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발목 잡힌 정의선 회장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12.31 08: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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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글로비스, 새롭게 규제 대상에 포함…험난한 경영권 승계 방정식 풀 해법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3세 경영체제에 돌입하게 됐다. 2세 경영인인 정몽구 명예회장이 그룹을 승계받은 지 정확히 20년 만이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오른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경영수업을 받으며 이미 경영능력을 인정받았고, 2011년부터는 현대차 부회장에 취임,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그룹을 진두지휘해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 승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그룹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현대모비스를 포함한 핵심 계열사의 지분 확보가 필수다. 그러나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현대차(2.62%)와 기아차(1.74%) 등 다른 주요 계열사 보유 지분도 주목할 수준은 아니다. 정 회장으로선 경영권 지분 확보를 위해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시사저널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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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정 회장의 어깨를 한층 무겁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계열사들이 규제 대상에 추가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 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권 승계의 핵심 회사로 지목받아왔던 현대글로비스가 새로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총수 일가 지분율 기준을 현행 상장사 30%(비상장 2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일원화하고, 규제 대상 기업이 50%를 초과한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대차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은 8곳까지 늘어나게 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내 기존 규제 대상 기업은 서울PMC·서림개발·현대머티리얼·현대커머셜 등 4곳이었다. 여기에 서림환경·현대글로비스·지마린서비스·현대첨단소재 등 4곳이 규제 대상에 추가된다. 기존은 물론이고 신규 규제 대상 기업 대부분은 정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전체 규제 대상 기업 중 절반에는 정 회장의 지분이 전무하다. 실제 서울PMC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장녀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의 남편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최대주주이고, 현대커머셜도 정 고문(25%)과 정 부회장(12.5%) 부부가 각각 1·2대 주주다. 현대머티리얼과 현대첨단소재 역시 정 회장의 사촌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대표가 지배하고 있다.

물론 정 회장 소유의 기업도 있다. 그가 지분 100%를 보유한 서림개발이 그런 경우다. 이 때문에 서림개발은 기존에 규제 대상에 포함돼 있었고,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서림개발 자회사인 서림환경개발은 새로 규제 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들 회사 역시 승계에 걸림돌이 되진 않을 전망이다. 내부거래 규모 면에서 규제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대글로비스와 지마린서비스다. 현대글로비스는 총수 일가 지분율 규제 강화로 규제 대상에 새로 오르게 됐다. 이에 따라 자회사인 지마린서비스도 함께 규제 대상이 됐다. 현대글로비스는 정 회장의 지분 승계에서 핵심사로 지목돼 왔다. 2001년 정 명예회장(10억원)과 정 회장(15억원) 부자가 출자해 설립된 현대글로비스는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고성장을 거듭했다. 한때 내부거래 비중이 90%에 육박하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시사저널 임준선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벗어날 방법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자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은 2015년 현대글로비스 지분 13.49%를 블록딜로 매각했다. 총수 일가 지분율을 29.99%까지 줄여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영향으로 당시 30만원을 상회하던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20만원 아래까지 내려앉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안으로 현대글로비스가 다시 규제 대상이 되면서 정 회장은 또다시 숙제를 떠안게 됐다.

그렇다면 현대글로비스가 규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내부거래 비중과 규모를 규제 범위 밖인 12%와 200억원 이하로 각각 줄이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물류업체 특성상 현대글로비스의 내부거래 물량이 상당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회사는 지난해 전체 매출 14조4745억원 중 67.80%에 해당하는 9조8139억원을 그룹 계열사들과의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다른 방법으로는 총수 일가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10%가량의 매각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는 현재 시장 가격이 7000억원에 달한다. 장내에서 소화가 쉽지 않은 규모여서 국내외 대형 사모펀드가 거래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은 정 회장에게도 큰 매력은 없는 방법이다. 지분 매각으로 마련한 현금으로 확보할 수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현대차그룹이 결의한 현대오토에버의 현대엠엔소프트 및 현대오트론 흡수·합병 안건에 주목하기도 한다. 덩치를 키운 현대오토에버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경우 현대글로비스의 총수 일가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들 회사의 합병은 IT와 물류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데다, 두 회사 간 시너지는 정 회장의 승계 재원 마련에도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회사 모두 정 회장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현대오토에버의 경우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23.29%)와 현대엔지니어링(11.72%) 다음으로 많은 지분(9.57%)을 갖고 있다.

재계에선 현대글로비스를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가 주식을 교환하는 형태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안이 꼽힌다. 이 경우 현대글로비스가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고, 그룹 역시 순환출자 고리도 끊어내 공정위의 압박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무엇보다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한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서게 된다. 그야말로 ‘일석삼조’인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2018년 이런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한 바 있다. 현대모비스 전체 기업 가치의 60~70%를 차지하는 모듈·AS 사업부문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한 후 글로비스 지분과 현대모비스 투자부문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개편안은 결국 무산됐다. 0.61대 1의 합병비율이 문제였다. 현대모비스 주주가 1주당 현대글로비스 신주 0.61주를 배정받는다는 얘기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오른쪽)이 12월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정경제 3법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배구조 개편이 최상의 시나리오

이를 두고 현대모비스 일부 주주와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 시민단체 등은 ‘총수 일가만 이익을 얻게 되는 편법적 구조조정’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개편을 전면 중단했다. 당시 정 회장은 개편 방안 보완 의지를 밝혔다. 그는 당시 입장문을 통해 “사업 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보완해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최근 정 회장의 취임, 공정거래법 개정안 이슈 등과 맞물리면서 다시 지배구조 개편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 회장도 지난 10월15일 수소경제위원회 참석 후 지배구조 개편 계획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다만 이미 한 차례 계획을 철회한 만큼, 이번에 현대차그룹은 이전보다 한층 진화되고, 시장 친화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시장에서는 기존 방식을 보완한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현대모비스의 모듈·AS 사업부문을 분할시켜 상장한 뒤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이다. 분할한 회사를 상장시키는 과정이 새로 추가돼 이전과 비교하면 시간은 다소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기업 가치 산정을 시장에 맡길 수 있어 합병 비율 공정성을 둘러싼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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