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 아닌 ‘일상사’ 되어버린 가을 태풍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2 10:00
  • 호수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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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만큼 무서운 ‘지구온난화’에 기술도 인류도 적응 중
기후변화가 가져온 NEW 라이프스타일

올여름 날씨는 참 변화무쌍했다. 이른 폭염에 가장 긴 장마, 장미·바비·마이삭 등 여름 태풍에 이어 가을 태풍 하이선까지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가을이 깊어가는데 다음 태풍 ‘노을’이 또 있다. 기상청은 9~11월 가을 태풍은 평년과 비슷하게 11~13개 발생하고, 이 중 1~2개가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들어 가을 태풍은 해마다 꾸준히 영향을 미쳐온 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문제는 갈수록 태풍의 빈도나 힘이 불규칙해지고 있다는 것. 짧은 기간 태풍 3개가 연달아 지나가고 여기에 하마터면 슈퍼태풍까지 덮칠 뻔한 ‘예외적인’ 해가 수십 년 뒤에는 평년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 ‘기상이변’이 더 이상 ‘이변’이 아닌 ‘일상사’가 되고 있다.

폭염, 폭우, 강력한 태풍과 같은 이상 기후의 근본적 원인은 지구온난화다. 참고로 지난 100년간 지구 온도는 0.85도 정도 상승했다. 지구온난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따라서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도 없다. 지구온난화 추세를 뒤엎기는커녕 앞으로 가속화되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이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태풍 피해를 최소화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책이 아닐까. 그렇다면 현재 세계는 어떤 시스템으로 어떻게 태풍에 대비하고 있을까.

장미·바비·마이삭 등 여름 태풍에 이어 가을 태풍 하이선까지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사진은 9월8일 울산시 북구 신명동 한 해안도로가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몰고 온 파도에 파손돼 내려앉은 모습 ⓒ연합뉴스

‘바람 지도’ 만들어 태풍 피해 최소화

현재 태풍을 미리 읽어내는 역할의 일등 공로자는 인공위성이다. 2018년 8월 우주로 쏘아올린 유럽우주국(ESA)의 인공위성 ‘아이올로스’가 대표적이다. 아이올로스는 지구 표면에서 부는 ‘바람 지도’를 만들기 위한 최초의 위성으로, 대기를 향해 레이저빔을 발사해 바람이 어떤 방향과 세기로 부는지 읽어낸다. 태풍이나 폭염의 수준을 분석할 때 바람은 핵심 요소다. 아이올로스 덕분에 태풍의 진로 예측이 예전보다 9% 정도 정확해졌고, 그만큼 태풍 피해도 줄이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함께 운영하는 ‘글로벌 강수량 측정(GPM)’ 위성도 태풍의 눈에 쏟아지는 엄청난 폭우를 분석한다. GPM 위성은 레이더로 구름 속 물 입자 분포를 파악해 강수량을 예측하고, 또 물 입자의 움직임을 읽어내 태풍의 성장 가능성 등을 예측한다. 이런 예측을 토대로 강수 수준에 맞는 대비책을 적절히 세우면 태풍 피해를 효율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재난 기계 또한 태풍 대비에 큰 역할을 한다.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학교에 설치된 대형 송풍장치 ‘와우’가 그것이다. 재난 기계는 허리케인이나 지진 등 다양한 재난 상황을 인공적으로 재현해 실험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다. 태풍·허리케인·사이클론 등 발생 장소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열대성저기압을 일컫는 말이다. 와우는 허리케인 중 최고 강도인 초속 70m 이상의 5등급 바람까지 생성한다. 마치 자동차 충돌시험을 하듯 실제 크기의 건축물을 놓고 허리케인을 재현해 건물들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안전성을 평가한다. 실제 이 대형 송풍장치를 통해 허리케인에 대비한 건축 재료로 세워진 건축물들이 있다.

우리나라도 2009년 전북대에 풍동실험센터를 설치했다. 이곳에는 와우의 약 18%의 힘을 내는 실내 풍동실험장치가 갖춰져 있는데, 이를 통해 인위적으로 빠르고 센 기류를 발생시켜 초고층 빌딩과 교량 등 각종 구조물의 안전성을 검증한다. 실제 서울시청 신청사와 국립생태원, 이순신대교 등이 설계 과정에서 이 센터의 풍동실험을 거쳐 안전을 입증했다. 자연재난이 인간을 급습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과학의 보호 장치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후가 아열대성(온대와 열대의 중간)으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재 우리나라 경지 면적의 10.1%에 아열대화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우리 삶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과수 농가가 그렇다. 이미 아열대기후로 바뀐 제주도에선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아티초크가 재배되고 있고, 제주도에서 재배되던 한라봉은 전남 고흥, 경남 거제에서도 자라고 있다. 보성의 특산물 녹차는 강원도 고성에서 재배되고, 파파야·망고·바나나 같은 아열대 작물의 국내 재배면적은 해마다 넓어지는 추세다.

전남 해남에서 농장주 부부가 아열대 작물인 바나나를 재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로 머잖아 김장 못 하게 될 수도

아열대 작물의 입지가 확산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식탁이 다양해진다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지만 기후변화로 배추를 비롯한 채소들의 가격이 상승해, 일례로 우리 식문화의 대표 유산인 김장이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연출될 수 있다. 이런 상황 탓에 지역 지자체들은 각기 다른 생존전략을 찾고 있다. 기존에 나지 않던 과일 등을 재배해 지역 특산품으로 육성하는 방안이다. 벼를 이모작하는 지역도 출현했다. 대개 베트남이나 태국 등 동남아시아 아열대기후에서 가능한 이모작을 전남 순천과 경남 고성에서 하고 있다. 1년에 2번 농사를 지으니 생산성도 두 배나 높아 농가 소득엔 긍정적이다. 다만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우리의 생활과 소비 패턴도 이미 바뀌었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상품들인 가정용 제습기·의류건조기·신발건조기·아쿠아슈즈·방수가방 등이 소비자들의 관심 대상이다. 고온다습한 아열대기후로의 변화가 제습기와 건조기 사용을 높이고 있고, 물 빠짐 기능과 통풍성을 극대화해 착용감이 뛰어난 멀티 아쿠아슈즈가 일상화되고 있다. 평소 입지 않던 우비나 폭우 속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레인부츠는 인기 만점이다. 태풍이나 갑작스럽게 내리는 폭우 등 기후변화를 고려한 방수배낭은 필수다.

레저 용품으로 출시된 제품들이 기후변화에 따라 이젠 필수품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패션업계는 계절별 의류를 생산하던 과거와 달리 그 경계를 없앴다. 여름이라고 반팔이나 민소매 상의나 반바지를 판매하는 게 아니다. 가죽재킷·스웨터·부츠·털모자 등 겨울 제품과 반팔셔츠·샌들·밀짚모자 등은 사시사철 진열돼 있다. 기후변화가 소비 패턴까지 변화시키는 위력을 지닌 셈이다.

이제 기후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는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생존이 달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따른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나서야 하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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