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모두의 영웅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8 09: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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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인간이 가진 자원가운데 가장 공평한 것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 특별히 더 많이 주어지거나 적게 주어지는 법이 없다. 부자라고 그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남들보다 부족한 시간을 갖지도 않는다. 똑같은 분량의 시간을 두고 다만 각자 다르게 쓸 뿐이다.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같은 시간을 더 길게 혹은 더 짧게 느끼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게 똑같은 시간을 우리는 살았고, 그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모두에게 똑같은 연말이 다가와 있다.

시간이 새로운 단위로 바뀌기 직전인 이 연말은 자연스럽게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다. 시간의 양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에 남긴 사람들의 흔적은 다 똑같지 않다. 그렇게 다양한 흔적들이 모여 한 시대의 표정을 만든다.

한 해의 끝자락을 맞아 시사저널은 매년 그해에 남겨진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어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다. 올해도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기거나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물들 가운데서 ‘올해의 인물’을 가려 뽑아 소개한다. 시사저널이 2020년의 인물로 선정한 이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그가 우리 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겼고,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는 새삼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각종 언론 매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트래픽 양으로만 따져도 그의 이름이 거론된 빈도는 누구보다 두드러졌다. 특히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대립각을 세운 이후로는 거의 매일 뉴스의 주인공이 되다시피 했다. 그 영향으로 여론조사기관이 주기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에서 한때 1위에까지 올랐다.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연합뉴스
ⓒ연합뉴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화제성에서 남들보다 앞섰다는 것일 뿐, 올해 최고의 인물이라는 의미를 담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닌 화제성은 ‘갈등’ ‘마찰’ ‘대립’이라는 키워드와 어우러지면서 오히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선한 영향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까닭에 추미애 장관과 번번이 부딪치면서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지쳐 있는 국민을 더 힘들게 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사저널이 윤 총장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는 그가 남긴 역대급 화제성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또한 언론으로서 꼭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처럼 몇몇 사람이 한 사회의 이슈를 독점하는 현상은 분명 비생산적이고 후진적이다. 이슈를 쥐고 흔드는 소수의 명망가보다는 스웨덴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나 코로나19 방역에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한 청년, 평생 모은 거액을 한 대학에 기부한 여성 사업가 같은 인물들이 다양하게 떠오르고 주목되어야 사회는 큰 걸음으로 전진한다. 그들이 사회의 전면으로 나와 선한 영향력을 강하고 깊게 퍼트리는 것, 그것이 민주사회의 역량이자 다양성의 힘이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올 한 해에도 수많은 인물이 우리 주변에서 뜨고 졌지만 많은 사람이 가슴으로 기억하는 진정한 의미의 ‘올해의 영웅’이 따로 있음을 우리는 안다. 지난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늘 의연하게 맨 앞자리를 지켜왔던 대한민국의 의료진이 바로 그들이다. 아울러 “개인의 역할이 탁월한 시대는 이미 사라졌다. 국민이나 당파나 집단 그 자체가 영웅이다”라는 시인 하이네의 말처럼 방역에 적극 협조하며 이 위기를 꿋꿋이 헤쳐나가고 있는 우리 국민 또한 박수를 받아 마땅한 영웅이었음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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