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다시 태어난 ‘청년 김구’
  • 이정용 인천취재본부 기자 (teemo@sisajournal.com)
  • 승인 2020.08.30 12:00
  • 호수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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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를 따라 걷는 탐방로 조성
인천감리서 수감·탈출 과정 게임 체험도

청년 시절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 ~1949) 선생의 이름은 김창수(金昌洙)였다. 그는 스물한 살이던 1896년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국모보수(國母報)’의 명분으로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있던 일본인 스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죽였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황해도 해주 감영(監營)에 체포됐다. 그에겐 도적질을 위해 일본인을 살해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그는 1896년 8월초 인천감리서로 이감됐다. 그의 아버지(김순영), 어머니(곽낙원)도 인천으로 생활 터전을 옮겨 아들의 옥바라지를 했다. 이때 ‘청년 김구’와 인천의 인연이 시작됐다.

청년 김구는 재판에서 “왜놈을 살해한 건 사실이다. 하나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함이었지 재물을 강탈한 일은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가 살아서는 이 몸으로,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맹세코 일본의 임금을 죽이고, 이 강토를 더럽힌 왜놈들의 씨를 남기지 않고 다 죽여서 우리나라의 치욕을 씻고야 말겠다”고 호통쳤다.

백범 김구 선생(오른쪽)이 청년 시절 수감됐던 인천시 중구 내동 옛 인천감리서 모습 ⓒ인천시중구제공
백범 김구 선생(오른쪽)이 청년 시절 수감됐던 인천시 중구 내동 옛 인천감리서 모습 ⓒ인천시중구제공
백범 김구 선생이 청년 시절 수감됐던 인천시 중구 내동 옛 인천감리서 모습 ⓒ인천시중구제공
백범 김구 선생이 청년 시절 수감됐던 인천시 중구 내동 옛 인천감리서 모습 ⓒ인천시중구제공

인천, 청년 김구 발자취 재조명

결국 그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고종이 ‘친칙21’을 내려 사형집행을 중지시켰다. 그날 이후 청년 김구를 죄인으로 지칭하는 곳은 없었다. 그는 1898년 3월19일 탈옥했다. 이 때문에 아버지 김순영옹이 아들을 대신해 1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청년 김구는 1911년 8월 ‘안악사건’과 ‘105인 사건’에 연루돼 다시 구속됐다. 당시 그는 애국 문화운동에 힘쓰고 있었지만, 일본경찰은 그에게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무관학교 설립자금 모집에 참여하고 데라우치 마사타케(寺正毅) 총독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그는 이 사건으로 15년형을 받고 서대문감옥소에 투옥됐다가 1914년 인천감옥소로 이감됐다. 청년 김구와 인천의 두 번째 고달픈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인천감옥소에 수감된 후 매일 쇠사슬에 묶인 채 인천 축항공사 현장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1915년 8월 가석방됐다.

인천시 중구는 청년 김구와 인천의 인연을 추억하고 있다. 또 그 추억을 ‘청년 김구 역사거리 조성사업’에 담아내고 있다. 이 사업은 2018년 12월28일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청년 김구 역사거리는 신포동 문화의 거리 로터리에서 성신아파트 앞에 이르는 약 200m 구간이다.

중구는 이 거리를 ‘현재-백범 김구를 만나다’와 ‘과거Ⅰ-청년 김구, 김창수를 만나다’ ‘과거Ⅱ-다시 돌아온 김구’ 등 3가지 테마로 조성할 방침이다. 현재 영역에는 ‘백범 김구의 일대기를 돌아보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상징조형물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 백범 김구와 교감할 수 있는 대형 벽화도 마련된다. ‘과거I’ 영역은 청년 김구의 첫 수감과 조력가, 죽음을 각오한 탈출, 투옥 체험 공간 등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과거Ⅱ’ 영역에서는 노역자 김구와 또 다른 애국지사로 김구의 아버지 김순영옹과 어머니 곽낙원 여사를 소개한다.

중구는 2021년 12월까지 청년 김구가 수감됐던 인천감리서 터(내동 83-5)에 쉼터도 조성한다. 이곳에는 신포스카이타워가 들어서 있다. 중구는 42억6000만원을 들여 이 건물의 2층을 매입해 교육이 가능한 휴게공간을 만들 예정이다.

앞서 중구는 《백범일지》에 나타나 있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청년 김구의 길 탐방로’를 조성해 놓았다. 이 탐방로는 ‘어머니의 길’과 ‘고난의 길, ‘나라사랑의 길’로 구성됐다.

어머니의 길은 물상객주 박영문·안호연의 집에서 인천감리서 삼문 터까지의 ‘옥바라지 길’이다. 청년 김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물상객주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인천감리서에 수감돼 있는 아들의 삼시세끼를 챙겨준 일화를 소개한다.

 

온라인 게임 ‘인천크래프트’로 김구 탈출 체험

고난의 길은 청년 김구가 인천 축항공사 현장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축항노역 길’이다. 축항 강제노역의 고통은 《백범일지》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그는 “불과 반일에 어깨가 붓고 등창이 나고 발이 부어서 운신을 못 하게 됐다. 그러나 면할 도리가 없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사다리로 올라갈 때 여러 번 떨어져 죽을 결심을 했다”고 적었다.

나라사랑의 길은 청년 김구의 ‘탈옥 길’이다. 《백범일지》에 나타난 탈옥 여정을 살펴보면, 용마루터기와 천주교당 뾰족집(현재의 답동 성당), 화개동(신흥동), 화개동 마루터기, 경인가로 등이 기록돼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청년 김구 역사거리와 김구의 길 탐방로는 역사와 문화, 도시재생이 융합된 프로젝트”라며 “중구에 숨겨져 있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재조명해 원도심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시는 청년층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에 ‘인천크래프트’를 구축한다. 인천크래프트는 마인크래프트에 가상의 인천시를 만들어 온라인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여행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천시는 인천크래프트 이용자들이 청년 김구가 인천감리서를 탈출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콘텐츠는 8월29일부터 인천시 유튜브 채널과 ‘양띵’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다. 여기에서 양띵이 청년 김구가 되고, 양띵 크루와 게임 이용자 10여 명이 일본 헌병 역할을 맡는다. 이 콘텐츠 속 청년 김구는 숫자나 단어 등을 맞히는 미션을 통해 일본 헌병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인천감리서를 탈옥해 답동성당과 해광사를 거쳐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탈출하는 시나리오로 구성돼 있다. 미션을 수행하는 경로는 실제로 청년 김구가 탈옥한 인천감리서 주변지역이다. 인천시는 국내 최초로 100만 구독자를 확보한 양띵과 양띵 크루가 참여하는 데다 역사적 사실과 재미가 반영된 만큼 청년층의 참여와 소통이 두드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누구나 청년 김구가 돼 인천감리서 탈출을 체험하고, 주변지역을 여행할 수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도시 마케팅에 활용한 최초의 사례”라며 “많은 게이머가 청년 김구의 탈출 경로를 따라가면서 역사를 체험하고, 인천의 문화유산을 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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