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 ‘중도 사퇴’ 미스터리…히어로즈, 야구계 빌런으로 전락하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18 10:00
  • 호수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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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구단, 감독 지휘권에 지속적 간섭 정황

프로야구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아직 역량이 부족했고 채울 것이 많아서”라는 사퇴의 변을 남겼다. 사퇴의 변을 남길 당시 정규리그 종료까지 남은 경기는 12경기. 팀 성적은? 73승1무58패(승률 0.557)로 3위였다. 플레이오프 직행권이 달린 2위와는 불과 1경기 차이. 사실상 포스트시즌 진출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런데 감독이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놨다고? 모든 게 물음표로 남는다. 그는 왜 관뒀을까. 아니, 스스로 그만둔 것이 맞을까.

KBO리그에서 유일하게 모그룹이 없는 팀, 키움 히어로즈를 둘러싼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10월8일 오후 난데없이 손혁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부터다. 사퇴 이유도 그렇고, 사퇴 시점도 애매하다. 게다가 손혁은 올해 처음 감독이 된 ‘초짜 사령탑’이다. 초보 감독으로 정규리그 3위 성적은 꽤 준수한 편이다. 히어로즈는 지난해에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어도 정규리그에서는 3위를 했었다. 그런데도 감독 사퇴 이유가 ‘성적 부진’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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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구단, 내놓는 해명마다 궁색하기만

히어로즈 구단의 이후 행보도 수상하다. 보통 감독이 시즌 중 자진 사퇴하면 잔여 연봉 보전을 해 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피 터지는 순위 싸움이 한창일 때 갑자기 수장이 전장을 떠나면 향후 위험부담은 고스란히 구단이 안게 된다. 그런데도 히어로즈는 손 감독의 내년 연봉까지 보전해 주기로 했다. 김치현 히어로즈 단장은 “손혁 감독에게 고마운 부분이 많아서”라고 했다. ‘자진 사퇴’가 아닌 사실상 경질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더 나아가 히어로즈 구단은 김창현 퀄리티컨트롤(QC)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보통은 감독이 중도 사퇴하면 수석코치 혹은 2군 감독처럼 현장 경험이 많은 코치진이 대행을 맡는다.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이 지난 6월 사퇴한 뒤 최원호 2군 감독이 잔여 시즌을 책임지고 있고, SK 와이번스 염경엽 감독이 스트레스로 인한 입원 등으로 더그아웃을 비운 뒤 박경완 수석코치가 팀을 이끄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히어로즈는 35세의 ‘새내기 코치’를 선택했다. 김창현 코치는 대전고와 경희대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프로 경력은 전혀 없다. 2013년부터 전력분석팀에서 일하다가 올해 코치로 승격됐다. 영상과 데이터를 분석하는 게 그의 몫이었다. 김 단장은 “홍원기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으면 김 코치가 수석코치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코치가 올 시즌 손 감독과 함께 중요한 결정을 했기 때문에 감독대행 역할을 잘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구단 설명과 달리 올 시즌 중간에 김 코치의 더그아웃 출입이 금지된 적도 있다고 한다. 손 감독과의 갈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실 지난해 11월 손혁 감독이 히어로즈 사령탑으로 선임될 때도 잡음이 있었다. 장정석 당시 감독의 재계약이 예상되던 가운데, 뜻밖에 손혁 SK 투수코치가 사령탑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야구계에서는 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이 장 감독에게 손 코치를 수석코치로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장 감독이 이를 거부하면서 재계약이 틀어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장 감독은 이장석 전 대표이사가 발탁했고 재계약을 약속했던 사령탑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장정석 감독은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측근’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아무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선임된 손 감독인데 11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도대체 왜?

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 ⓒ스포츠동아

허민 의장의 기행, 선을 넘어…세세한 작전까지 간섭

손혁 감독 중도 사퇴(라고 쓰고 ‘경질’이라고 읽히는) 미스터리는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히어로즈 구단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허민 의장이 있다. 허 의장은 히어로즈 지분 67.56%를 소유한 실질적 구단주인 이장석 전 대표이사가 구단 공금 횡령 및 배임 혐의로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가운데 히어로즈 정상화를 위해 전면에 등장했다. 이 전 대표이사가 이른바 ‘옥중경영’으로 입길에 계속 오르자 2018년 말 히어로즈 이사회가 구성됐고 의장을 허민이 맡게 된 것. 

온라인 게임 ‘던전 앤 파이터’를 제작한 네오플과 소셜 커머스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의 창립자인 허민 의장은 2011년 9월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를 창단, 운영하면서 야구계와 연을 시작했다. 2013년에는 미국 독립리그에 입단해 투수로 뛰기도 했고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 신청서를 내기도 했다. 한마디로 야구에 푹 빠진 덕후(광적인 팬)다.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이 된 뒤 그의 기행은 선을 넘기 시작했다. 스프링캠프 자체 연습경기에 직접 등판한다거나 2군 훈련장에서 선수를 세워두고 라이브 피칭을 한다든가 하는 상식 밖 행동을 보였다. 최근에는 1군 선수들을 사무실로 불러 캐치볼을 시켰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규리그가 시작된 뒤 스몰볼, 번트 등의 작전 야구를 선호하던 손혁 감독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손 감독은 경영진의 간섭 속에 1군 엔트리 구성이나 선발 라인업 작성 등에서 자율권이 박탈됐다. 투수 기용이나 번트 작전 등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으로 간섭이 심해지니 손 감독으로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던 듯하다. 그는 선수 시절 LG에서 해태(지금의 KIA)로 트레이드되자 이를 거부하고 27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다.    

허민 의장의 전횡은 이장석 전 대표이사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이 전 대표이사 또한 경기 중 선수 기용 등에 대한 쪽지를 더그아웃으로 전달하는 식으로 구단 최고 존엄의 지위를 남용했었다. 히어로즈 전·현 실권자들에 의해 감독 고유의 지휘권은 번번이 뭉개졌다. 야구계 원로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현대 유니콘스 해체 속에서 야구계에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던 서울 히어로즈. 우리담배에서 넥센으로, 넥센에서 키움으로 네이밍 스폰서가 바뀌는 와중에 상상 이상의 돌발행위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창단 초기에는 주축 선수 팔기로 구설에 오르더니 급기야 구단주(이장석)가 만년 적자인 야구단에서 공금을 쏙쏙 빼서 수백만원의 월세를 내고 유흥비로 탕진했다. 이때 히어로즈 2군 선수들은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 전 대표이사에 이어 허민 의장 또한 ‘데이터 야구’라는 미명 아래 오프라인 야구게임을 하듯 감독 고유의 권한을 예사로 침범했다.    

이쯤 되면 ‘히어로(영웅)’가 아니라 ‘빌런(악당)’이다. 야구계의 빌런. (부정적 의미의)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바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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