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념 구호보다 언행이 말해 주는 정치
  •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원장․정치학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5 17:00
  • 호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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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을 거칠게 성토하는 말이 마이크를 타면서 논란이 됐다. 이전에도 “소설 쓰시네”를 비롯해 추 장관의 격한 발언이 몇 번 도마에 오른 적이 있던 터이다. 일단 추 장관의 유감 표명으로 지나갔다. 오죽했으면 그런 격한 발언이 나올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성격 탓이든, 정치 상황을 반영한 것이든, 정치인들의 언행은 내세우는 이념이나 정책 이상으로 우리 정치를 결정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김도읍 간사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김도읍 간사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우리 정치의 극단적인 양극화도 정치인들의 거친 언행과 함께하고 있다. 이념과 정책적 차이가 불가피한 대립을 만들고 있다기보다 세력 싸움과 이에 따른 거친 언행이 정책적·정치적 양극화를 주도한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아냥도 사실은 정책적인 혼돈이라기보다 언행과 정책의 괴리였다. 물론 당시 진보진영에서는 재벌 정책이나 개혁입법의 실패를 두고 우회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애초에 구체적인 좌파적인 정책을 내세웠던 것이 아니다. 급진적인 언행들이 좌회전 신호처럼 간주되었을 뿐이다. 이 급진적인 언행들이 당시의 정치 상황을 만들었고, 이에 대한 불신이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율 추락으로 이어졌다. 당시 유시민 장관의 이른바 ‘싸가지’ 논란이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언행의 대립은 자칫 모든 정치적 사안의 대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만큼 소통의 여지가 없어지고 서로를 수렴하는 중용의 길이 막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념과 정책이 공리적으로 수렴하기보다 세력 대결의 도구가 돼 점차 양극화된다. 정치인들의 태도와 언행을 중심으로 우리의 정치를 볼 필요가 있다. 협치도 언행의 공감이 바탕에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 정치 분석에서 여전히 서구적인 보수-진보 개념을 많이 따진다. 그러면서 역으로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새삼 거론한다. 그만큼 보수-진보 개념이 실질적인 내용보다는 정치세력들을 지칭하는 구호로 쓰이고 있음을 말한다.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세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커지자 보수 개념을 탈피하고자 하는 쪽도 있다. 헌신과 도덕성으로 호감을 이끌었던 진보세력의 일부도 이제는 기득권 세력이 돼 있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념적 구호 못지않게,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정치적 덕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과 약자를 측은해하는 마음, 자신들의 과오를 부끄러워하고 책임지는 자세 등이 강조될 때 우리 정치가 권력투쟁 이상의 공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공적 신조가 실종된 채 민낯의 권력투쟁이 압도하는 요즘의 한국 정치 상황에서 더욱 절실하다.

정치적 덕목을 공유할 때 공존의 정치가 가능하다. 가치와 덕목을 공유한다면 정책의 차이는 전략의 차이일 뿐이다. 구존동이(求存同異)가 모색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공통의 위기의식이 모처럼 여야 간의 정책적 합의를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공존공생을 위한 새로운 사회 전략들이 거론된다.

정치 역시 그렇다. 과도한 신념이 만들었던 독선적 태도, 민낯의 권력투쟁이 만들고 있는 거친 언행, 우리 정치의 극복 과제다. ‘사람이 먼저’라는 정치적 구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사람됨이 먼저’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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