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의 결집 “뭉쳐야 산다”…단, 우리 중심으로?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4 08: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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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한배 타야” 강조한 민주당 친문 조직 ‘민주주의4.0’
기존 모임 존재감 흡수하고 대선 구도 좌우할 듯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 이은 4번째 민주 정부를 창출하겠다는 외침에 현재 여권의 이낙연-이재명 두 유력 대선후보는 빠져 있다. ‘분열하지 않기 위해’ 만든 모임이라는데, 출범부터 ‘세력화’란 지적이 따라붙고 있다. 누군가를 띄우려는 게 아니다면서도 자꾸만 제3후보 등장 가능성을 풍긴다. 11월22일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내 싱크탱크 ‘민주주의4.0’ 얘기다. 당내 최대주주 친문(親文) 의원들이 주축이 돼 만든 민주주의4.0은 출범 시기와 그 규모만으로 차기 대선과 연결해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대선 1년4개월 전, 당과 주요 대선후보들이 지지율 정체를 맞은 때 현역 의원 56명이 결성한 모임. 설립 취지가 어떻든 그 존재만으로 향후 대선판을 좌우하게 될 거란 분석이다.

어느 당이건 50여 명 규모의 당내 모임이 만들어지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더좋은미래(더미래)’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민평련)’ 등 민주당 내 이미 비슷한 규모의 모임들이 수년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4.0의 경우 ‘부엉이모임’의 ‘시즌2’ ‘확장판’으로 불리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엉이모임은 2012년 대선 패배 때부터 문재인 후보의 곁을 지켜온 친문 인사들이 핵심인 조직이다. 존재가 알려진 후 줄곧 계파정치란 지적에 부담을 느끼다 2018년 7월 급기야 자진 해산한 바 있다.

11월22일 민주주의4.0 연구원 창립총회에서 도종환 이사장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4.0에 이낙연·이재명계 찾기 힘들어

이 부엉이모임의 주축이었던 전해철·홍영표 의원 등이 이번 민주주의4.0 모임의 산파 역할을 했다. ‘원조 부엉이’ 중진 의원들부터 현 청와대 출신의 ‘신(新)친문’ 초선 의원들까지 면면이 다양하다. 현재 내각에 들어가 있는 인물 중 비공개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들도 몇몇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사장은 현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던 도종환 의원이 맡았다. 가입한 의원들은 최소 500만원 이상의 회비를 내야 한다. 2주에 한 번씩 모일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탓에 출범식 이후 모임은 갖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별도의 사무실을 꾸리고 인력 배치를 하고 있으며 회원 역시 증원될 가능성이 크다.

출범식 때부터 “분열 없이 한배를 타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배 위에 유독 ‘이낙연계’ ‘이재명계’로 꼽히는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꼽자면 이낙연계로 분류되는 최인호 의원 정도뿐, 이재명계 의원은 아예 전무하다. 친문 적자가 아닌 두 유력 주자 외에 새 후보를 찾아 띄울 거란 추측이 커지는 이유다. 도종환 이사장은 제3후보에 대해 논의한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홍영표·황희 등 모임 주요 인사들을 중심으로 “제2, 제3의 후보들이 등장해 대선판을 풍부하게 하는 건 나쁘지 않다” “제3후보를 찾는 작업이 없어 두 후보 지지율이 박스권에 있는 것”이라는 등 결이 다른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로선 이들이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최대한 계승할 인물이 누굴지 고민이 깊다는 전언이다. 현재로선 이재명 지사를 띄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진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나갈 적임자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문과 감정의 골이 깊었던 이 지사를 여기(민주주의4.0)에서 띄워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이낙연 대표를 관망하면서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광재 의원을 비롯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다양하게 띄워보며 분위기를 살필 것으로 점쳐진다. 친문 사이에 정권 재창출에 대한 확신이 깔려 있는 가운데, 이들은 과거 ‘보이지 않는 세력’이던 부엉이모임과 달리 ‘보이는 세력’으로서 대선에서 한층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평련·더미래 존재감 상대적으로 줄 듯

민주주의4.0보다 앞서 만들어져 활동해 온 당내 대규모 모임들은 최근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인 곳이 민평련이다. 2005년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 의장이 중심이 돼 활동을 시작한 민평련은 현재 현역 의원 42명이 속해 있다. 규모로는 민주주의4.0에 크게 밀리지 않는 ‘빅 모임’이다. 민평련은 출범 후 10년 넘게 당내 최대 계파 조직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평련이 유력 대선후보 뒤에 줄을 서는 게 아니라, 대선후보들이 민평련에 줄을 선다’는 말이 있을 만큼 기세가 셌다. 그러나 모임의 기둥이던 김 전 의장이 세상을 떠난 후 존재감은 한동안 눈에 띄게 줄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설훈 의원 등 지금은 범친문으로 꼽히지만 대선 전까지 비문에 속했던 당내 비주류들의 비중이 높다. 현재는 민평련계도 대부분 친문으로 흡수된 것으로 파악된다.

민평련은 최근 공수처 등 개혁법안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에 소극적인 당 지도부를 향해 신속한 결단을 촉구하며 모처럼 존재감을 보인 바 있다. 오랜만에 당내 ‘야당’으로서 개혁적 면모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1월20일 소병훈 의원을 신임 대표로, 진성준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추대하며 조직을 재정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 국면이 시작되면 이들의 힘이 크게 발휘되진 못할 거란 평가가 나온다. 장예찬 시사평론가는 “민평련의 주축인 이인영·유은혜 장관을 비롯해 당장 대선에 뛸 인물이 속해 있지도 않을뿐더러, 친문 조직임이 자명한 민주주의4.0이라는 대규모 모임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민평련이 과거처럼 자체적으로 큰 존재감을 발휘하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내 또 다른 ‘슈퍼 모임’인 ‘더미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2014년 초·재선 의원 22명이 연구모임 형태로 만든 이후 운동권 출신의 ‘86’그룹이 주축이 돼 활동을 이어왔다. 이번 국회에 초선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51명의 현역 의원들로 꾸려져 있다. 이인영·유은혜·김현미 등 현 정부 들어 장관을 다수 배출했다. 최근 들어 더미래가 가장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는 지난 당 대표 선거 무렵으로 꼽힌다. 당시 대권주자 이낙연 대표의 당 대표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으며, 또 다른 당 대표 후보 김부겸 전 의원을 향해선 대선 출마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에 논란이 돼 사실상 경질된 이정옥 전 여성가족부 장관의 문제적 발언이 나온 직후 청와대에 경질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그러나 더미래 역시 대선 국면에선 민주주의4.0과 크게 결이 다른 움직임을 보이거나 차별적인 목소리를 내진 않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그 외 지난 10월 이른바 정세균계 의원들이 주축이 돼 만든 현역 40여 명 규모의 ‘광화문포럼’ 등도 주목을 받고 있다. 아직 특정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 앞선 모임들에 비해 광화문포럼은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인 정세균 총리에게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리 편’ 모으는 모습 여론 부담”

이들 모임은 대선 전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이낙연 대표의 사퇴 후 5월 중으로 예상되는 신임 당 대표 선거부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민평련과 더미래는 지난 당 대표 선거에서도 모임 소속 후보에 적극 힘을 더해 줬다. 특히 더미래의 경우 지난 20대 국회에서 원내대표를 지낸 의원 네 명 중 홍영표 의원을 제외한 우원식·우상호·이인영 의원을 당선시킨 바 있다. 이들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우상호 의원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게 점쳐진다. 민평련의 경우 송영길·우원식·홍영표 의원 등이 도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기 당 대표 선거에서 우원식 의원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민주주의4.0의 경우 “서울·부산시장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람을 거명하거나 이에 어떻게 개입할지에 대한 논의를 한 적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향후 대선 정국에선 결국 최대 친문 조직인 민주주의4.0에서 후보를 배출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분열하지 않기 위해’ 만든 이 모임에 대한 안팎의 우려는 적지 않다. 이들에 의해 지나치게 대선 구도가 좌우되고, 자칫 대선 경쟁 구도가 빠르게 일원화될 수 있을 거란 지적이다. 앞선 여권의 관계자는 “현재로선 민주주의4.0 중심의 친문세력이 지원사격하는 특정 후보 대 이재명으로 당내 대권 경쟁 구도가 짜이지 않을까 싶다”고 점쳤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역시 최근 여권 대선주자들과 차례로 접촉하며 민주주의4.0 출범에 대한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초선 의원 역시 “코로나19에, 검찰 개혁 갈등에 안팎이 어수선하고 우리 당이 독주한다는 지적이 많은 때, 우리 편을 모으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이는 게 사실 부담이긴 하다”고 전했다. 장예찬 평론가는 “정권 후반 레임덕으로 문 대통령의 영향력은 떨어져도, 이와 무관하게 차기 대통령을 추대하려는 당내 친문의 영향력은 되레 점점 커질 것”이라며 “이는 대선 구도를 단순화하고 흥행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계파와 성향에 관계없이 폭우 속 “한배를 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배의 키는 결국 핵심 친문에 의해 좌우될 거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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