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준비된 자’의 성공 스토리가 시작된다
  •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6 11:00
  • 호수 16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이저리그서 기대 이상의 호투 이어가는 김광현…한국 최초 ‘신인왕’ 기대도

김광현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우여곡절 끝에 33세의 늦은 나이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뛰어들었고, 또 시즌 중 여러 팀에서 코로나 양성 반응자가 나오며 경기가 취소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김광현의 성공적인 데뷔와 이어지는 눈부신 호투는 2020 메이저리그에서 단연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9월2일 시즌 5번째, 그리고 선발투수로는 4경기째 등판한 김광현은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5이닝 3피안타 2볼넷, 4개의 탈삼진을 뽑아내며 시즌 2승을 거두었다. 3경기 연속 무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즌 평균자책점을 0.83까지 끌어내렸고, 특히 선발투수로는 0.44라는 엄청난 기록을 이어가는 중이다.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매우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도 아니고, 타자를 압도하며 많은 삼진을 잡아내지도 않지만, 그의 초반 질주는 놀랍기만 하다. 김광현의 초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혹시 낯선 투수에 대한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생소함에서 오는 ‘반짝 효과’는 아닐까.

ⓒ연합뉴스
ⓒ연합뉴스

KBO리그와 전혀 다른 전략으로 타자 상대한 게 주효

결론적으로 김광현은 13년 동안 KBO리그에서 던지던 스타일에서 과감히 벗어나고 있다. 국내 야구에서 김광현은 구위나 구속 모두에서 리그 최정상 수준이었다. 다이내믹한 투구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150km를 상회하는 빠른 볼과 우타자 몸쪽으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앞세워 통산 136승을 거뒀다. 물론 투심·커브·체인지업을 곁들이기도 했지만, 늘 투피치 투수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2019년 김광현은 국내 리그 좌투수 중 가장 빠른 평균 구속인 147km를 상회했고 최고 구속이 154km에 달하는 파워 투수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그의 최고 구속은 94마일(151km)에 평균 구속은 90.1마일로 145km에 그친다. 실제 그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결정한 뒤 현지 야구 전문매체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그의 구위를 모든 구종에서 평균 수준으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초반 질주하는 원동력의 이유는 볼 배합과 컨트롤 위주의 투구에서 찾을 수 있다. 

만약 김광현이 국내에서 던지던 스타일대로 힘을 앞세워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하려 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수 있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메이저리그 좌완 선발투수들의 평균 구속은 91.8마일로 148km에 육박한다. 지난해는 이 평균치를 가볍게 넘어선다. 최근 구속과 관계없이 공의 회전율이 높으면 움직임이 커지며 타자에게 어려움을 준다는 의견이 정설이 되어 가고 있는데, 김광현의 포심 평균 회전율은 분당 2152회로 좌투수 평균인 2242회보다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김광현이 포심을 던졌을 때 피안타율은 불과 0.121에 그치고 있다. 

그러면 그의 주무기인 슬라이더는 어떨까. 평균 구속은 82.8마일로 133km 정도 나온다. 피안타율은 0.286으로 살짝 높은 편이다. 그의 손을 떠난 슬라이더가 떨어지는 폭은 95cm에 근접한다. 언뜻 생각하면 큰 낙폭 같지만 투수가 공을 놓는 포인트를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이런 낙폭은 평균보다 5cm 이상 작다. 좌우 변화도 13cm 정도로 평균치보다 3.5cm가량 덜 움직인다. 그 외 구종인 커브와 체인지업 역시 메이저리그 평균치보다 떨어진다. 그렇다면 김광현이 현재 보여주는 성적 모두는 익숙지 않은 투수를 상대하는 타자들의 불편함과 생소함의 소산일까.

9월2일 등판을 앞두고 현지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 닷컴’은 김광현의 지나치게 낮은 삼진율(3.78개)과 0.189의 BABIP(타구가 인플레이가 됐을 때의 타율로, 메이저리그 평균은 보통 0.280~0.290 정도로 이보다 낮으면 행운이 따른 것이라고 야구 통계학자들이 주장)가 향후 그의 성적을 더 나빠지게 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수치에 반영되지 않고 또 반영되기 힘든 함정이 있다. 바로 볼 배합과 로케이션이라는 ‘세이버 매트릭스’로 불리는, 야구 수치화 공식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투수들의 강력한 무기가 그것이다.

그나마 로케이션은 어느 코스에 어떤 구종을 많이 던졌다 하는 정도로 표기되지만, 코너워크를 가미한 볼 배합까지 평가하는 수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런 평가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투수나 반대로 장기간 뛰며 기록이 누적된 선수들에게 통용되는 이론이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에이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진출 후 8년간 그 어느 시점에도 구위가 뛰어나거나 빠른 볼을 던진 투수로 기억되지 않는다. 최고의 성적을 거둔 지난 시즌 류현진의 평균 구속은 90.6마일로 규정 이닝을 넘긴 선발투수 가운데 8번째로 느린 공을 던진 선수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체인지업을 바탕으로 안쪽과 바깥쪽 그리고 상하를 고루 활용하고 타자의 노림수를 피해 가는 전략으로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김광현에게 느끼는 투구 패턴이 그와 흡사하다. 

 

빠른 투구 템포에 메이저리그 타자들 당황한 기색 역력

지난 8월23일 신시내티 레즈 첫 상대 당시에는 경기 초반 바깥쪽을 주로 공략하며 타자들의 시각을 몰아넣고, 경기가 전개되면서 차츰 안쪽을 공략하는 모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번 재대결에서는 오히려 1회부터 우타자 몸쪽으로 빠른 볼과 슬라이더를 공격적으로 구사하며 상대 타자들을 당황시켰다. 그리고 향후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실시되는 최고의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사인 교환에서 고개를 젓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런 빠른 템포는 빠른 인터벌로 이어져 8월28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경기에서는 여러 차례 타자들이 타임아웃을 부르며 리듬을 찾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기록상으로 김광현의 모습은 완벽하지 않다. 9이닝당 탈삼진율은 4.57개로 리그 하위 2%에 불과하고, 헛스윙률 역시 하위권이다. 반면에 그의 피안타율은 0.182에 그칠 정도로 훌륭하고, 피홈런도 단 한 개뿐이다. 특히 21.2이닝을 던지며 병살을 5개나 이끌어냈다. 9이닝당 볼넷 허용도 2.49개로 리그 평균보다 꽤 낮다. 이닝당 주자 허용도 0.9개로 선발투수로서 상당 수준의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와는 전혀 다른 메이저리그에 특화된 볼 배합과 경기 전략을 가지고 임하는 자세가 놀랍다. 2014년부터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하며 꾸준히 준비했던 노력의 흔적이 드러난다.

물론 타자들이 그의 패턴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 슬럼프도 찾아올 것이고, 그런 어려움을 겪으며 그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뤄질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자신을 잊고 새로운 패턴으로 접근하려는 그의 노력과 성공이다. 단순히 장소와 리그를 떠나 김광현의 제2 야구 인생이 시작된 느낌은 바로 그런 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