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이끄는 ‘흥벤져스’, 스포츠 인기 판도 뒤집어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3 12:00
  • 호수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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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이다영 자매에 김연경까지…흥국생명, 어벤져스급 선수 구성으로 폭풍 ‘인기몰이’

9월5일 충북체육관에서 열린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이하 코보컵) 여자부 결승전은 KBS 2TV로 생중계됐다. 광고가 붙는 지상파 채널이 국내 프로배구 생중계에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배구 시즌인 겨울의 정규리그도 아닌, 비시즌인 여름의 코보컵 대회였다. 지금 여자배구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편성이었다.

돌아온 ‘배구 여제’ 김연경(32)의 존재감은 그만큼 강하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비(非)배구팬에게까지 이름을 알린 그의 현재 개인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48만 명이 넘는다. 스포츠 선수로 폭넓은 인기를 자랑한다. 국내 리그에서 흥국생명 소속으로 4년간 뛰었던 김연경은 2009년 임대 신분으로 일본 JT 마블러스로 진출한 뒤, 터키·중국 등 해외무대에서 줄곧 활동해오다가 11년 만에 국내로 복귀했다. 터키 현지의 코로나19 상황도 있었고, 무엇보다 도쿄올림픽 메달 획득이라는 궁극의 목표도 있었다.

9월4일 2020 코보컵 대회 여자부 준결승 흥국생명과 현대건설 경기에서 승리한 흥국생명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ㅍ연합뉴스
9월4일 2020 코보컵 대회 여자부 준결승 흥국생명과 현대건설 경기에서 승리한 흥국생명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절대 1강’이 흥미 반감시킬 것이란 우려 불식시켜

슈퍼스타의 귀환만큼 리그 관심도를 끌어올리는 자극제도 없다. 앞서 야구의 박찬호가 그랬다. 박찬호는 2012 시즌에 앞서 메이저리그·일본프로야구를 거쳐 전격적으로 KBO리그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다. 선수생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귀향이었다. ‘박찬호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의 선발등판 때마다 만원 관중이 들어차면서 프로야구 흥행의 기폭제가 됐다. 한화의 젊은 투수들은 박찬호로부터 경기운용 방법 등을 전수받기도 했다.

‘배구 여제’의 복귀 효과도 ‘코리안 특급’ 못지않다. 사실 여자배구 인기는 2012 런던올림픽 4강 때부터 꿈틀대기 시작해 2016 리우올림픽을 기점으로 날개를 폈다. 2019~20 시즌 V리그(프로배구 정규리그) 평균 시청률은 사상 처음으로 1%대를 돌파(1.05%)했다. 남자배구(0.83%)보다 더 높은 시청률로 배구계를 놀라게 했다. 남녀 프로배구 경기가 분리된 2017~18 시즌 직전까지 남자부 경기가 시작되기 전후 오후 5시에 시작하는 ‘들러리 경기’쯤으로 취급받던 여자배구가 전세를 역전시킨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연경’은 활성 세포가 돼 흥행에 불씨를 더 댕기고 있다.

김연경의 소속팀이 흥국생명이라는 데 더 파괴력이 있다. 흥국생명에는 24세 쌍둥이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있다. 이들은 남녀 통틀어 V리그 선수 최초로 자동차 광고(기아자동차 세단 ‘스팅어 마이스터’)를 찍을 정도로 인기 최정상에 있다. 프로 데뷔 뒤 다른 팀에서 뛰던 둘은 이재영이 FA 신분으로 동생 이다영이 몸담고 있던 흥국생명으로 올 시즌 적을 옮기면서 ‘원 팀’이 됐다. 여기에 연봉 80%가 삭감되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김연경까지 가세했다. 국가대표 주전 3인방의 합체로 ‘흥벤져스(흥국생명+어벤져스)’라는 말까지 나온다.

김연경은 터키 리그 시절 20억원 안팎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기 위해 연봉 삭감안(3억5000만원)을 받아들였다. 이재영(옵션 포함 6억원), 이다영(4억원)보다도 연봉이 낮다. 김연경이 국내 복귀를 얼마나 꿈꿨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월등한 배구 실력에 폭발력 있는 대중적 인기까지 갖춘 흥벤져스의 흥행력은 컵대회 때부터 드러났다. 김연경의 11년 만의 국내 복귀전이기도 했던 8월30일 흥국생명-현대건설의 조별리그 1차전 케이블 시청률은 2.05%를 기록했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단일 경기 시청률도 최근에는 2%를 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수치다. 

물론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절대 1강의 존재는 리그 관심도를 떨어뜨리게 마련이다. 뻔한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에 승부 자체의 재미 또한 반감시킨다. 역시나 흥국생명은 준결승전까지 무실세트를 이어가면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비록 V리그 출범 전이기는 하지만, 2000년대 초반 김세진·신진식 쌍포를 앞세운 남자배구의 삼성화재가 77연승을 이어가며 슈퍼리그(프로배구의 전신) 9연패를 일궈냈던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 에선지 흥국생명전 컵대회 시청률은 예선 2차전(1.65%), 3차전(1.40%), 준결승전(1.07%)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떨어졌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대반전이 일어났다.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으나, 프로 세계에서 변수는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예선리그부터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던 ‘흥벤져스’는 GS칼텍스에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며 0대3 완패했다.

 

GS칼텍스에 당한 의외의 일격도 화제 일으켜

철저한 분석에 의한 작전의 성공이었다. GS칼텍스는 이재영의 체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계속 이재영에게 목적타 강서브를 날렸고, 김연경이 네트 앞에서 떠오르면 블로커 3명이 따라붙었다. 블로커의 가로막기를 피하려다 김연경의 공격 성공률은 확 떨어졌다. GS칼텍스의 미리 계산된 수비 시프트는 흥국생명 공격력을 무디게 만들었다.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빨리 튀어올라 얻은 성과가 무적함대 ‘흥벤져스’의 격침이었다. 

2007~08년 SK 와이번스가 프로야구 최강자로 우뚝 섰을 때 각 팀은 SK를 꺾기 위해 다양한 작전을 짜냈고 프로야구는 이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2009 WBC 준우승의 성적도 이런 과정에서 일궈냈다. 1강의 존재는 다른 팀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이는 리그에 순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GS칼텍스가 결승전에서 보여준 흥국생명 공략법은 다른 구단에도 참고 자료가 될 전망이다. 물론 예기치 않은 일격을 당한 흥국생명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여자배구는 더 큰 성장동력을 갖추게 될 것이 분명하다. 강소휘(GS칼텍스)처럼 미디어의 관심 속에 ‘흥벤져스’ 외에 주목받는 새로운 스타도 속속 등장할 것이다.

한때 여자배구는 착 달라붙는 경기 유니폼으로 ‘여성 상품화’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요즘은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를 선사하면서 ‘여성 스포츠’가 아닌 배구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여자배구 전성기는 하루아침에 도래한 것이 아니다. 국제대회 선전 등으로 서서히 팬들에게 스며들어, 김연경의 복귀로 정점을 찍는 중이다. 이를 또 다른 도약의 과정으로 이끄는 일은 연맹과 구단, 그리고 선수들의 몫이다. 2020~21 시즌 V리그 여자부는 10월17일 개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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