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한화·IBM…나눠야 커지는 ‘회사 분할의 마법’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20.11.11 14:00
  • 호수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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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기업 환경도 급변…국내외 기업 생존 위해 회사 쪼개기 잇달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격언은 이제 옛말이 됐다. 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인수·합병(M&A) 못지않게 회사 분할을 꾀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사업 경쟁력 강화나 시대 변화 적응 등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살기 위해 회사를 나누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시장 재편 속도가 빨라지고, 기업평가 가치가 다양해지는 등 경영 변수가 커지면서 기업 분할 속도도 더욱 빨라지는 모양새다.

LG화학은 최근 배터리 사업부의 물적 분할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10월30일 열린 LG화학 주총 모습 ⓒ연합뉴스
LG화학은 최근 배터리 사업부의 물적 분할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10월30일 열린 LG화학 주총 모습 ⓒ연합뉴스

‘뭉치면 산다’는 격언은 옛말

최근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 물적 분할은 새로운 사업을 집중적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다. 전기차 배터리가 삼성의 반도체처럼 LG의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게 됐고, 기존 사업들과 나눠 집중적으로 투자받고 육성할 필요가 생겼다. LG화학 관계자는 “석유화학과 배터리의 사업 특성이 달라 독립적 의사결정이 힘들었는데 분사로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고, 배터리에 3조~4조원의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자금 확보도 한층 용이해졌다”며 “분할되는 배터리뿐 아니라, 기존 석유화학 부분도 더욱 색깔에 맞게 집중 경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단기적 주주 가치 제고 측면에서 봤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향후 LG화학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LG그룹은 이미 LG생활건강을 통해 회사 분할의 달콤함을 맛본 바 있다. LG생활건강은 2001년 4월 LG화학에서 인적 분할해 신설됐다. B2B(기업 간 거래)를 주로 하던 LG화학에서 떨어져 나와 화장품 등 생활용품에 집중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LG생활건강의 시가총액은 약 23조8000억원으로 2001년 대비 약 53배 성장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회사 분할 이후 정체성에 맞는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M&A을 거치며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은 2005년 차석용 부회장 취임 후 코카콜라음료, 다이아몬드샘물, 더페이스샵, 한국음료, 해태htb(구 해태음료) 등을 차례로 사들이며 공격적으로 M&A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인적 분할, 지배구조 개편 방안으로도 활용

이처럼 특정 사업을 키우기 위해 사업을 분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진 사업 환경 때문에 회사를 떼어내는 경우도 있다. IBM은 최근 IT인프라 사업부를 분사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사업은 IBM의 정통 비즈니스로 회사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클라우드 서비스가 퍼지면서 IT인프라 사업은 점차 구시대 유물이 돼 가고 있었다. IBM은 해당 사업을 분사시키고 클라우드 등 트렌드에 맞는 미래 먹거리에 더욱 집중 투자할 수 있게 됐다. 기존 비즈니스를 붙잡고 있다간 기업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회사 분할만으로 리스크를 줄이기 힘든 경우 분사한 후 매각하기도 한다.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으로 이뤄지는 분사는 매각을 위한 경우가 많다. ㈜한화는 분산탄 사업을 분사한 후 매각까지 하게 됐다. 민간인 피해로 이어지는 분산탄 사업을 계속 영위할 경우 ESG평가(Environment·Social·Governance)를 좋게 받지 못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연기금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ESG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기업들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로 그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분산탄 사업을 계속할 경우 김동관 사장의 한화솔루션이 이끄는 친환경 및 태양광 사업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한화 관계자는 “독립된 법인으로 운영해도 국제사회에서 자회사가 분산탄 사업을 하고 있지 않냐고 문제 삼을 수 있어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 매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일반적 목적과 별개로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이뤄지는 분사도 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국내 기업 분할, 특히 인적 분할의 경우 주주 가치 제고보다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두고 이뤄지는 성격이 크다”며 “인적 분할의 경우 자사주 의결권이 부활하는 특유의 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년 전 현대모비스 모듈·AS부문을 인적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이루려 했으나 엘리엇 등의 반대로 좌절됐다. 하지만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해야 하는 현재 상황을 감안할 때 다시 한번 추진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핵심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라는 사실은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차는 다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TSMC 선전에 다시 거론되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분사설

시장이 급변하면서 세계적으로 분사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시장에선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행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LG화학이 배터리 분사로 사업 경쟁력 제고에 나선 것과 마찬가지로 삼성전자도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파운드리 부문 세계 1위 TSMC는 최근 미국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는 등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며 2위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려 하고 있다. TSMC와의 경쟁에서 밀릴 경우 2030년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 1위를 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계획도 이루기 힘들어진다.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계속 거론되는 것이 파운드리 사업 분사 방안이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분사는 단순히 특정 사업 경쟁력 제고 차원을 넘어 고객사와 경쟁을 피해 더욱 적극적인 영업이 가능해진다는 점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수년 전부터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할 것이란 전망이 업계에서 나왔다. 김기남 부회장이 올해 초 분사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파운드리 부문 세계 1위인 TSMC가 더욱 치고 나가면서 다시 분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떼어내더라도 LG화학 배터리의 경우처럼 시장 반발을 살 가능성은 작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LG화학은 배터리가 주가를 올렸기 때문에 배터리를 분사한다고 하면 당연히 반대가 있을 수 있지만, 삼성 파운드리는 현재 삼성전자 주가를 견인하는 부문이 아니기 때문에 주주들도 긍정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현시점에 파운드리가 분사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존재한다. 분사하면 잘나가는 메모리 부문의 성과를 공유하기 힘들어지는데, 그렇게 해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분사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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