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 저널리즘 내세워 김치 도발하는 중국의 속내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3 13: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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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선 김치를 ‘한국파오차이’로 불러…김치 격하시켜 파오차이 드높이려는 목적

11월29일 일부 한국 언론이 “중국김치가 국제표준이 됐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하루 전 중국의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보도한 내용을 그대로 소개한 것이다. 환구시보의 보도는 11월26일 ‘중국시장감독보’의 “파오차이(泡菜·Paocai) 업계의 국제표준이 정식으로 탄생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인용해 재구성한 것이었다. ‘중국시장감독보’는 “24일부터 중국 파오차이가 국제시장에서 발언권을 갖게 됐다”면서 “파오차이 국제표준은 중국이 주도해 제정됐는데 쓰촨(四川)성 메이산(眉山) 시장감독국이 책임지고 이끌었다”고 밝혔다.

‘중국시장감독보’는 중국 국가시장감독국의 기관지다. 중국 산업과 시장에서 정부가 관할하는 사안의 동향과 변화를 전문적으로 소개한다. ‘중국시장감독보’는 “중국이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규격으로 파오차이 산업의 6개 식품 표준을 제정했다”고 보도했다. ISO는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을 촉진하고 경제·기술·과학 등의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일된 표준을 제정하는 비정부기구다. 1947년에 설립됐고, 현재 165개 회원국이 있다. 중국은 2017년부터 파오차이의 국제표준을 제정하는 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번에 ISO로부터 최종 인가를 얻은 것이다.

주목할 점은 ‘중국시장감독보’의 기사에서는 한국 김치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인용한 환구시보의 보도는 전혀 달랐다. 2018년 1월 한국의 연합뉴스 기사를 거론하면서 김치를 끌어들였다. 당시 해당 기사는 “중국산 저가공세에 밀려 한국의 김치 무역적자가 2017년에 473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내용이었다. 환구시보는 이를 인용하며 “한국 내 김치 소비량의 35%가 수입산이고, 그중 99%는 중국에서 생산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언론은 파오차이 종주국의 굴욕이라며 폭발했다”는 자극적 제목을 달았다.

ⓒ바이두, pixabay
ⓒ바이두, pixabay

국내에서도 파오차이를 ‘중국김치’로 표기

필자는 2011년 5월, 중국 파오차이의 본고장인 쓰촨성을 방문해 5일 동안 관련 문제를 취재한 바 있다. 당시 쓰촨성 농업청의 고위 관리를 비롯해 파오차이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 등을 만나 인터뷰했다. 또한 공장·상점·가정집 등을 찾아 파오차이가 만들어지고 보관되며 소비되는 과정을 일일이 살펴봤다. 취재의 발단은 201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쓰촨성 농업청의 순시원인 투젠화가 “한국 김치가 독창적인 쓰촨의 파오차이 단지를 모방한 항아리를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중국 정부 관료가 김치를 끌어들여 파오차이를 언급한 첫 사례다.

순시원은 부청장급 고위 관료다. 투젠화는 2012년부터 6년 동안 부청장을 역임했다. 그는 ‘쓰촨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쓰촨 파오차이는 전통 단지에서 거품을 내며 숙성된다”면서 “한국 김치는 엄격히 말하면 절임 야채일 뿐이다”며 김치를 비하했다. 그 뒤 쓰촨성 정부는 메이산시에 대규모 파오차이 산업단지를 건설했고 파오차이 국제화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쓰촨의 업계 관계자들도 잇달아 김치를 낮게 평가하면서 파오차이에 대한 홍보를 맹렬히 전개해 나갔다. 이번 ISO의 국제표준 제정은 그 마지막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필자는 왜 쓰촨성 정부와 업계가 김치를 저격하는지 그 원인과 배경을 알고자 했다. 그런데 쓰촨성에서 만난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는 파오차이와 김치의 명확한 차이를 알고 있었다. 당시 파오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만났던 루샤오리 쓰촨대학 식품공학과 학과장은 “쓰촨 파오차이와 한국 김치는 재료·제조법·발효방식 등이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파오차이는 배추·무·당근·오이·고추·생강·마늘 등을 숙성시킨 소금물에 담가 고온으로 발효시키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루 학과장은 한국의 김치 산업을 둘러보기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한적이 있다. 

이 소금물에는 쓰촨의 산초(花椒)와 바이주(白酒)가 반드시 들어간다. 루 학과장은 “김치는 배추에 각종 채소를 곁들어 고추와 액젓을 넣어 제조한 뒤 저온으로 천천히 발효시키기에 파오차이와 맛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필자는 중국인들이 공장과 가정집에서 제조한 파오차이를 하루나 이틀만 숙성시켜 바로 먹는 걸 확인했다. 따라서 김치처럼 대량의 유산균을 생성하지 못한다. 이는 중국의 서남부로, 평균 기온이 높고 여름이 긴 쓰촨의 기후 환경과 관련이 있다. 다만 늦가을에는 일부를 전통 항아리에 담아 수개월 동안 숙성시켜 발효한다.

취재 과정에서 필자는 쓰촨에서 파오차이를 만들어 먹은 역사는 길지만, 산업화는 굉장히 더딘 현실을 발견했다. 쓰촨에서 파오차이를 만드는 기업이 수백 개였으나, 전국적으로 기반을 다진 업체는 전혀 없었다. 기업 연합체인 쓰촨성파오차이협회는 2009년에, 청두시파오차이협회는 2011년에야 결성됐다. 이는 쓰촨성 고위 관리가 김치를 비하하고, 쓰촨성이 파오차이 산업단지를 만드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이에 대해 KOTRA 청두무역관의 임성환 관장은 “김치 논쟁을 일으켜 쓰촨 파오차이의 인지도를 높이고 홍보를 강화해 내수와 수출 확대를 도모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직접 만난 업계 관계자도 자신들의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가오인장 청두시파오차이협회 부회장은 “김치는 한국의 상징이자 대외교류의 브랜드며 문화의 별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성공적인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중국이 파오차이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김치를 줄기차게 끌어들이는 현실은 잘못된 용어에서 비롯됐다. 중국에서는 김치를 ‘한국파오차이’라고 표기하고 부른다. 김치의 본뜻을 완전히 왜곡한 작명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언론, 업계 등에서는 지금까지 이를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다. 그렇기에 일부 한국 언론은 파오차이를 ‘중국김치’라고 부르는 실정이다. 

쓰촨성 청두시의 한 가게에서 파는 각종 파오차이 ⓒ모종혁 제공

중화주의를 대변하는 환구시보의 노림수

이런 현실을 시정하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가 1년여 동안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신치(辛奇)’라는 한자 표기를 새로이 만들었다. 중국에서 신(辛)은 ‘매운맛’, 기(奇)는 ‘독특한, 신선한’이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매우면서 새롭고 신선한 음식’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외교부나 문화체육관광부는 중국 내 공식 석상에서 김치를 여전히 한국파오차이로 표기해 쓴다. 정부 부처조차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중국은 이 틈새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환구시보의 보도 행태도 마찬가지다.

환구시보는 투젠화의 발언 이래 파오차이와 김치를 비교하는 보도를 계속 내보냈다. 그 이유는 김치를 격하시켜 파오차이를 드높이려는 정치적인 목적과 상업적인 이득 때문이다. 환구시보는 중국에서 가장 국수주의적인 면모를 갖춘 매체다. 중화주의에 찌든 중국인의 속내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환구시보는 황색 저널리즘에 매몰된 상업지다. 비록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오로지 판매와 광고 수입에만 의존한다. 따라서 광고 유치를 위해 자국 산업과 기업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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