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시키든지 당하든지 하라”…장성군수, 공무원에 갑질 논란
  • 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8.3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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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석 장성군수, 군청 공무원 A씨에 “집 지붕 색깔 노랗게 칠해라” 권한 밖 지시 논란
주민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발상”…“윗선 수사 불가피”
유 군수, 본지 취재 요청에 “별도로 할 말 없다”

“굴복시키든지 굴복당하든지 하라.”

이른바 서열 ‘1번’인 전남 장성군수가 휘하의 6급 군청 공무원 계장에게 내린 명(命)이다. 한 공무원이 집 지붕을 노랗게 칠하라는 군청의 지시에 불응하자 빨리 승부를 내라는 취지에서다. 최근 ‘군수 갑질’ 논란에 휩싸인 장성군수가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려고 부하 직원에게 사실상 하명(下命)을 내린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군수 갑질 논란의 새로운 국면으로, 만약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지붕과 울타리가 노란색으로 칠해진 전 장성군 공무원의 집 ⓒ해당공무원 제공
지붕과 울타리가 노란색으로 칠해진 전 장성군 공무원 A씨의 집 ⓒA씨 제공

‘슈퍼갑(甲)’ 하명 받은 계장

장성군 전 공무원 A씨는 최근 시사저널과 만나 “군청 L 계장(현재 과장)이 지난해 11월 중순 ‘1번’이 자신에게 A가 마음에서 우러나게끔 굴복시키거나 아니면 굴복당하라고 지시했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1번’은 군청 내에서 유두석 군수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A씨는 “당시 이 말을 듣는 순간 군수 지시를 어기면 후환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쭈뼛 서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결국 A씨는 한 달여 후 자신의 집 지붕을 노란색으로 칠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날 유 군수의 발언은 A씨의 집 지붕 색칠 건에 대해 L 과장에게 하명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는 게 관가 주변의 대체적 시각이다. ‘굴복시키든지 또는 굴복당하든지’ 두 개의 선택지 중 ‘굴복당하라’고 지시할 상급자가 어디에 있겠느냐는 반문이 더 설득력을 얻어서다. 또한 유 군수가 이후 A씨에게 수차례에 걸쳐 지붕과 처마에 노란색을 칠했냐고 추궁하듯 말한 정황을 봐도 ‘굴복시키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는 것이다. 

 

계장, ‘당근·채찍’ 양면 전략 

실제 군수로부터 지시를 받은 L 과장이 위로와 회유를 넘나들며 개입한 흔적이 나타난다. 올해 4월 초, 군수와 간부들 회식자리에서 유 군수가 또 처마 색칠 얘기를 꺼내면서 A씨가 속상해하자 L 과장은 “군수님이 너희 집에 애착이 많아서 그렇다”고 위로했다. 한편으론 그는 뜬금없이 조선시대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했다는 어록 등을 꺼내며 A씨를 압박했다. 그가 A씨 면전에서 한 말이다. 

“왕은 결정하지 않는 자리다. 신하가 결정한다. 다만 왕은 상과 벌을 줄 뿐이다. 왕의 말을 거부하면 업무상 힘들어 진다. 오늘 지소미아에 대해 국방부 장관이 그 자리에서 대변하는 것이 그 사람 스스로의 결단이었겠느냐. 이미 대통령이 의사를 말했고, 그 말에 대한 답변만 국방부 장관이 그 자리에서 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15일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과 제51차 한미안보협의회(SCM) 회의를 공동 주관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이는 지금 자기가 하는 언행이 곧 군수 뜻임에 다름없고, 따라서 자신의 말을 거역하면 벌이 뒤따를 수 있음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L 과장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굳이 했다면 TV에서 사극 《사도》를 본 뒤 사무실 분위기를 띄우는 차원에서 별 생각 없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을 것”이라며 “아마도 A씨가 꼬투리를 잡아 짜 맞춘 것 같다”며 억울해 했다.

장성군청 전경 ⓒ시사저널 조현중
장성군청 전경 ⓒ시사저널 조현중

L 과장 “억울해…생각없이 한 말, A씨가 짜맞춘 것” 

L 과장도 인사권을 지닌 무소불위 군수권력으로부터 또 다른 갑질 피해자일 수 있다. 그는 짊어진 중책(?)에 심리적 부담감을 크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 운신의 폭이 한정적인 가운데 군수의 지시에 부응해 단시간 내 성과물을 만들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L 과장은 올해 3월 말 공개된 5명의 사무관 승진 예정자에 포함됐고, 7월 정기인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했다. 반면 A씨는 군수의 권한 밖의 지시를 견디지 못하고 7월말 사직했다. 그가 몸담았던 미래디자인담당관도 조직개편으로 공중 분해됐다. 

만약 군수가 자신의 지시에 불응한 공무원의 뜻을 꺾기 위해 행정조직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지역사회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이 같은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런 개입을 가능하게 한 ‘윗선’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성군 주민 김아무개씨(63)는 “본인이 싫다면 그만 둘 일이지, 군수가 왜 30대 여성공무원의 집 색칠에 집착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최근 장성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안은 군수권력이 성과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하게 행정력을 동원한 의혹이 짙다”며 “이는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군수가 유독 A씨의 집 지붕 색깔에 집착한 이유는 길가 새 집이어서 개인주택의 롤모델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이 또한 분명치 않다. 

유두석 장성군수는 임기제 공무원 A씨에게 ‘신축주택의 지붕을 노랗게 칠하라’, ‘처마는 언제 노랗게 칠할 것이냐’는 등 권한 밖의 일을 수차례 지시해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 군수의 지시를 견디지 못한 A씨는 결국 지난 7월 말 사직했다. A씨는 지난 달 급성스트레스반응 등으로 2개월 이상 약물유지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과 함께 현재 정신과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와 관련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25일 오전 군수실을 찾았으나 유두석 군수는 “별도로 할 말이 없다”며 면담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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