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에 발목 잡힌 정영채 NH투자 사장…3연임 가능할까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1 08:00
  • 호수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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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취임 후 NH투자 사상 최대 실적 행진…‘IB 대부’로 불려
‘옵티머스 사태’ 연루로 정 사장 책임론 급부상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올해 2월 공식 취임하자마자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과 이대훈 농협은행장, 소성모 농협상호금융 대표, 김원석 농협경제지주 농협경제 대표, 김위상 농협대학교 총장 등에게 사표를 받았다.

특히 이대훈 행장은 농협 내에서도 평이 아주 좋은 인사로 꼽혔다. 안정적인 실적 상승의 토대 위에서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 농협금융 CEO 중 처음으로 3연임에도 성공했다. 그런 그가 임기를 시작한 지 3개월도 채 안 된 시점에 돌연 사표를 제출하면서 뒷말이 나왔다. 농협금융 안팎에서는 이 회장 취임 후 ‘친정체제’ 구축이 본격화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오른쪽)이 10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오른쪽)이 10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상 두 번째로 3연임 CEO 탄생하나

이런 ‘인사 태풍’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인사가 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 사장은 ‘정통 농협맨’이 아니다. 2005년 대우증권에서 NH투자증권(옛 우리투자증권)으로 둥지를 옮긴 후 14년간 IB(투자은행) 사업본부장을 맡으며 NH투자증권을 IB부문 업계 1위로 키워냈다.

정 사장은 2018년 3월 NH투자증권 대표에 취임했다. 이후 NH투자증권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 중이다. 최근 2년간 매출은 9조2413억원에서 11조5035억원으로 24.5%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나 순이익 역시 두 자릿수 상승했다. 2018년 4조8000억원으로 자기자본(5조원)에 육박했던 우발채무는 지난해 3조원대로 낮아졌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정 사장은 지난 3월 연임에도 성공했다.

정 사장의 주특기인 IB 부문의 성장이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금융권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NH투자증권 IB 부문의 수익은 2589억원으로 전년 대비 133%나 증가했다. 금융권에서 정 사장을 ‘IB의 대부’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NH투자증권=정영채’라는 공식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화된 올해에도 사상 최대 실적 경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IPO(기업공개) 시장의 최대어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SK바이오팜의 상장 대표주관을 따내면서 매출은 12조838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6% 증가하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8066억원(40.2%↑), 5693억원(19.5%↑)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농협금융 사상 두 번째로 3연임 CEO 탄생도 가능할 것으로 회사 안팎에서는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최근 의혹이 커지고 있는 ‘옵티머스 사태’가 정 사장의 발목을 잡았다. 옵티머스는 우량 공공기관의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속여 투자자들을 모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업체와 부실기업에 투자하고 돌려막기로 거액의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켰다. NH투자증권은 옵티머스 펀드 전체 판매액의 84%인 4327억원을 팔아 논란의 중심에 섰다. 피해자들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NH투자증권 본사에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법무법인을 통해 집단소송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NH투자증권은 ‘피해자 달래기’에 나섰다. 투자 원금에 따라 최저 30%에서 최대 70%까지 차등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피해자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건이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기관의 옵티머스 펀드 투자 경위를 철저히 조사할 것을 지시했고, 검찰은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옵티머스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NH투자증권의 이미지 손실 또한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사장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 당시 김병철 신한금융투자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 사장은 지난해 4월 옵티머스운용 고문을 맡고 있는 김진훈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과 통화한 뒤, 상품 담당 실무자에게 ‘접촉해 보라’는 메모를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지난 10월13일과 16일 국회 정무위와 농림축산식품위에 증인으로 두 차례나 출석했다. 의원들은 정 사장이 김 고문을 만나고 실무 담당자에게 메모를 전달하게 된 경위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처음 증인 출석 때만 해도 정 사장은 “펀드가 아니라 부동산 PF 관련 상의를 위해 김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옵티머스 펀드 판매에 경영진이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16일 농림축산식품위 국정감사에서 정 사장은 “(김 고문에게 받은) 쪽지를 보고 담당자에게 한 번 접촉해 보라고 메모를 남긴 것은 사실”이라고 말을 바꿨다. 메모를 전달받은 실무 직원은 이후 펀드 담당 부서장들과 함께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를 만났다. 이때가 4월말이었다. 이후 6월 중순 내부 검토와 심사를 거쳐 옵티머스 펀드가 NH투자증권에서 판매됐다는 점에서 의문은 여전하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펀드는 운용사에서 먼저 증권사 측에 제안한다. NH투자증권이 판매한 옵티머스 펀드의 경우 판매 경로가 반대였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오른쪽)이 10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20일 여의도 NH투자증권 앞에 모인 옵티머스 펀드 피해자들이 사기 판매 규탄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NH증권 측 “우리가 먼저 검찰에 고발했는데…”

금융권에서는 추후에 있을 금융감독원의 제재 수위에 주목하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라임자산운용 펀드를 판매한 신한금융투자와 대신증권, KB증권 CEO들에게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사전 통보했다. 문책 경고 이상의 제재가 최종 확정되면 해당 CEO는 연임은 물론이고,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정 사장 역시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을 수 있는 만큼 NH투자증권은 물론이고, 관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NH투자증권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회사가 먼저 문제를 파악해 금감원에 신고하고 검찰에 고발한 경우”라며 “상식적으로 내부에 문제나 비리가 있었다면 감추거나 숨기지 먼저 신고했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앞선 라임 사태 때는 판매사가 손실을 알면서도 숨겼고, 내부 공모자도 있었다. 우리와는 케이스가 다르다”면서 “향후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투자자 구제에도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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