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문화] 봉준호, 이제 세계인이 사랑하는 영화감독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9 12: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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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통해 한국 문화 자긍심으로

“Bong Joon Ho!”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파만파로 퍼지기 전 우리를 가장 즐겁게 한 뉴스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지난 2월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쓴 장면을 많이들 떠올릴 듯하다. 특히 시상자로 나선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이 꼬부랑 발음으로 외친 ‘봉준호’는 대한민국 국민 뇌리에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각인됐다. 

한국인들을 더 짜릿하게 만든 지점이 있다. 바로 봉 감독의 구수함(?)이다. 그는 외국 유학 경험도 없이 오로지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배워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왔다.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봉 감독조차 ‘이렇게 한국적인 내용이 어떻게 세계에서 먹혔는지 분석해 봐야겠다’고 언급했다. 정겨우면서도 페이소스 넘치는 유머 코드, 현대 한국 사회를 꼬집는 영화 내용은 국경을 뚫고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앞서 《기생충》은 2019년 5월 칸영화제에서도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건 1956년 나온 미국 영화 《마티》 이후 두 번째다. 이 밖에 《기생충》은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무수히 많은 상을 탔다.

ⓒ시사저널 포토

인간미와 디테일, 책임감 두루 갖춰 

영화뿐 아니라 봉 감독의 직업정신, 인간적인 매력 등도 내내 화제였다. 봉 감독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9월22일(현지시간) 발표한 ‘2020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는데, 당시 추천사를 쓴 이가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이다. 봉 감독과 스윈튼은 영화 《설국열차》(2013)와 《옥자》(2017)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스윈튼은 추천사에서 “그는 매우 똑똑하고 전문적이며 영화를 잘 알고, 활기가 넘치고 불경하다. 결단력 있고 로맨틱하며 정밀하게 조율하고 끝까지 연민을 잃지 않는다.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이 모든 것이 담긴다”고 밝혔다. 이어 “속물근성이나 냉소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궁극적으로 세련된 영화 팬”이라며 “다정하고 의리 있으며 사람을 즐겁게 하고, 편안하고 장난기 많고 진실하며 특히 술에 취했을 땐 정말 재미있고, 가족적이며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평도 덧붙였다. 

이제 봉 감독은 ‘국가대표 영화감독’이란 타이틀을 넘어 국내 문화계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시사저널이 실시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 분야 조사에서도 봉 감독은 지목률 60.5%로 압도적 1위였다. 2018년 공동 9위(지목률 1.9%)에서 2019년 1위(지목률 33.6%)로 껑충 뛰어오른 뒤 1년 새 지목률을 두 배 가까이 높였다. 

봉 감독은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소감을 통해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국가를 대표해 쓰는 건 아닌데,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상”이라고 밝혔다. 

한국영화계를 이끌어가는 데 대한 책임감 때문일까. 최근 그는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오스카 레이스에 나선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을 지원하고 나섰다.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미나리》는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한 데 이어 오는 4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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