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1 09:00
  • 호수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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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면서 열심히 살아가던 전국의 세신사들이 난데없는 모욕을 당했다. 아무런 잘못도 이유도 없이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날아든 봉변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의 기억에서도 지워졌을 법한 ‘때밀이’라는 과거의 언어가, 그것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왔다.

뉴스에 따르면, 얼마 전 야당의 한 의원은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 국회에서 농성 중이던 산업재해 사망자의 유가족들과 마찰을 빚는 모습을 보고 “누구야? 왜 때밀이들하고 싸워”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해당 의원실의 관계자는 논란이 일자 “이유를 물었더니 스스로도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한다”면서 “평소에 유족들을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세신사분들에게도 죄송하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이처럼 실언이나 막말로 인해 구설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 없이 튀어나온 말”이라거나 “기억이 안 난다”는 대답으로 발을 뺀다. 하지만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거나,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말이란 결코 없다. 사람의 말에는 화자의 평소 생각, 즉 인식의 단면이 고스란히 담기기 마련이다. 단 한 번이라도 떠올렸던 생각이 무의식의 서랍 속에 담겨 있다가 언제든 문을 열고 언어의 형태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잘 나온 말이건, 잘못 나온 말이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그 자체로 언어폭력이 된다. 특히 차별의 의미를 담은 말이 제일 무섭다. 앞의 사례처럼 편견을 가지고 누군가의 직업을 비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차별이라는 칼날로 애먼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벨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발언은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던 부동산 문제에서도 어김없이 터져 나왔다. ‘빵 아파트’와 ‘호텔 거지’가 그것이다. ‘빵 아파트’ 논란은 부동산 정책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김현미 장관이 아파트 공급 물량 확대의 어려움을 설명하며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한 데서 연유했는데, 이 발언이 소개되자 당장 야권 등에서는 ‘마리 빵투아네트’와 같은 조롱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호텔 거지’는 정부가 청년 주거지원 정책의 하나로 호텔을 개조해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하자 나온 비판 내용 중 하나다. 다수의 언론이 이 표현을 제목 등에 보란 듯이 올려 이목을 끌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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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빵, 호텔과 거지. 조화되기 어려운 이 단어들을 겹쳐 씀으로써 주목도를 높이려는 의도를 모를 바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했어야 마땅한 표현이다. 신체적 약자를 비하하는 발언이 사람들에게 무도한 언어폭력으로 받아들여지듯, 전‧월세를 벗어나지 못한 채 힘들게 사는 ‘주거 약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발언 또한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정부 부동산 정책의 유탄을 맞아 전‧월세 집을 구하기도 힘들어진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는 못할망정 또 다른 아픔을 안겨서야 되겠는가. 집을 향한 누군가의 간절함마저 분별없는 말로 희화화해 버리는 현실은 참혹하다.

말은 골라서 써야 한다는 옛말에 그른 것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매일 힘들게 버티며 사는 사회 약자들을 말로 ‘두 번 죽이는’ 못된 짓은 더 나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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