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EPL에서 손흥민과 맞대결 모습 볼 수 있을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2 16: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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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발렌시아와의 재계약 거부…이르면 이번 겨울 맨시티 이적 가능성

결국 이강인이 자신을 키운 발렌시아와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다. 2011년 발렌시아 유스팀과 계약하고 유럽으로 건너가 햇수로만 10년째 한 팀에 몸담았던 그는 안정된 출전 시간과 자신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새 팀으로의 이적을 요청한 상태다. 세계 최고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우승 후보인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가 이강인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스페인 언론들은 최근 일제히 이강인이 발렌시아의 재계약 요청을 거부하며 이적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오는 2022년 6월까지 발렌시아와 계약돼 있는 이강인은 3년 추가 연장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 시즌을 앞두고 구단주인 피터 림은 유스 시스템에서 성장한 이강인을 중심으로 한 팀 재편을 진행했다. 싱가포르 출신 재벌인 피터 림은 박지성과 손흥민을 잇는 아시아 출신의 차세대 슈퍼스타를 팀의 경기력과 상업성의 중심에 세우길 원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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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르디올라 감독의 맨시티, 강력한 러브콜

하지만 발렌시아는 이강인을 중심으로 한 젊은 팀으로의 변화를 추구하다 큰 부진에 빠졌다. 12월7일 기준 프리메라리가 13위에 그치며 지난 시즌(9위)보다 더 하위권에 처졌다. 자칫 강등권으로 내려앉을 수 있다. 기존 베테랑 선수들을 내보낸 뒤 충분한 보강이 되지 않은 결과다. 불안정한 팀 운영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재정난에 빠진 상태다. 

이강인도 출전 시간을 충분히 부여받는 조건으로 일단 잔류했지만, 약속과 다른 상황이 연출됐다. 리그 12경기 중 6경기에만 선발 출전했고, 풀타임은 한 번도 없었다. 총 9경기에 나섰지만 경기당 출전 시간은 50분가량으로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하비 그라시아 감독과의 보이지 않는 불신도 가득하다. 프로 계약을 맺고 세 번째 시즌을 치르는 이강인으로선 더 나은 조건에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팀으로의 이적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스페인 일간지 ‘수페르데포르테’에 따르면 이미 이강인은 다수의 유럽 팀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맨시티 외에도 이탈리아 유벤투스, 네덜란드 아약스, 프랑스 마르세유 등 2019년 FIFA U-20 월드컵 이후 이강인 영입에 관심을 보인 팀들이 여전히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지난 10월 발렌시아 측에 이적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이강인은 확실한 경쟁력을 갖고, 자신에게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팀을 찾는 중이다. 

발렌시아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다. 계약이 1년6개월 남은 상황에서 이강인을 이적시켜 가장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는 시기는 이번 겨울과 내년 여름이다. 그 기간이 지나면 이강인은 보스만 룰에 따라 발렌시아의 의사와 관계없이 다른 팀과 교섭을 시작할 수 있다. 자칫 10년간 공들여 육성한 특급 유망주를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잃을 수 있다. 계약 기간이 많이 남을수록 이적료가 높게 책정되는 만큼 이르면 이번 겨울에 떠날 가능성이 크다. 이강인도 빨리 출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팀으로 가서 적응하길 원한다. 

이강인의 다음 행선지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맨시티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적료 문제만 남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페인의 일간지 ‘라 라손’은 “이강인은 발렌시아와 재계약할 의사가 없다. 그라시아 감독에 대한 신뢰가 사라져 떠나려 한다. 맨시티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고, 영입 경쟁의 선두에 서 있다”고 보도했다. 

 

‘발렌시아→맨시티’ 이후 기량 급성장한 토레스에 주목

이강인의 바이아웃(구단 간 협상 없이 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 금액)은 8000만 유로(약 1067억원)다. 하지만 이 금액이 그대로 적용되긴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팀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상태다. 발렌시아 역시 이강인의 시장 가치가 거기에 마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오는 1월에 이강인을 보내 최대한 많은 이적료를 회수할 수 있도록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비교되는 사례가 페란 토레스다. 지난 7월 발렌시아에서 맨시티로 이적한 토레스는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이강인과 함께 유스에서 동반 성장한 측면 공격수지만 재계약을 거절하고 이적했다. 발렌시아는 이적시킬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을 놓쳐 이적료 2000만 유로(약 262억원)의 헐값에 특급 유망주를 보내야 했다. 이적 후에는 “주장 다니 파레호가 이강인과 나를 따돌리며 감독 경질의 원흉으로 몰았다”고 폭로해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발렌시아는 파레호를 방출하듯 내보냈다. 

이강인이 주목하는 것은 토레스의 성공 루트다. 맨시티로 향할 때는 잠재력을 주목받는 유망주였지만, 6개월 만에 스페인 대표팀의 에이스로 부상했다. 프리미어리그에 속했지만 스페인식 기술 축구를 펼치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맨시티에 녹아들며 날개를 폈다. 최근에는 독일과의 A매치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6대0 완승을 이끌었다. 맨시티에서의 급격한 성장세를 앞세워 대표팀에서도 젊은 에이스로 발돋움한 것이다.

결국 이강인도 토레스처럼 비전과 지도력을 갖춘 세계적인 감독을 만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과제다. 맨시티는 토레스 영입을 위해 발렌시아와 접촉했던 터라 대화 창구도 확보한 상태다. 발렌시아 유스가 키운 양대 재능 중 한 명으로 이미 재미를 본 만큼 토레스 영입에 지불했던 금액을 기준으로 한 베팅도 가능하다. 자금력에서도 파리 생제르맹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다. 자연스럽게 이강인 영입에도 가장 앞설 수밖에 없다. 

과르디올라 감독과 맨시티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난 미드필더 다비드 실바의 후계자를 찾는 중이다. 필 포든, 베르나르두 실바 등을 영입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이다. 이강인은 발렌시아 유스 선배인 실바와 줄곧 비교됐다. 뛰어난 볼 간수 능력에 왼발을 이용한 발군의 패스까지 여러 면에서 닮아 제2의 다비드 실바라는 평가를 받았다. 부임 후 프리메라리가에서 활약한 주요 선수들을 꾸준히 영입해 온 과르디올라 감독의 성향도 이강인의 맨시티행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강인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은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손흥민의 활약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현재 손흥민은 리그 득점 2위(10골)를 기록하며 토트넘을 선두로 이끈 상태다. 2000년대 중반 박지성과 이영표가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에서 활약하며 국내에 EPL 열풍을 일으켰던 것처럼 한국 축구의 에이스와 영건이 최상위 팀에서 뛰며 우승 경쟁을 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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