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플랫폼 노사의 ‘상생’…라이더스, 이제 ‘노동자’ 인정받는다
  • 서지민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0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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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배달플랫폼 노사 합의문 발표…라이더스의 노동자 지위 및 노조 결성 권리 인정
배민·요기요·스파이더크래프트 참여…7만5000명 규모 라이더 해당될 듯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서울 강남역에서 플랫폼 노동에 정당한 노동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3일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서울 강남역에서 플랫폼 노동에 정당한 노동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달플랫폼 기업과 플랫폼 노동자측이 자발적 협약을 통해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했다.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자(근로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노동법의 사각지대를 노사가 협약을 통해 메운 것이다.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은 6일 오전 서울 중구 YWCA회관에서 1기 ‘배달 서비스’ 관련 협약식을 열고 배달 라이더들의 근로자 지위 인정 및 플랫폼 업종 노사의 향후 과제 등이 담긴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 포럼의 1기는 올해 4월1일 출범해 배달 라이더들의 권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번 협약에 참여한 기업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배달의민족, 요기요, 스파이더크래프트다. 노조 측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라이더유니온이 참여했다. 해당 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배달 라이더는 7만5000명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합의문은 배달 서비스의 정의 및 플랫폼 노동과 노동조합의 정의를 명시하고 있다. 또 배달 라이더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게 했고, 기업은 이를 정식 노조로 인정하고 단체교섭의 주체로 존중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정규직 고용이 필요할 때는 기존에 고용돼 있던 라이더들을 우선 채용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또 기업은 배달 라이더들에게 업무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배분하고, 경력·지역 등의 차이에 따라 라이더들에게 업무를 다르게 제시할 경우 이를 라이더 측에 설명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업은 알고리즘에 따른 업무 배분을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배달 배분 기준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협약으로 관련 정보를 노동자들도 알 수 있게 됐다.

배달 라이더들의 안전 관리 책임 조항도 명시됐다. 기업은 라이더들의 산재보험 가입을 독려하고, 안전 교육 시행 및 보호 장구를 제공한다. 또 심야·혹한·혹서기 등 악천후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위기에서 기업이 라이더들을 위한 안전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 협약의 노동자 측으로 참여한 라이더유니온은 이날 성명을 통해 “알고리즘을 통한 업무 배분의 문제, 안전배달료, 모든 라이더의 노조할 권리 등 유니온이 주장했던 내용이 합의문에 담겼다. 원칙적인 수준이지만 노사 간 공식 의제로 확정됐다는 점에서 진전”이라며 “아직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도 추가로 참여해야 플랫폼 업계 전체 생태계가 발전한다”고 밝혔다.

 10월6일 오전 서울 중구 YWCA회관에서 열린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의 ‘배달 서비스 협약식’에 참석한 이병훈 사회적 포럼 1기 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6일 오전 서울 중구 YWCA회관에서 열린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의 ‘배달 서비스 협약식’에 참석한 이병훈 사회적 포럼 1기 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 노사의 ‘상생’…유의미한 라이더스 ‘노동자 지위’ 인정

합의문의 핵심은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자 지위 인정이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의 배달 플랫폼 업체의 이름을 달고 배달을 하는 라이더들은 현행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정기적·고정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만을 근로자로 인정하며 플랫폼 노동이란 개념을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라이더스들은 자율적으로 업무를 선택하고 배달 건당 돈을 받기 때문에 자영업자 또는 특수고용노동자와 가깝다. 

그러나 실상은 배달플랫폼에 직접 업무 지시를 받고 본업처럼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노동자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이런 면에서 이번 협약은 노사가 업계의 ‘상생’을 위해 자율적으로 노동자 지위를 합의했다는 데 의의가 크다. 이번 합의를 통해 라이더들은 산재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고, 배달 중 사고가 났을 때 기업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한편으로는 노사 간의 자율 협약이기 때문에, 실제 노사 간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어느 수준으로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지는 미지수다. 협약이 법적 근거를 얻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등의 노동법 개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따라서 포럼은 이날 협약식에서 관련 법률 제정 및 플랫폼 노동자 사회안전망 구축,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제도적 지원 등을 정부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협약식에 참석한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플랫폼 노동은 코로나19 이후 전 국민에게 필수적인 서비스로 인지됐다”면서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종합 대책을 준비 중이며,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개선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포럼 위원장을 맡았던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협약을 통해 배달플랫폼이 업계의 상생을 위한 좋은 모델로 정착할지, 지금까지처럼 경쟁만 난무할지는 앞으로 노사가 어떻게 실천하는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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