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율적 사고 약화시킨 소비사회의 한계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1 17:00
  • 호수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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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상품의 사용 가치보다 기호가 소비되는 현상이다. 1970년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들리아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상품의 소비를 통해 행복, 쾌락, 사회적 지위, 현대적 이미지를 소비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사회는 성장 지향 사회가 아니라 소비 지향 사회이고, 생산 영웅에 대한 예찬이 소비 영웅을 위한 찬가로 바뀌었다. 발명가, 창업자, 기술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배우, 스포츠 스타, 광고모델의 신화로 변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상품의 구매를 통해 기호를 소비하면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문화적 코드를 보여준다. 포르쉐 자동차는 교통수단보다 사회적 위세를 과시하는 기호로 작동한다. 루이비통 핸드백은 물건을 담는 가방보다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기호로 소비된다. 소비의 가장 매혹적인 대상은 몸이고 피트니스, 성형수술, 피부 관리도 소비 행위가 된다. 이런 소비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욕구가 아니라 대중매체를 통해 조종되는 욕망이다. 사람들은 광고를 통해 시뮬레이션된 이미지, 경험, 느낌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

대중매체가 소비의 기호 체제를 만들어내는 현상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1940년대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대중매체가 문화산업이 되어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한다고 비판했지만, 사람들을 문화산업의 순응적 수용자로만 보기는 어렵다.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로 보고 대중문화가 사람들의 취향을 저속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소비 행위는 세련미를 추구하고 미학적 수준을 탐닉하는 경지로 변화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새로운 문화산업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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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사회학자는 현대사회에서 문화와 기술이 맺는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애플의 아이폰과 뱅앤울프슨의 오디오는 기술적 수준뿐 아니라 첨단의 디자인 감각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동시에 과거의 문화산업에서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던 소비자들이 문화산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용자로 변화했다. 영국의 레코드 회사와 계약을 맺었던 비틀스와 달리 유튜브라는 글로벌 사회적 연결망으로 연결된 팬들의 열성적인 참여가 방탄소년단의 성공비결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문화산업이 반드시 사람들의 미학적 수준과 자율성을 높이는 효과만 창출한 것은 아니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와 같은 소수의 글로벌 대기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유시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문화가 시장에 의해 지배되고 종속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네이버, 다음, 카카오톡 등은 거대한 플랫폼을 통해 뉴스와 문화의 생산과 유통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정보기술이 중립적이라는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고, 독재 권력과 부유층이 정보기술의 독점을 통해 사람들의 사고를 조종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구글의 중국판 검색 사이트는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거두지만 사실상 검열 사이트처럼 보인다. 수년 전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당시 페이스북에 난무한 가짜뉴스가 광고비를 지불한 극우파 정치인들이 만든 것이라는 지적에도, 페이스북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다. 한국에서는 유튜브를 통해 가짜뉴스를 전파하며 접속 수만 늘리면 수많은 기업의 광고가 붙고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 자유시장을 맹신하는 시대에 공적 의무가 쇠퇴하면서 대중매체에 뿌려지는 막대한 광고비에 의해 사회가 권력과 시장에 종속되고 개인의 자율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비판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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