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거리 짧은 도시가 ‘살고 싶은 도시’ [김현수의 메트로폴리스 2030]
  • 김현수 단국대 교수(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09.06 12: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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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 달라지는 도시 선호도… 탄소 배출 적은 도시 만들어야

한때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일자리가 많은 도시, 그린이 풍부한 도시, 즐길거리가 다양한 도시 등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기후변화 위기를 눈앞에 둔 2020년 현시점에서‘살고 싶은 도시’는 이동거리가 짧은 도시, 이동 필요성이 적은 도시다. 이동하더라도 짧게 이동하고, 자동차보다도 대중교통이나 친환경 개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편리한 도시다. 즉, 멀리 이동할수록, 개인 승용차를 이용할수록 탄소 배출이 증가하고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해서 삶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동하지 않고, 이동거리를 짧게 하려면, 출발지와 목적지가 같거나 가까워야 한다. 이동 필요성은 집에서 직장까지의 통근 수요, 학교까지의 통학 수요, 또 일상적인 구매 수요, 위락 수요 등에 따라 생긴다. 이동 필요성과 거리를 가깝게 하는 방법은 목적지를 집 근처에 두는 것이다. 즉 주택과 업무, 학교, 쇼핑, 위락, 공원을 복합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토지가 제한적이라 고밀·고층화될 우려가 있고 주거와 다른 기능이 충돌하는 경우 정주 환경을 침해한다는 점이다. 고밀·고층에 따른 문제는 기반시설을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기존 시가지 안에서 이런 장소는 흔하지 않다. 서울과 광역시 등 대규모의 기성 시가지에서 고밀복합개발 대상지를 선정하는 일은 매우 민감하다. 왜냐하면 고밀복합개발은 곧 높은 용적률을 허용하는 일이며, 이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도로 폭과 네트워크, 철도의 환승 여건, 주변 토지 이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고밀복합개발을 허용하는 대상지를 엄격하게 선정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환승역세권이라고 반드시 개발 여건이 좋은 것은 아니다. 가용지가 없거나, 여건이갖춰지지 않은경우도 많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세권의 범위를 500m 이내로 보지만, 역사 가까이에서는 가용지를 찾기가 쉽지 않으므로 역세권을 1000m까지 확장해도 좋겠다. 도보로 10~15분 거리라면 충분히 철도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거리라고 볼 수 있다.

북부간선도로 입체화 후 열린 공간과 입체 보행로, 생활 SOC 및 청신호주택 등이 조성된 신내 콤팩트시티 상상도 ⓒ서울시 제공
북부간선도로 입체화 후 열린 공간과 입체 보행로, 생활 SOC 및 청신호주택 등이 조성된 신내 콤팩트시티 상상도 ⓒ서울시 제공

기후변화에 강한 콤팩트시티를 만들자

환승역세권도 환승및 연계 수준에 따라 다양한 등급과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얼마나 다양한 교통수단이 연계되는가에 따라 환승 잠재력을 구분할 수 있고, 차별적인 용적률을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KTX, GTX, 지하철, 버스환승시설, 공항터미널이 연계되는 역사는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많은 이용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곳은 기존 상업지역보다 더 높은 용적률을 부여할 수 있도록 용도지역 기준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초역세권은 고급 업무, 주거, 쇼핑, 숙박, 컨벤션 기능들이 복합될 수 있도록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상되는 개발이익에 대해서는 공공기여를 통해 환수할 수 있는 사전협상제도도 함께 도입되어야 한다. 서울뿐 아니라 고속철도와 도시철도가 연계되고 향후 광역철도가 예정된 부산, 대구, 광주 등 광역시도 이와 같은 콤팩트 공간구조 구상을 준비해 가야 한다. 왜냐하면 비수도권에서도 인구와 산업이 대도시권으로 모이고, 대도시권의 중심거점을 구축하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데, 광역시의 고속철도 역세권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거리, 이동 수요를 줄이는 일은 대도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중소도시에서도 필요한 공공편익시설을 보행권 내에 배치해 이동의 필요성을 줄여 가자는 ‘15분 동네(15min urban village)’ 제안이 빈번하다. 특히 코로나 봉쇄에 대비해 집 근처의 상가, 쇼핑, 위락, 운동시설들을 보행권에서 이용할 수 있는 ‘콤팩트 마을 만들기’도 ‘기후변화시대 살고 싶은 마을’의 핵심적 개념이다.

에너지 소비가 적고, 효율이 높으며, 탄소 배출이 적은 그런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콤팩트시티의 조건은 첫째 교통망이고 둘째 고용밀도다. 무엇보다도 환승역세권과 같이 인구 유입을 처리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 충실하게 확보되어야한다. 다음으로는 일자리, 특히 생산성 높은 일자리가 두텁게 집적해 있는 지역, 특히 업무, 금융, 정보통신, 연구·개발 등이 집적한 지역이면 고급 서비스를 유치하기에 유리하다. 이런 지역을 선정하고, 일정 반경(예를 들면1차 역세권, 2차 역세권)을 고밀화·복합화할 수 있도록 용도지역제, 생활권계획, 도시기본계획을 수정해 갈 필요가 있다.

서울을 예로 들면, 콤팩트 중심지는 ‘서울플랜 2030’의 3도심이 1차 콤팩트를, 7개 광역거점이 다음 위계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도시기본계획상의 중심지가 반드시 콤팩트시티의 중심지가 될 필요는 없고, 일차적인 대상이 될 수 있겠다. 다음으로, 경기도 지역의 광역급행철도 환승역이 중요한 콤팩트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다. 대도시권 광역교통위원회의 ‘광역교통비전 2030’의 환승거점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지점만 개발되는 경우, 주변 지역이 소외될 수 있기 때문에 중심지와 주변지역 간 촘촘한 대중교통망 연결을 통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통근·통학, 쇼핑, 문화복지, 의료시설에 대한 주변 지역의 접근성이 개선되고, 전체 주민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즉 그만큼 콤팩트시티의 중심지에는 고급 서비스 기능이 고밀도로 복합될 수 있도록 압축연계형(compact & network)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압축연계형 도시는 지방 소멸 대응에 유용 

대중교통에 더해 개인 모빌리티(PM), 그리고 5G통신망으로 촘촘하게 연결되는 네트워크 도시를 그려가야 한다. 온라인 쇼핑의 확대로 상가가 비어가고, 재택근무로 오피스가 비어가며, 외곽의 빈집과 폐교가 늘어가는 변화를 보면서 통신이 교통을 대체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중심은 고밀화되고 주변 지역과는 대중교통으로 연결되는 도시, 즉 압축연계형 도시는 교통망과 통신망의 효과를 극대화시킴으로써 도시 서비스로부터 소외되는 시민·지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적 도시 공간구조다. 지리적 중심에 행정기능을 배치하는 ‘지리적 균형’ 기준에서 벗어나, 고속의 교통망과 통신망이 발달한 초연결사회에서는 ‘네트워크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평평하지 않고, 이런 콤팩트 거점을 중심으로 뾰족해질 것이다. 교통의 속도가 빨라지고, 통신이 경제활동을 초연결할수록 사람들은 고속교통망의 거점으로 집중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도시 차원을 넘어 대도시권 차원, 국토 차원에서도 이런 거점 중심으로 일자리가, 사람들이 모인다. 더욱이 외곽 산업단지의 일자리는 감소하는데 언택트 산업, 플랫폼 기업들은 대도시로, 도심으로 집중한다. 이럴수록 수도권과 대도시는 성장하고,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의 인구는 감소한다. 이동거리가 짧은 압축연계형 도시는 지역 격차와 지방 소멸에 대응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구 온도를 낮추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이동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공간구조를 만들어가는 노력은 그린 뉴딜에 유용한 실천 수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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