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지 못했던 남자, 떠나가지 못했던 여자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9 16:00
  • 호수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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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제》, 원작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헤어지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니다. 사실은 한 가지다. 내가 도망친 거다.”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와 이별하고 나오는 길.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던 츠네오(쓰마부키 사토시)가 뒤늦게 무릎을 꿇고 꺽꺽 운다. 버린 건 츠네오인데. 남겨진 건 조제인데…. 그러나 츠네오를 비난할 수 없었다. 누구나 그러하므로. 사실, 사랑은 둘 중 하나가 도망쳐서 끝난다. 도망치는 이유가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는 관계로부터. 누군가는 덜 상처받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미숙함으로부터. 누군가는 그 모든 시간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렇게 반짝거리던 사랑은 생명을 다한다.

중요한 건 그 후다. 어떤 사랑은 끝났을 때 상처만을 남기지만, 어떤 사랑은 실패와 깨달음을 통해 남자와 여자를 성장으로 이끈다. 2004년 국내에 개봉한 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후자의 영화였다. 영화는 두 남녀의 뜨거운 한때와 이별의 순간을 현실감 있게 담아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개봉 당시 4만 관객을 동원하고, 이듬해 재개봉해 6000명을 다시 불러모은 건 이러한 공감대 덕분이었으리라.

그래서다. 김종관 감독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리 위로 물음표와 느낌표가 함께 뜬 건. 처음에 든 생각은 “도대체 왜?”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골수팬을 확보하고 있는 클래식 무비다. 그런 작품을 건드린다는 건, 원작 팬들의 추억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가 봐도 험난한 길을 왜 선택했을까. 그러다가 든 생각은 “김종관이라면!”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부터 장편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등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감성을 펼쳐 보인 김종관 감독이라면 원작에 휘둘리지 않고 그만의 결이 살아 있는 작품을 보여주지 않을까란 기대가 찾아왔다. 그렇게 확인한 《조제》는 결과물에서도 물음표와 느낌표를 함께 안기는 영화였다.

그것은 발견이었을까. 지방대학교 졸업반 학생인 영석(남주혁)은 전동휠체어를 타다가 굴러떨어진 조제(한지민)를 ‘발견’하고 그를 집까지 바래다준다. “밥 먹고 가, 학생.” 퉁명스러운 말투로 고마움을 내뱉는 조제. 얼떨결에 조제에게 밥을 얻어먹게 된 영석은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그에게 호기심인지 뭔지 모를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이후 이런저런 핑계로 조제를 찾는 영석. 누군가에게 상처받게 될까 두려웠던 조제는 영석에게 집에 오지 말 것을 선언하면서 이들의 인연은 잠시 공백기를 갖지만 누가 그랬더라,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사랑이라고. 두 사람은 동거와 함께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간다.

영화 《조제》의 한 장면 ⓒ위너브라더스 코리아

달랐던 이별의 과정

영화는 원작의 기본 설정과 전개를 그대로 이식하되, 시대적·문화적 차이에 따라 몇 가지를 변주했다. 가령 두 남녀를 이어주던 계란말이와 생선구이가 번데기탕과 스팸으로 대체됐고, 동년배였던 원작과 달리 조제가 30대 연상으로 재설정됐다. 원작보다 무겁고 쓸쓸하고 진중한 조제의 성격은 연령대 설정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다이빙하듯 의자에서 바닥으로 ‘쿵’하고 내려앉았던 활달한 조제 역시 이곳엔 없다. 취업에 대한 압박감, 좁디좁은 고시원에서의 가난한 삶, 지방대생이 느끼는 현실의 벽 등 대한민국 청춘들의 고민이 필름 곳곳에 엉겨붙어 있는 건 《조제》만의 특이점이다.

여주인공이 프랑수아 사강의 소설 속 여인의 이름을 따 스스로를 조제라 하는 건 같지만, 남자와 공유하는 소설은 조금 다르다. 원작에서의 조제는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를 읽고 또 읽는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이 소설은 조제와 츠네오의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은유였다. 반면 《조제》에서 조제가 찾는 사강의 소설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다. 자신보다 열네 살 연상이었던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흠모한 브람스는 조제 혹은 영석에 대한 상징일까.

그러나 원작과 《조제》의 가장 큰 차별이라면 ‘이별의 과정’, 그러니까 하나가 됐던 사랑이 ‘찢어지고 변해 가는 과정’이다. 원작의 후반부는 이별의 과정을 섬세하게 좇는 데 할애했었다. 가령 조제를 등에 업은 츠네오가 “이제는 휠체어를 사는 게 어때”라고 말할 때, 터널의 빛에 큰 소리로 감탄하는 조제에게 츠네오가 “운전 중”이라고 퉁명스레 답할 때, 조제를 가족에게 소개하려 장거리 운전을 하던 츠네오가 돌연 마음을 바꿀 때, 영화 이곳저곳에서 사랑의 찢어지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였기에, 앞서 이야기한 것. “우리가 헤어지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니다. 사실은 한 가지다. 내가 도망친 거다”라고 길거리에서 오열하던 츠네오의 고백은 당위를 입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한 장면 ⓒ(주)디스테이션

각색 과정에서 잃고 얻은 것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놀랍게도 이 과정을 거의 생략하다시피 한다. 대신 그 자리에 ‘우리가 만약에’라는 상상의 밑그림을 넣고, 관객 스스로가 그 안에 들어가 각자의 감정을 대입하도록 한다. 그러니까 원작의 이별이 산문이라면, 《조제》의 이별은 운문처럼 표현됐다. 원작이 사건의 디테일을 주목했다면, 《조제》는 정서로 이야기를 대신한다.

이 과정에서 《조제》는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를 얻는다. 잃은 건 원작의 정수와도 같은 이별의 현실감이다. 끝나버린 마음 앞에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쏟아낸 츠네오의 감정을 떠올렸을 때, 《조제》에서 영석이 보여주는 감정은 이해는 가지만 그것이 마음으로까지 파고 들어오지는 않는다. 반면 멜로 드라마로서의 느낌이 강화되면서 원작과는 다른 차별화를 획득하는데, 김종관 감독 특유의 재능이 발화되는 것도 이 부분에서다. 눈 내리듯 천천히 쌓이는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고요하게 데우는 데 성공한다.

《조제》는 예쁜 영화다. 공간도 예쁘게 담겼고, 소품도 예쁘게 담겼고, 길거리도 예쁘게 담겼고, 무엇보다 인물들이 참 예쁘게 담겼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여배우라면 김종관 감독의 카메라에 한 번 담겨보고 싶지 않을까, 라고. 김종관 감독만큼 배우와 그 배우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의 미세한 결을 섬세하게 포착해 낼 수 있는 이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건 그가 정유미와 작업한 단편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에서부터 증명해 보인 엄청난 재능이다. 그래서일까. 《조제》에서의 한지민은 그 어떤 영화에서의 한지민보다 아름답다.

다만 장편은 단편과 달리, 이미지의 감흥 지속성이 조금 취약하다. 그러니까 아름답고 예쁜 것은 순간일 때 상대적으로 더 크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아무리 멋들어진 액션이라도 그것이 너무 길게 터져나오면 어느 순간 감흥이 무뎌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그럴까. 김종관 감독의 기존 장편들인 《조금만 더 가까이》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은 확고한 기승전결보다 등장인물이 바뀌는 에피소드 형식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이것이 장점으로 기능했지만, 긴 호흡으로 가는 《조제》에선 이미지가 종종 넘친다는 느낌을 안긴다. 물론 그 안에 내포된 감독의 의도가 있으니 그것을 읽어낸다면 《조제》에서 얻는 감흥은 배가될 테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영상 화보집으로 보일 위험성도 무시할 수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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