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추석을 맞으며
  • 소종섭 편집국장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09.28 09:00
  • 호수 16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런 추석을 맞을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추석은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상징하는 명절이었습니다.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들판은 황금물결을 이루기 시작합니다. 하늘은 한없이 높아만 갑니다. 콩은 밭에서 여물어갑니다. 감나무의 감은 탱탱해집니다. 모두 이맘때쯤 일어나는 자연의 변화입니다. 그 바뀜을 몸으로 마음으로 한껏 즐겼던 때가 추석이었습니다. 지난해까지 그랬습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형제자매들이 간만에 모여 웃음꽃을 피우던 때도 추석입니다. 조카들까지 모이면 시끌시끌했지요. 조용하던 시골집에 생기가 돌곤 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 어릴 적 동네 친구들도 이때 많이 만납니다.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다 보니 평소에는 만나기가 힘듭니다. 누군가 음식점에 터를 잡고 불러내면 하나둘 모여들어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횟수가 좀 줄긴 했지만요.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한 지인은 “고향 친척이 안 왔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대놓고 오지 말라고 한다”고 분위기를 전합니다. 혹시라도 코로나19가 퍼질까 봐 서울 등에서 외지인들이 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마을 입구에 오지 말라고 플래카드를 걸어 놓은 동네가 한둘이 아닙니다. 정부 당국에서도 그런 흐름을 권장합니다. 이번 추석이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고비라며 한껏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킵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추석 연휴 때 제주도에 제발 오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것도 이색적입니다. 추석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은 사라졌습니다. 사회가 위축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온통 “만나지 말라” “오지 말라” 하지만 이 와중에도 우리는 ‘사랑’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단절은 끊어짐을 뜻하지 않습니다. 고향에 가지 못하고 성묘도 여의치 않지만 이 휴지기는 서로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남아 있는 가족 간 정과 배려를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만나지 못하는 가족 간 애틋함을 마음에 새기는 나날입니다. 그래서 추석은 다시 넉넉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랑과 희망이란 단어를 각인시킵니다. 쓸쓸하고 답답한 상황이기에 더욱 소중한 추석으로 의미가 재해석됩니다.

추석을 앞둔 정치권은 오늘도 쟁투에 여념이 없습니다. 말로는 협치를 내세웁니다. 현실은 제각각입니다. 편 가르기는 계속되고 오가는 말은 거칩니다. 진영 논리는 여전히 위세를 떨칩니다. 국민은 지쳤습니다. 민생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19 상황에 가려진 많은 것들을 잊고 있는지 모릅니다. 국가의 미래와 관련해 중요한 것들입니다. 세계 최고를 기록 중인 저출산율과 자살률, 심화되는 수도권 집중과 더 벌어지는 양극화…. 미래를 내다본 구조 개혁의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이번 추석에는 한 번 호흡을 가다듬어 보면 어떨까요? 보름달을 보며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은 어떨까요? 나는 그리고 우리는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가.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