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쇼크] “전광훈, 순수 목사로 돌아오라, 그래야 교회가 산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1 10:00
  • 호수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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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담임목사직 조기 은퇴 후 사회봉사 나선 정성진 거룩한빛광성교회 은퇴목사

“저는 설거지 전문이에요. 대형 교회 목사님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던 이 한국교회봉사단 이사장 자리도 지금 누가 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하고 있거든요. 한국 교회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이지요.”

정성진 거룩한빛광성교회 은퇴목사는 자신의 사회활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 목사는 지난해 11월 25년간 활동해 온 담임목사(은퇴 직전 직책은 위임목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통상 20년 넘게 담임목사를 지내면 원로목사가 되는 게 관례인데, 그는 정년 1년을 앞두고 아예 은퇴를 선택했다. 자연히 교회로부터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한다. 퇴직금 1억원마저 교회에 헌금했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등 동년배들이 여전히 교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과 정반대다. 그러고는 곧장 사단법인 ‘크로스로드’를 세워, 다음 세대 목회자들을 양성하고 미자립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힘쓰고 있다. 원로목사 폐지 외에도 개척 당시 약속한 담임목사·장로 65세 정년제, 가용 예산의 51% 구제·선교에 사용, 헌금명세서·회계보고서 공개도 모두 지켜냈다. 목회 기간 동안 분리·독립시킨 지교회만 24곳이다.

ⓒ시사저널 최준필

“목사 자신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

보수적 신앙관을 갖고 있지만, 학창 시절 민중신학을 공부했기에 정 목사의 인적 네트워크는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우른다. 최근 논란이 된 전광훈 목사와도 한때 가깝게 지냈다. 그러기에 전 목사를 향한 비판의 날도 날카롭다.

그는 지난해 통일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해 민통선 해마루촌에 자유당(自流堂)이라 이름이 붙은 작은 교회(해마루광성교회)를 세웠다. 8월23일 이곳에서 그는 동네 주민 3명과 예배를 드렸다. 출석 성도 1만4500명에, 한 해 쓰이는 예산만 100억원인 경기도 고양시 초대형 교회 출신 목사치고는 아주 소박하다.

정 목사의 목회 철학은 ‘아사교회생(我死敎會生)’이다. 직역하면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뜻이다. 평소 그는 후배 목사들과 만날 때마다 “교회가 교회답고, 목사가 목사다우려면 날마다 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개신교가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정 목사는 “초기 기독교 신앙의 야성을 잃어버리고 외형적 성장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8월26일 오전 인터뷰차 방문한 서울 연지동 사단법인 크로스로드에 있는 그의 집무실 책상 한편에는 정 목사 자신이 쓴 ‘성공보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하여’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최근 한국 개신교가 위기라고 말하는데 공감하나.

“솔직한 성격이라 돌려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 한국 교회는 내리막길이다. 지표상으로는 1995년 이후부터 시작됐다. 2015년 통계를 보면 절대 종교인 수는 늘어났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960만 명 정도라고 이야기했는데 그중 200만 명 정도가 빠져나갔을 것이다. 젊은 성도들의 유입도 줄었다. 전광훈 사태로 젊은 남성들이 많이 돌아섰다.”

비단 개신교만의 문제일까.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생각하면 나름 선방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을 보면 ‘마(魔)의 고지’가 3만 달러더라. 복지가 종교를 대신하면서 성도 수가 줄어든 것은 비단 우리 기독교만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엄청나게 다이내믹했는데, 그게 줄어 걱정이다.”

위기에 처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경제성장 시대에 수비형 목회를 한 게 가장 큰 잘못이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세상과 교회가 구분이 없었다. 그러니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웠던 것이다. 그랬기에 2%의 기독교인이 민족종교의 주체가 된 것 아니겠는가. 3·1운동의 시작을 알린 33인의 민족 대표 중 16인이 기독교인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자만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세상에 봉사를 많이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직도 60% 정도가 기독교 재단이다. 절대량에선 우리가 많지만, 천주교처럼 세상에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기에 안타깝다.”

초대형 교회의 등장도 수비형 목회라고 봐야 하나.

“시골에 살다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에게 교회가 의지할 곳이 됐다. 그때는 교회로 정말 사람들이 몰려 들어왔다. 몰려 들어온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교회가 급급하다 보니 초대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목회자들이 야성을 잃어버렸다. 내가 빨리 은퇴하고 목회자 교육기관을 세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옛날에는 1000명 목회를 꿈꿨다면, 이제는 10명 목회를 생각해야 할 때다.”

현실적으로 목회자들의 삶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신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사명감 외에는 답이 없다.”

전광훈 목사의 행동을 어떻게 보는가.

“멈추지 못하는 ‘폭주 기관차’가 결국 전광훈 스스로만 망친 게 아니라 한국 기독교 전체를 망하게 했다. 친했던 사람이라 잘 안다. 저 친구(전광훈 목사)의 용기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런데 정치적 발언을 하려면 정치로 갔어야지.”

어떻게 해야 한국 교회가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철저한 자성부터 필요하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분열됐던 기관들이 하나 돼야 한다. 최소 30년 이상 세상을 섬겨야 회복될 것이다.”

전광훈 목사는 지금도 기독교 정당을 꿈꾼다.

“과거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독교 정당 건설을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내가 전광훈 목사를 깼다. 기독교 정당이 생겨선 안 되는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우리가 성공해 2석을 얻었다 치자. 그러면 불교당도 나오고, 천주교당도 나올 거고 그걸로 자연스럽게 종교 평화는 깨진다. 그 일로 나와 결별했다. 따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거칠게 되면서 전광훈 목사는 자연스럽게 변질됐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유명 부흥사로 아주 잘하고 있었던 사람이다.”

전광훈 목사에게 조언한다면.

“순수 목회자로 돌아와야 한다. 정치적으로 각광받는 건 허상이다. 예수가 로마에 대항했더라면 그 시대에는 슈퍼스타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한 슈퍼스타가 된 것은 십자가를 졌기 때문이다. 목사는 정치인을 길러낼 사명은 있지만, 정치에 나설 사명은 없다. 국가와 종교는 하나면서 어떤 면에선 둘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와 지상의 나라, 두 나라를 섬긴다. 내 목회 철학 중 하나가 민주사회 일꾼을 길러내는 것이다.”

방역 당국에 당부할 말이 있다면….

“코로나19 방역에 종교를 이해하고 대해 줬으면 좋겠다. 종교는 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 이를 인정하고 협조를 당부해야지 ‘종교라고 예외가 아니다’며 강압적으로 대해 안타깝다. 행정명령, 벌금 등 이런 것부터 말하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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