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내 ‘왕따설’ 떨쳐내지 못하는 이강인의 행보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13 16:00
  • 호수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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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주 신뢰에도 이적 타진
과도한 부담과 동료들의 따돌림, 불안한 미래까지 겹친 듯

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최초로 10월까지 연기된 유럽 축구 ‘여름 이적시장’의 문이 닫혔다. 현지시간으로 10월5일 자정을 끝으로 이적 협상도 정리됐다. 이제 겨울 이적시장이 열릴 때까지 자유계약 신분인 선수들만 계약이 가능하다. 손흥민(토트넘)의 이적이나 김민재(베이징)의 유럽 진출 등의 루머는 결국 현실화되지 않았다. 북미프로축구에서 뛰던 황인범(카잔)만 러시아 무대로 향하며 새롭게 유럽파로 가세했을 뿐이다. 

이적시장이 닫히기 전까지 이적 가능성이 계속 언급되던 선수는 오히려 이강인(발렌시아)이었다. 스페인 언론들은 일제히 이강인과 소속팀 사이의 이상 기류를 보도했다. 여름 이적시장 마감 직전 깜짝 이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2022년 여름까지인 기존 계약을 2025년까지 3년 더 연장하는 발렌시아의 제안을 이강인 측이 거절했으며, 프랑스·이탈리아·독일 클럽들이 러브콜을 보냈다는 것. 결국 이적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구단주의 절대적인 신뢰에도 이강인은 떠나길 원하는 분위기다. 

발렌시아의 이강인이 9월29일(현지시간)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의 레알레 아레나에서 열린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2020~21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4라운드에 선발 출전해 경기를 펼치고 있다. ⓒEPA연합

경기 출전 시간, 지난해보다 10분 늘어난 게 전부

발렌시아 1군 진입 3년 차를 맞은 이강인은 매년 여름 이적을 놓고 잡음이 일었다. 지난해 U-20 월드컵 MVP의 영예를 안은 그는 많은 유럽 팀의 관심을 받았다. 이강인도 꾸준한 출전 시간 확보를 통한 성장을 강조하며 발렌시아 측에 임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강인의 출전 시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발렌시아는 그 어떤 이적도 허락하지 않았다. 구단주의 강한 집착 때문이었다. 2014년 팀을 인수한 싱가포르 출신 사업가 피터 림은 같은 아시아 출신인 이강인을 성공작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강인은 구단주의 약속을 믿고 매년 여름 잔류했지만, 현실은 ‘스쿼드 플레이어(명단에는 들지만 출전 빈도는 낮은 선수)’였다. 지난 시즌 총 24경기를 뛰었는데 선발출전은 6경기뿐이었고, 평균 출전 시간도 34분 정도였다. 팀 내 일부 베테랑들은 구단주와 감독의 비호를 받는 유망주들을 따돌렸고, 이강인도 그 피해를 보았다. 결국 지난여름에도 이강인은 팀을 떠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세 번 속진 않겠다는 각오였다. 

그러자 피터 림 구단주는 더욱 강경하게 이강인 띄우기에 나섰다. 이강인을 비롯한 유망주를 따돌린 주범으로 지목된 주장 다니 파레호를 내보냈다. 아울러 유망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의 지도자인 하비 그라시아 감독을 선임했다. 그라시아 감독은 시즌 준비 단계에서 치른 평가전 때 만 19세 유망주에 맞춰진 전술과 기용 방식을 보여줬다. 레반테와의 2020~21시즌 개막전에 선발 출전한 이강인은 2도움을 올리며 입단 후 최고의 출발을 선보였다. 자신에게 ‘올인’한 듯한 팀 분위기 속에 결국 이강인도 다시 한번 팀 잔류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발렌시아가 제시한 비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개막전 맹활약에도 셀타 비고와의 2라운드에서는 전반 45분만 뛰고 교체됐다. 3라운드 우에스카전은 막판 5분 출전이 전부였다. 4라운드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경기에서 다시 선발로 복귀해 70분을 뛰었지만, 5라운드 레알 베티스전에는 다시 교체 출전으로 34분만 출전했다. 올 시즌 5경기에서 출전 시간은 총 226분, 평균 출전 시간은 지난 시즌 대비 10분가량 늘어난 게 전부다. 10월6일 현재 2승1무2패의 발렌시아는 리그 8위로, 9위를 기록하며 클럽대항전 출전권조차 획득하지 못한 지난 시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위치에 있다.

이강인이 9월20일 셀타 비고와의 경기에서 프리킥 처리를 놓고 동료와 언쟁을 벌이고 있다. ⓒSPOTV

“이강인, 아직 동료들의 신뢰와 존중 못 받아”

이강인의 출전 시간이 들쭉날쭉해진 데는 뜻밖의 사건도 있었다. 셀타 비고 원정에서 전반 34분 프리킥 처리를 놓고 팀의 주장 호세루이스 가야와 언쟁이 있었다. 상대의 파울을 유도하며 직접 프리킥을 얻은 이강인은 자신이 선호하는 위치에서 왼발로 처리하려 했지만, 가야는 자신이 차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강인은 공을 뒤로 감추며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다른 동료의 중재 속에 가야가 프리킥을 처리했지만, 슛은 골대를 허무하게 벗어났다. 이 장면을 놓고 스페인 현지에서도 큰 논쟁이 일었다. 나이와 관계없이 정교한 왼발로 프리 시즌부터 전담 키커를 맡은 이강인이 찼어야 한다는 입장과 그래도 주장의 서열을 존중했어야 하는데 이강인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행동했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그런데 전반 종료와 함께 이강인이 교체 아웃됐다. 그라시아 감독이 그라운드 내 역학 관계를 고려해 주장인 가야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 장면은 ‘왕따설’의 주동자로 찍힌 파레호가 떠났음에도 이강인의 팀 내 입지에 대한 선수단의 불만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기량을 인정받은 동등한 위치의 동료라는 시각보다 구단주와 감독의 비호 속에 출전하는 어린 유망주라는 편견이 짙게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파레호의 경우 발렌시아 선수들과 팬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던 스타였기에 이강인이 아시아 구단주와 함께 그를 몰아냈다는 모양새도 형성됐다. 특급 유망주에 대한 무거운 기대치, 구단주에 대한 불만과 내부 정쟁의 중심에 서 버린 상황까지, 이강인에게는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유력지인 ‘마르카’는 프리킥 논쟁을 놓고 “이강인은 좋은 재능을 지녔고 긍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지만, 아직 동료들의 신뢰와 존중은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논평했다. 

프리킥 논쟁을 기점으로 다시 출전 시간이 들쭉날쭉해지자 이강인과 발렌시아의 결별 가능성도 다시 언급됐다. ‘수퍼데포르테’는 “이강인이 발렌시아와 계약을 연장하는 데 여러 의구심을 품고 있다”며 “최근 발렌시아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이적한 페란 토레스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2000년생인 토레스는 이강인과 함께 발렌시아 유스 아카데미가 배출한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지만 기존 계약을 1년6개월 남기고 맨체스터 시티로 떠났다. 이적 후 토레스는 자신과 이강인이 파레호를 중심으로 한 베테랑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발렌시아의 불안한 비전도 이강인이 미래를 고려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발렌시아는 유망주였던 토레스와 주전 스트라이커 로드리고를 내보내며 700억원이 넘는 이적료 수입을 챙겼지만 재투자는 없었다. 피터 림 구단주는 코로나19로 인한 수입 감소와 재정 위축을 이유로 선수단 투자에 소극적이고, 그 결과 발렌시아는 지난 시즌보다 전력이 더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데나세르’는 10월6일 “그라시아 감독은 구단이 영입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매우 언짢아한다. 그는 진지하게 사임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혼탁한 팀 상황 속에 이강인은 다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이다. 이미 세 차례나 당한 발렌시아의 희망고문에 지쳤다. 거듭되는 계약 연장 요청을 이강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발렌시아도 선수의 가치가 그나마 높을 때 이적시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기존 계약이 2년 남은 상황에서 이르면 오는 겨울, 늦어도 내년 여름에는 이적시켜야 제대로 몸값을 받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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