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 “마스크 써? 말아?” 답답한 프랑스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9 14:00
  • 호수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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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정국에서 ‘패닉’ 상황 키우며 우왕좌왕… 곳곳에서 폭력 사태도 발생

PSG, 파리에 연고를 두고 있는 축구팀 ‘파리생제르맹 FC’의 약자다. 8월23일 일요일 파리 시내 일대엔 PSG의 응원 깃발이 나부꼈다. PSG 축구팀이 창단 50년 만에, 그리고 프랑스 리그팀으로는 26년 만에 유럽 챔피언스리그(UEFA) 결승전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결승전이 열린 날, 샹젤리제에 위치한 PSG 공식 매장은 결승전에 맞춰 유니폼을 구입하려는 팬들로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덩달아 프랑스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평상시라도 극성스러운 팬들의 운집으로 사건·사고가 날 것이 불 보듯 뻔했는데 올해는 코로나19까지 겹쳐 운집 자체를 막아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결승전은 8월23일 저녁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다. 결과는 파리생제르맹의 적수였던 독일팀 바이에른 뮌헨의 1대0 승리였다. 후폭풍은 거셌다. 파리는 결승전보다 더 뼈아픈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바로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벌어진 약탈·방화 등 소요 사태를 막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 보수정치인이 설립한 인기 테마파크 ‘퓌 뒤 푸’에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 상황에서 정부가 예외적으로 이곳에 9000여 명의 입장을 허용해 논란이 됐다. ⓒXinhua
프랑스 보수정치인이 설립한 인기 테마파크 ‘퓌 뒤 푸’에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 상황에서 정부가 예외적으로 이곳에 9000여 명의 입장을 허용해 논란이 됐다. ⓒXinhua

마스크 착용 둘러싼 사건·사고 계속 발생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들에겐 ‘공염불’에 불과했다. 지난 2년간 잊을 만하면 반복되던 샹젤리제 거리의 방화와 소요 사태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됐다. 고급 상점 12곳의 진열장이 파괴됐으며 매장 물건들은 약탈됐다. 자동차 15대가 불에 탔다.

“왜 저 불한당들을 벌주지 못하는 것인가.” “샹젤리제 집회를 왜 금지하지 못하는가. 안 하는 것인가.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인가.” 한 시민의 발언이 아니다. 샹젤리제 관할구청인 파리 8구의 잔 도트세르 구청장의 성토 발언이다. 집권여당이 아닌 야당 소속 단체장이기는 하지만, 정부의 무능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넘게 이어진 노란조끼 시위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자신의 지역구 상인들이 일할 의지조차 잃어버리는 상황에처하자 폭발한 것이다.

코로나 위기라는 엄중한 상황에도 프랑스 사회의 폭력 사태와 반사회적 사건·사고들은 멈추지 않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코로나 사태를 막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인 마스크 쓰기에서조차 정부를 비웃듯 일탈하는 행위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7월8일 프랑스 남서부 바이욘주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승차하던 20대 청년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버스기사가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 딸의 아버지인 필립 몽기요는 폭행 직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에 옮겨졌으나 뇌사 상태에 빠졌다. 급기야 5일 후 가족들의 결정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면서 사망했다. 사고 당시 버스에 탑승하고 있던 한 목격자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버스 안에는 4명의 젊은 여성밖에 없었다. 너무 두려워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바이욘 시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폭력 사건에 분개했다. 사건 발생 3일 뒤인 8월10일 6000여 명이 모여 침묵시위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분노에도 유사한 사건은 멈추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파리 근교 세탁방에서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한 시민이 야구방망이를 든 다른 시민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어린 두 아이와 동반했던 피해자는 세탁방에 적시된 대로 마스크 착용을 요구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당시 장면이 녹화된 CCTV 화면이 그대로 전파를 타면서 여론은 분노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8월11일에는 파리 근교 생드니 지역의 버스 안에서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간호사가 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대통령 측근 운영 시설에만 입장객 특혜?

이처럼 코로나19에 대한 기본적인 방역에서조차 정부의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애초에 정부가 마스크 착용에 대한 혼란과 불신을 야기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태 초기 보건부 장관은 “마스크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로나 사태가 악화하자 이동제한령을 내리면서도 지방선거는 예정대로 치르는 역설적인 태도도 보였다. 무엇보다 보건부 장관을 교체해 파리시장 후보로 투입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여전히 확진자가 매일 4000명대를 돌파하는 확산 추세에도 프랑스 정부는 안이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8월15일 테마파크인 ‘퓌 뒤 푸(Puy du Fou)’의 입장객 특혜를 두고 한 차례 논란이 촉발됐다. 공연장 및 행사장 운집 인원을 5000명 이하로 제한한다는 정부 발표에도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높은 테마파크인 ‘퓌 뒤 푸’만은 이날 저녁 행사에 9000여 명 입장을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퓌 뒤 푸는 프랑스 보수정치인이자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시절 문화부 장관을 지낸 필립 드빌리에가 프랑스 서쪽 방데에 설립한 테마파크다. 이곳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대권 도전을 선언한 후 찾아간 첫 방문지이기도 하다. 대통령과 각별한 인사와 관련된 이곳에만 입장객 제한이 풀린 것을 두고 문화계에선 의혹 제기와 성토가 이어졌다. 최근 문화부 장관에 입각한 로즐린 바슐로는 대통령과는 전혀 무관한 결정이라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 결정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마무리되고 개학과 새로운 하반기가 시작되는 9월을 앞두고 프랑스 사회에선 코로나와 관련해 어느 것 하나 깔끔하게 합의되고 정리된 방침이 없다는 지적과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직장 내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결정하기까지 일주일 넘게 논박이 진행됐다. 개학을 앞둔 학교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겨울철 유아들의 감기 유행을 앞두고, 코로나와 유사한 감기 환자를 미리 막기 위해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는 의사들의 주장은 학부모들의 반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병원마다 확진자들로 가득한 상황에서도 임산부들의 병상 분만만을 강조하는 등 곳곳에서 갑갑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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