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논란, 조국 사태 데자뷔인가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4 11:00
  • 호수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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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성에 분노했던 20대들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 입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아무개씨의 ‘특혜 휴가’ 의혹이 정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논란은 최근 국민의힘 의원들이 추 장관의 보좌관과 통화했다는 군 관계자의 녹취록을 공개하고 그러한 통화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난 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부대 미복귀 상태에서 외압을 통해 휴가 연장 승인을 받았다는 의혹에 이어 평창올림픽 통역병 선발 청탁, 자대 배치 청탁 의혹 등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추 장관을 코너에 몰아넣고 있다. 제기된 의혹들을 다 사실로 받아들일 일도 아니고 검증도 필요해 보이지만, 추 장관도 자신의 호언과는 달리 마냥 떳떳한 것 같지는 않다.

‘특혜 휴가’ 의혹은 지난 1월 고발되었던 사건이니, 제대로 수사해 진즉에 매듭지었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8개월을 끌다가 의혹과 논란은 더욱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 수사는 추 장관의 표현대로 ‘아주 쉬운 수사’다. 사안 자체에 그리 복잡할 것이 없고,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 진실을 가리면 대략 진상이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부대 내에서 휴가 업무 처리를 담당했던 관계자들과 당사자인 서씨,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진 보좌관, 그리고 필요할 경우 추 장관까지 조사하면 진실이 무엇인가를 가려낼 수 있는 사안이다.

전국대학생연합 촛불집회가 지난해 10월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손팻말과 LED조명을 들고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규탄 구호를 외쳤다. ⓒ시사저널 박정훈
전국대학생연합 촛불집회가 지난해 10월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손팻말과 LED조명을 들고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규탄 구호를 외쳤다. ⓒ시사저널 박정훈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론을 오히려 악화시켜

그런데 8개월이 지났는데도 수사는 제자리걸음이었으니 수사를 맡은 서울동부지검이 수사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만하다. 희한한 것은 추 장관도 수사 부진에 대해 “검언유착이 아닌가 의심할 때도 있다”고 말한 점이다. 의혹을 부풀리기 위해 검찰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의미일 텐데, 일반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그동안 있었던 여러 상황을 살펴보면, 서울동부지검의 수사는 오히려 추 장관을 보호해 주는 수사라는 불신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얼마 전 검찰인사를 통해 친여 성향으로 소개되는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사건을 지휘하게 되었다. 이 사건 수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던 김남우 서울동부지검 차장은 검찰인사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직했고, 수사팀장 양인철 형사1부장은 한직으로 분류되는 서울북부지검 인권감독관으로 전보됐다. 검찰인사 전에 수사를 맡았던 주임검사와 수사관이 다시 수사팀에 합류한다고 하지만, 이들은 수사팀에 있을 때 추 장관 보좌관의 전화 관련 진술을 조서에서 삭제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들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추 장관은 아들 관련 수사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서울동부지검의 수사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추 장관을 의식하지 않고 독립적인 수사를 하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키운 것은 아들과 관련된 의혹 앞에서 성실한 소명 대신 “소설 쓰시네”라며 비웃거나 호통치던 추 장관의 적반하장 격 태도였다. 위법 여부를 떠나 부적절한 일에 대해서는 진즉에 사과하며 고개 숙였다면, 무릎 수술을 받아 힘든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여론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추 장관은 모든 의혹 제기에 대해 비웃고 호통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이며 화를 키웠다. 추 장관 주변과 더불어민주당의 안이한 인식도 불을 끄기는커녕 기름을 끼얹었다. 

추 장관 측 변호인은 “통역병 선발이 뭐 그리 대단한 특혜냐”며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태도를 보였다. 추 장관의 보좌관 출신인 한 서울시의원은 자신의 통화 여부를 묻는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부대 전화 여부는 본질이 아니다. 검찰 개혁을 해야 하는데 왜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그저 개인의 생뚱맞은 얘기로 넘길 수 없는 것이,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 최고위원은 이 논란을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로 규정하며 “검찰 개혁을 흔들어 보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야당을 향해서는 “그냥 검찰 개혁을 하기 싫다고 얘기하라”고도 했다. ‘기-승-전 검찰 개혁’의 사고를 갖고 있는 민주당 일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검찰 개혁이라는 구호로 막을 일이 따로 있지, 어디 장관 일가의 특혜 의혹에까지 꺼내들 방패인가. 이런 와중에도 “상식적으로 납득되는 수준”이라는 말이 나오는 민주당의 상식은 어떤 것일까. 그러니 추 장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국 사태’ 교훈 찾아보기 어려운 여권의 태도

여당 대표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아들이라면 부대 미복귀 상태에서 휴가 연장 승인을 받는 일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그랬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부대에 미복귀한 나를 위해 아닌 밤중에 휴가 연장 승인이 떨어질 수 있었을까? 이 사건을 바라보는 20대들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 앞에서 카투사는 주한미군 규정을 따르기 때문에 규정 위반이 아니라고 공방을 벌이는 추 장관 측  태도는 1년 전 조국 전 장관 때의 모습을 빼닮았다.

그때도 여러 의혹이 불거지고 사퇴 여론이 비등했을 때, 조 전 장관은 “위법은 없었다”며 버티다가 여론을 돌이킬 수 없이 악화시켰다. 그때도 지금도, 평범한 집안의 청년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알려지고 있다. 법 이전에, 그것만으로도 추 장관이 책임을 통감하며 고개 숙일 이유는 충분하다.

조국 사태로 불공정 현실에 상처를 받았던 20대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흔들어놓는 일이 되고 말았다.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들은 민주당에서 20대층의 이탈이 눈에 띄게 나타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물러서지 않고, “검찰 개혁 완수를 위해 흔들림 없이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렇게도 많은 말을 쏟아내던 추 장관은, 보좌관의 전화 사실 같은 불리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침묵한다. 

여권 주변에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정도 일 갖고 뭐 그리 난리냐”는 ‘꼰대’ 같은 소리들이 이어진다. 아들의 특혜 의혹 자체보다, 추 장관의 정직하지도 겸손하지도 못한 해명이, 그리고 청년 세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집권여당의 변함없는 모습이 더 큰 문제로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조국 사태의 교훈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미 ‘조국 데자뷔’가 되고 있다. 여론이 들끓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이 바라만 보고 있는 것도 그때와 똑같은 광경이다. 생각해 보니 추 장관의 거친 언행이 오랫동안 계속되었어도, 언제 한번 대통령이 주의를 줬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추 장관에게도 검찰을 장악해 준 데 대한 ‘마음의 빚’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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