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3법을 어떻게 볼 것인가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15 10:00
  • 호수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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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 감독법 두고 찬반 논란…방향 옳지만 보완 불가피

상법 일부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금융그룹 감독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목표는 경제력 집중 억제와 소수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기업 총수들에 대한 견제다. 담합 등 기업의 불법행위로부터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려는 목표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여당은 ‘공정경제 3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비판하는 사람들은 ‘기업규제 강화 3법’이라고 한다. 부작용이 우려되고 자칫 기업 활동을 옥죄는 ‘독소’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업규제(공정경제) 3법은 과연 정부와 여당의 말대로 기업의 성장과 공정경제를 실현할까, 아니면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기업 활동의 위축만을 부를까.

배진교 정의당 의원(오른쪽)이 9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상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진교 정의당 의원(오른쪽)이 9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상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경제 vs 기업규제

사실 어디까지가 공정경제 실현을 위해 필요한 일이고 어디서부터는 기업 활동을 옥죄는 ‘독소’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논란이 가장 뜨거운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임’ 조항부터 보자. 현행 상법은 기업 이사를 선임한 후, 그 가운데서 감사위원을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개정안은 애초부터 일반 이사와 분리해 이사 겸임 감사위원 1명을 선출해야 한다. 대주주 의결권도 3%로 제한된다.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강화해 대주주의 전횡을 막자는 취지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제도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이념을 반영한 시도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은 자칫 단기 주가 상승만을 목표로 하기 쉽다. 이 대목에서 투기 펀드의 경영권 개입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액주주를 위하자고 도입하는 제도지만 자칫 투기 펀드만 재미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해 1월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은 현대자동차에 주당 2만1967원을 배당하라고 요구했다. 이 경우 배당 총액은 전년도 순이익의 세 배가 넘는 5조8000억원에 달한다. 엘리엇은 사외이사 후보도 추천했는데, 수소경제 분야에서 현대차와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의 핵심 인사였다. 비슷한 일은 앞으로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기업들은 담합에 대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도 부작용이 클 것으로 우려한다. 현재는 담합의 경우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공정위의 고발 없이도 수사기관이 수사할 수 있게 된다. 소액주주나 일반 시민의 소송에 기업들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뜻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어떨까. 모회사의 소액주주가 자회사의 임원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 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역시 소송이 늘 수 있다. 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도 마찬가지다. 소송 대상의 확대에 소송 절차 간소화까지 이뤄진다면 제소 사례는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소송이 증가하면 기업이 법적인 분쟁 해결을 위해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늘어난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경영권 보호에 많은 재원을 투입하게 되면 역시 본연의 기업 활동에 쏟아야 할 에너지가 분산되고 투자 여력도 줄어들 수 있다. 비판적인 입장으로 본다면 기업규제 3법은 여러모로 투기 펀드의 이익을 대변하고 저성장을 고착시킨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쁜 일은 못 하게 만드는 것이 옳다. 총수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은 다르다. 총수 이익을 위해 기업이 희생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공정경제 3법’, 특히 상법은 이렇게 기업에서 빼먹는 도둑을 막자는 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은 혁신의 과실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혁신의 주체나 당사자인 기업과 근로자, 투자자는 그 과실을 우선 챙길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이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소비자 권익 강화, 기업의 신뢰 제고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기업도 적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실 독립적인 감사위원 선임과 이중대표소송 제도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부작용도 우려하는 수준만큼은 아닐 수 있다. 집단소송제의 경우 주가 조작을 비롯한 증권 분야에만 한정된 집단소송제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2005년이었다. 하지만 15년 동안 제소 사례는 10건에 지나지 않는다. 제도 도입 당시 소송 남발을 우려하던 목소리가 무색하다. 여전히 비용은 많이 들고 시간은 오래 걸리며 승소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도가 달라진다고 해도 기업을 상대로 하는 소송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법 개정안의 대상도 매우 제한적이다. 감사의 분리선출 제도가 적용되는 곳은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 혹은 자산 1000억원 이상이며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기업으로 국한했다.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권 폐지도 대상을 좁혀 경성담합에만 적용하도록 했다.

 

재계 의견 수렴 없는 규제 맞나?

물론 필요한 일이라고 해서 비판이나 지적에 귀를 닫는 것은 곤란하다. 사실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입법례를 찾을 수 없는 규정이다. 미국에서도 감사위원회 독립성 강화를 위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있을 뿐 주주 의결권 제한이나 분리선임은 없다. 독일도 주주 의결권은 제한하지 않는다. 감사위원회 독립성 강화가 목적이라면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의 요건을 강화하거나 미국처럼 감사위원회 전원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방법도 있다. 투기 펀드가 제도의 빈틈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완이 바람직하다. 투기적 펀드의 경우 3% 규제를 적용하지 않거나 특수관계인 합산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예외 규정을 두면 된다.

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먼저 국무위원의 심의를 거치고,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다음 국회에 제출한 뒤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소통하겠다는 건 결정은 끝났으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얘기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재계와 대화를 통해 결론을 내린 다음 추진하려 했다가는 로비에 밀려 결국 관철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기업에 적용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재계의 의견을 먼저 청취하지 않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다. 결론은 이렇다. 기업도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하고, 기업을 대표하는 경영자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공정경제 3법’의 방향은 옳다. 하지만 예상되는 부작용도 있다.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 일을 추진하는 방식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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