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추 트레인’은 내년 어느 레일 위를 달리고 있을까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6 15:00
  • 호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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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한국 프로야구 무대서 보게 될까…올 시즌 후 텍사스와 작별 가능성 커져

메이저리그 16년 차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는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어릴 때에는 매일 산에 올라가 나무에 공을 매달아 놓고 쳤다. 24시간 내내 모래주머니를 찬 채로 밥을 먹고 잠을 잔 적도 있다. 승부근성은 그렇게 추신수를 ‘5툴 플레이어’(장타력, 타격 정확도, 수비 순발력, 주루, 송구 능력을 골고루 갖춘 선수)로 이끌었다.

식어서 퍽퍽해진 피자를 먹던 마이너리그 때부터 ‘1500억원의 사나이’가 된 메이저리그 시절까지 그만의 루틴도 묵묵히 지켰다. 스프링캠프 때마다 늘 새벽 4시30분에 누구보다 먼저 야구장으로 향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는 신념으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아시아 출신 선수 최초 3할-20홈런-20도루(2009년), 아시아 출신 타자 최초 히트 포 더 사이클(사이클링 히트)(2015년) 기록은 그렇게 탄생했다. 호타준족의 잣대로 평가받는 20홈런-20도루는 통산 3차례나 달성했다. 2018년에는 생애 처음 올스타에 뽑혔고, 아시아 출신 타자 최다 홈런(218개), 최다 타점(782개) 기록은 현재진행형이다.

ⓒAFP 연합

FA시장에 외야수 넘쳐나…내년 마흔 나이도 부담

하지만 ‘추추 트레인’의 엔진이 식어간다. 코로나19로 뒤늦게 개막한 2020 메이저리그에서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그동안에도 성적 면에서 기복이 있던 터라 올 시즌이 정상적으로 길었다면 나름대로 만회의 시간이 있었겠지만, 올해 메이저리그는 초단기 시즌(팀별 60경기)으로 치러진다. 추신수는 9월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오른쪽 손목 인대 염좌 부상까지 당했다.

부상 전까지 추신수의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229(109타수 25안타), 5홈런 15타점 13득점 6도루. 팀 내 활약도를 수치로 보여주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은 신인 시절이던 2005년(10경기 -0.1), 2006년(4경기 -0.2·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이후 처음 마이너스(-0.1)를 기록 중이다. 대체선수와 비교해 경쟁력이 없었다는 의미다. 팀 내 최고 연봉선수(조정 전 2100만 달러, 조정 후 777만 달러 / MLB 선수들은 올해 경기 수 단축에 비례해 연봉이 삭감됐다)로서 활약도가 많이 아쉽다. 텍사스는 21일 현재(한국시간) 19승34패(승률 0.358)로 아메리칸리그 최저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추신수의 WAR은 현역 메이저리거 최다인 52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웠던 2018년 +2.8, 2019년 +1.5였다.

텍사스에서 7년간 통산 WAR은 +8.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7시즌 통산 +21.8), 신시내티 레즈(1시즌 +4.6)에서의 활약을 기대하면서 7년간 1억3000만 달러(약 1500억원)를 안겨준 텍사스로서는 자못 아쉬운 성적이다. 이 때문에 추신수는 최근 몇 년간 트레이드설에 시달렸다.

FA계약 마지막 해인 올 시즌에도 트레이드 마감 시한까지 추신수의 이름은 계속 입길에 올랐다. 고액 연봉 탓에 트레이드되지는 않았으나, 올 시즌 이후 텍사스와의 작별은 예정된 듯하다. 존 대니얼스 텍사스 단장은 최근 ‘엠엘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한다”고 못 박았다.

추신수는 아직 은퇴를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지난 9월 6일 텍사스 지역지 ‘댈러스 모닝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나는 1~2년 더 뛸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몸값을 한껏 낮춘다고 해도 그는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마흔 살이 된다. 더군다나 메이저리그 FA시장에는 외야수가 넘쳐난다. 하물며 올해는 지명타자 출전이 잦았다. 그의 최대 장점인 선구안도 2018년을 기점으로 내리막에 있다. 올 시즌 출루율은 0.317을 기록 중이다. 볼넷/삼진 비율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택지가 좁다면 국내 복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2018년 12월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가족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열혈 롯데팬인 추신수, 한국 들어오면 SK 유니폼 입어야   

추신수가 한국행을 결정한다면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어야만 한다. SK는 2007년 4월 열린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에서 추신수를 지명했다. 최희섭(KIA 타이거즈 지명), 송승준(롯데 자이언츠 지명), 채태인(삼성 라이온즈 지명), 이승학(두산 베어스 지명), 류제국(LG 트윈스 지명)이 이 과정을 통해 2년 유예 기간(아마추어 때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한 선수는 국내 복귀 뒤 2년 동안은 프로팀에서 뛸 수 없다) 없이 국내 팀에 합류했고, 김병현 또한 이 때문에 현대 유니콘스로부터 지명권을 물려받은 히어로즈 유니폼을 2012년에 입었다.

그러나 ‘부산 사나이’ 추신수는 어린 시절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열혈팬이었다. 외삼촌이 롯데 레전드 박정태 전 2군 감독이다. 미국 스포츠 채널인 ESPN이 KBO리그를 중계하자 “나는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추신수의 보유권이 SK에 있는 한 그는 무조건 1년은 인천에 둥지를 틀어야만 한다. 특별 지명된 해외파가 국내로 복귀했을 때 1년간은 트레이드를 할 수 없는 규약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 토박이’ 김병현도 히어로즈에서 두 시즌 뛴 뒤 고향 팀인 KIA로 트레이드됐다.

추신수가 KBO리그에서 뛰기를 결심한다면 SK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전력 보탬은 물론이고 어린 선수들이 그로부터 선진 야구 기술이나 자세 등을 배울 기회가 생긴다. 올해 무관중 경기를 많이 치르면서 팬 몰이에 브레이크가 걸린 KBO리그로서도 2012년 박찬호가 돌아왔을 때처럼 흥행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추신수로서는 미국에 터를 잡은 가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추신수의 아들은 현지에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추신수의 가족 사랑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찬호가 미국과 일본에서의 프로 생활을 마치고 KBO리그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을 때(2012년)도 그의 나이 마흔 살이었다. 포털사이트에 최근 올린 메이저리그 일기에서 “만약 내년에도 선수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면 딱 한 번만이라도 재미있게, 야구를 즐기고 야구와 어울리고 놀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던 추신수. 그는 내년 스프링캠프 때 어느 팀 숙소 앞에서 새벽 4시30분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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