)을 갖춘 가을을 맞게 됐다. 가을에는 일교차가 큰 까닭에 사람의 면역기능도 떨어져 감염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또 추석을 계기로 9월말~10월초 대규모 인구 이동이 예견되면서 코로나19 대유행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독감까지 유행하는 계절이어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twindemic·두 팬데믹이 동시에 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한 지역에서 감염병이 확산하는 가운데 또 다른 감염병이 겹치는 것을 이중 풍토병(double endemic)이라고 한다. 지난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에볼라와 동시에 홍역이 유행한 것이 그런 사례다. 코로나19와 독감은 모두 호흡기 감염 질환이면서 열·기침·인후통 등 증상까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해서 트윈데믹이라고 부른다.

트윈데믹이 발생하면 코로나19와 독감 환자가 뒤섞이거나 두 바이러스에 동시 감염된 사람도 생겨 의료체계가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정진원 중앙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가을과 겨울에 다시 코로나19 감염이 증가하면서 독감 등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가 같이 유행하는 상황이 되면 최악”이라고 전망했다. 

트윈데믹 경고가 나오는 이유는 가을철 온도와 습도가 낮아지는 환경에 있다. 온도가 낮고 건조할수록 바이러스 전파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미국 메릴랜드 의대 연구진은 올해 1~3월 코로나19 유행 도시 50곳을 조사했다. 그 결과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한 도시는 북위 30~50도에 위치하며, 평균 온도가 5~11도이고, 습도는 44~84%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지난 6월 이 결과를 국제 학술지(JAMA)에 발표하면서 “3월10일 기준으로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하고 있는 지역이 북위 30~50도에서 마치 띠를 이루듯 위치해 있었다. 기온도 5~11도 정도로 대체로 초겨울 날씨를 보였다. 이는 코로나19가 기온 4도, 습도 20~80%인 환경에서 최적의 감염력을 보인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건조한 가을에 비말 더 작아 멀리 퍼져

특히 습도가 코로나19 전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됐다. 습도가 1% 떨어질 때마다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7~8% 늘어난다는 내용이다. 호주 시드니대학 연구팀은 이와 같은 보고서를 최근 의학 학술지(국가 간 신종 질병)를 통해 보고했다. 연구팀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서 올해 1~5월까지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와 습도 간 연관성을 분석했고 건조한 환경에서 바이러스의 감염력이 커진다는 결론을 얻었다.  

건조한 환경에서는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비말이 더 작아져 공기 중에 오래 떠 있고 멀리 이동할 수 있다. 반대로 습도가 높으면 비말이 더 크고 무거워지므로 빨리 땅으로 떨어진다. 코로나19와 독감 모두 비말이 주요 감염 경로다. 보고서 저자인 마이클 워드 시드니대학 수의학과 교수는 “작은 비말은 공기 중에 더 오래 머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마스크를 쓰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마스크를 쓰면 부유하는 침방울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을은 일교차도 커서 사람의 면역기능이 떨어지기 쉽다. 우리 몸은 체온 변화에 매우 민감해 1도만 떨어져도 정상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피부나 근육 등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상대적으로 면역세포에 관여하는 에너지가 부족해지면서 면역체계가 무너진다. 또 실내 난방을 하면 기관지 점막이 건조해져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몸 상태가 된다. 

코로나19나 독감에 걸렸을 때 가장 우려되는 합병증은 폐렴이다. 폐렴도 추운 시기에 증가한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8년 폐렴 환자 수는 겨울에 28.8%로 가장 많았고 여름에 18.4%로 가장 적었다. 

코로나19와 독감 바이러스는 전혀 다르지만 두 감염병 모두 비말로 전파되는 중증 호흡기질환이다. 고열·두통·기침 등 증상이 비슷해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또 심하면 산소호흡기 등을 이용해 집중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점도 같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열이나 기침 등 이상 증상을 보였을 때 증상만으로는 코로나19와 독감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에 대비해야 한다. 예컨대 코로나19와 독감을 동시에 검사할 수 있는 이중진단키트가 있어야 각각의 치료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가을에는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가 유행할 가능성도 있다. 이 바이러스는 6세 미만 소아에게 폐렴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이다. 세마 닉백쉬 영국 글래스고대 교수는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게 RSV에 대한 민감성을 높일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고 과학 저널(사이언스)에서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올 하반기에 독감 유행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올해 3월 가을로 접어든 남반구 국가들은 트윈데믹을 우려했으나 가을과 겨울을 지나온 이들 국가에서 독감 유행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지난해 5007건이던 칠레의 독감 건수는 올해 12건으로, 호주의 독감 건수는 같은 기간 9933건에서 33건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코로나19에 대한 예방 차원에서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등 개인위생을 잘 지켰고 대규모 독감 백신 접종이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호주에서는 국민 80%가 독감 백신을 접종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가 유행한 올해 초 독감이 크게 유행하지 않았다. 

남반구와 달리 북반구는 독감 유행 위험

이와 같은 남반구의 전례가 북반구에서도 똑같이 재현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남반구에서 독감 유행이 적은 것으로 집계된 배경에는 병원이 문을 닫았거나, 독감 진단을 거의 하지 않았거나, 코로나19 진료에 집중했거나, 가벼운 증상을 보인 독감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았을 가능성 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반구는 세계 인구의 90%가 집중돼 있다는 것도 남반구와 다른 점이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등 남반구 국가에서 예년과 비교해 계절성 독감 환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처럼 독감이 줄어들면 의료체계가 감당할 만하다. 그러나 현재 북반구의 코로나19 유행 상황은 남반구보다 심각한 데다 인구가 많고 국가 간 교류도 빈번해 안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인플루엔자협력센터의 존 맥컬리 단장도 “올해 10~12월에 사회적 거리 두기나 폐쇄 조치 등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독감은 남반구보다 더 쉽게 북반구에서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윈데믹이 현실로 닥쳤을 때 최악의 시나리오는 코로나19와 독감 동시 감염자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특히 독감에 걸리면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일반인보다 코로나19에 취약해진다. 따라서 독감과 코로나19에 모두 감염되는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 호주 멜버른에 있는 WHO 공동연구센터의 이안 바 부소장은 “코로나19와 독감에 동시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1종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 2~3종류 바이러스에 한꺼번에 걸리는 게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베일러 의대의 플로 커누즈 교수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에 걸려 폐에 심한 손상을 입은 사람이 독감에 걸리면 치명적일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와 독감 바이러스의 상호 작용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지만 동시 감염이 가능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시각이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프랑수아 발루 교수는 “가설이긴 하지만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독감과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동시 감염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독감 시즌까지 겹치면 의료계 수용력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윈데믹 상황 맞으면 의료체계에 과부하

동시 감염자가 발생하는 트윈데믹 상황이 될 경우 의료체계가 마비될 수 있다. 로버트 레드필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8월12일 언론을 통해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발생하면 병원 시스템이 많은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방역수칙을 잘 지키지 않을 경우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가을이 될 수 있다”며 트윈데믹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미 의료체계에 부담이 된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8월23일 확진 판정을 받은 60대 여성(경기도 거주)은 호흡기를 달 정도로 증세가 좋지 않아 의료진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이송이 미뤄졌다. 가까운 병원에 중환자 병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 한 병원에 있는 다른 환자를 경기 남부 지역으로 이송하고 나서야 이 여성을 병상으로 옮길 수 있었다.

병상 부족 상황을 돌려막기식으로 버티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감 환자까지 늘어나면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와 뒤섞이면서 서로에게 전파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코로나19 환자가 들어찬 병원이 독감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사태도 우려된다. 실제로 지난 3~4월 미국 뉴욕에서는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자 40도 이상 고열과 청색증(산소 부족으로 입술 등의 점막이 파랗게 변하는 증상)이 없으면 병원에 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의료체계가 마비된 바 있다. 

인공호흡기·산소치료 등을 받는 국내 중증환자는 8월12일 15명에서 27일 46명으로 3배 증가했다. 신규 확진자 가운데 중증으로 진행할 위험이 큰 60대 이상 연령층은 33%를 넘어섰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중증환자 병상에 여유가 있다(8월23일 기준)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의료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대한중환자의학회에 따르면 중환자실 병상 20개를 운영하려면 의사는 최소 16명, 간호사는 이보다 10배 많은 160명이 있어야 한다. 병상뿐만 아니라 의료 인력과 장비를 갖춰야 하는 문제가 있어 사실상 병상 가동에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국립중앙의료원은 서울시·인천시·경기도와 연합한 ‘코로나19 공동대응상황실’을 설치하고 수도권 환자의 중증도 분류와 병상 배정, 전원 조정에 착수했다. 주영수 코로나19 공동대응상황실장은 8월25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코로나19 공동대응상황실·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전체 수도권 병상 수는 85개인데 8월24일 기준 인력·장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가용 병상은 7개 정도”라고 밝혔다. 

지금 상황이면 9월 중환자 100명 이상 발생

8월15일 광복절 집회 때 서울 광화문에 모인 사람 가운데 70대 남성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중환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공동대응상황실은 8월말 코로나19 중환자가 급증하면서 병상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 실장은 “증상 발생 후 중환자실로 옮겨지기까지 5일 정도 소요된다. 5일의 시간 차이를 고려할 때 가장 많은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건 8월30일 전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면 9월초 중환자 수는 100명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신종감염병중앙임상위원회는 8월25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확진자 수가 그동안의 평균인 225명씩 증가할 것이라고 가정하면 9월1일 중환자 수는 134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히고 병상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재갑 교수는 “가을에 코로나19와 독감이 섞이는 상황이 오면 매우 힘들어진다. 코로나19와 독감의 공통적인 합병증은 폐렴이다. 병원이 독감 환자로 넘쳐난 지난해처럼 올해도 독감이 유행하면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하면 코로나19와 독감 모두를 잡을 수 있지만 그렇게 못 하면 둘 다 유행한다”고 경고했다. 

ⓒDPA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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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달라진 독감 백신 접종 대상자와 시기 

코로나19와 독감이 올가을 동시에 유행할 경우에 대비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독감 백신 출하량을 약 2700만 명분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2500만 명분보다 200만 명분 늘어난 수치다. 독감 무료 백신 접종은 9월부터 가능할 전망이다.
올해 독감 백신 ‘무료 접종 대상자’가 대폭 늘었다. 지난해 1381만 명보다 519만 명 늘어난 1900만 명이다. 무료 접종 대상자는 작년까지 만 65세 이상, 임신부, 생후 6개월·12세 어린이였지만 올해는 생후 6개월~18세로 확대돼 중ㆍ고등학생도 무료 접종 대상이 됐고 만 65세도 만 62세로 낮췄다. 

올해는 3가 독감 백신뿐 아니라 4가 백신도 무료로 맞을 수 있다. 3가와 4가는 백신에 포함된 바이러스 종류에 따라 구분되는데 3가는 2종류의 A형 바이러스와 1종류의 B형 바이러스가 들어 있고 4가에는 B형 바이러스 1종류가 추가된다.

일반적으로 A형 바이러스가 유행하지만 B형도 약 25%를 차지한다. B형 바이러스로 인한 입원과 사망도 전체 독감의 16%에 이른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WHO)는 2013년부터 4가 독감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 대한감염학회도 4가 독감 백신의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백신은 접종 2~3주 후에 면역력이 생기고 약 6개월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에 유행 전인 9~12월에 맞는 게 좋다. 전문가들은 독감 백신을 11월까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접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갑 교수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11월까지 백신을 접종하면 겨울철 코로나19가 재유행하더라도 의료체계가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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