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리더십’ 의문 남긴 이재명의 격분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6 10:00
  • 호수 16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화폐 정책의 한계 지적한 조세연 보고서 맹비난…비판 용납지 않는 태도에 ‘우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보고서 하나가 여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다투는 이재명 경기지사를 격분시켰다. 문제의 보고서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라는 연구 결과물이다. 지역화폐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 이 보고서에 대해 이재명 지사는 “정치적 주장에 가까운 얼빠진 연구 결과”라고, 조세연을 향해서는 “근거 없이 정부정책을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비난하며 “엄정한 조사와 문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왜 이들은 왜곡되고 부실하며 최종 결과도 아닌 중간 연구 결과를 이 시점에 다급하게 내놓으면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주요 정책을 비방하느냐”며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7월8일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여권에서도 “과도한 대응” 비판 나와

조세연 보고서를 향한 이 지사의 맹비난은 한두 차례에 그치지 않고 연일 계속되었고, 급기야는 조세연 보고서를 옹호하는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말싸움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한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에 이 지사가 이렇게까지 발끈하며 연일 공격을 가한 데는, 자신의 대표적 정책이었던 지역화폐에 대한 평판이 훼손될 것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는 경기도 성남시장으로 있을 때 지역화폐 ‘성남 사랑 상품권’을 주도했고, 지역화폐가 지역 내 중소상공인들을 돕는 데 효과가 있더라는 평가 속에 다른 지자체로도 확산되던 중이었다. 그러니 조세연의 보고서가 자신의 행보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여겼을 법하다.

그러면 조세연의 보고서는 이 지사가 말한 대로 그저 ‘얼빠진’ 보고서였을까. 이 보고서는 지역화폐 도입이 유발하는 경제적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지역화폐 도입 시 해당 지역 내 소상공인 매출 증가와 함께 대형마트의 매출액이 지역 내 소상공인에게로 이전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하는 지역화폐는 인접한 다른 지역의 소매업 매출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결국 모든 지역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매출 증가 효과는 줄고 발행 비용만 순효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화폐의 발행을 중앙정부가 보조해 주거나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는 방안을 이 보고서는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신 데이터가 없어 2018년까지의 데이터만 갖고 분석한 한계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황당무계한 보고서는 아니었다. 지역화폐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검증을 위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들을 분명 담고 있었다.

이런 연구가 특별한 일은 아닌 것이, 지역화폐의 경제효과를 긍정적으로 분석한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나 경기연구원의 보고서가 이미 있었다. 반면에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한국재정학회에 용역을 준 보고서 ‘지역화폐가 지역의 고용에 미치는 효과’에서는 “기존의 연구들이 서베이 자료에 기초해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 및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있다고 추정했으나,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와 함께, “지역화폐의 신규 도입이나 확대 발행은 지역의 고용 규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 조세연의 보고서와 비슷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지역화폐의 긍정적 효과를 설명하고 있는 기존 보고서와 지역화폐의 한계를 설명하고 있는 조세연 보고서가 양립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한쪽은 지역화폐 발행 지역 내에서의 매출 효과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쪽은 역외 다른 지역에 미치는 영향까지 감안해 전국적인 효과 여부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니, 중앙정부는 그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화폐의 한계를 말했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때린다고 비판하며 화를 내면, 국책연구기관은 정부의 정책과 똑같은 목소리만 낼 수 있을 뿐, 법률로 보장된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찾을 수 없게 된다.

범여권 내에서도 이 지사의 과도한 대응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연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이야기할 수 있다”며 “이렇게까지 발끈하는 것을 보면 그릇이 작다는 생각을 한다”고 이 지사를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지낸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는 “이 지사가 문책과 적폐를 들고나와 경제 전문가들을 몰아세우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언어폭력이고 비민주적 사고방식의 표출”이라고 비판했다. 대부분 익명으로 기사화되고 있지만,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지사의 과도한 대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그릇이 작다”고 이 지사를 비판했다. ⓒ연합뉴스

‘자기 입장과 다르면 적폐’라는 이분법적 주장

이 지사가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격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놓고 자신이 주장했던 전 국민 지급이 아니라 선별 지급으로 결론이 나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뚜렷이 보인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적폐세력과 악성 보수언론이 장막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것도 느껴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차 재난지원금의 성격을 경기부양으로 보느냐,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이 지사는 선별 지급론을 마치 적폐세력과 보수언론이 노리는 것이라는 식으로 매도했다. 자신의 입장과 다르면 적폐라는 이분법적 주장은 다수의 동의를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역화폐 발행은 전국적으로 확대 일로에 있다. 하지만 지역화폐 발행은 중앙정부의 재정이 투여되는 것이기에, 지역화폐의 순 경제효과를 실증적으로 검증함으로써 지역화폐에 대한 중앙정부의 재정투여 방향을 착오 없이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역화폐의 효과에 대한 검증과 평가는 다양한 연구와 토론을 거치면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지역화폐의 한계를 지적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얼빠진 연구 결과’라는 소리를 듣고 ‘문책’ 위협까지 받는다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은 불가능해진다.

자신의 정책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고 해서 연구자들의 문책을 요구하고, 연구기관을 적폐로 규정하는 모습은 민주주의적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야당 정치인이라면 ‘시원한 사이다’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다른 의견들까지 껴안고 조정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혹여 이 지사가 대권을 잡았을 때, 비판을 용납하지 않고 입을 막으려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들이 생겨난다. 그러니 자신이 민주적 리더십의 소유자임을 보여야 하는 숙제가 이 지사의 앞길에 놓여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