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에 발목 잡힌 독일, 백신 접종 느린 이유 있었네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8 15:00
  • 호수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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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이 백신 주문·허가 전담
”백신 구매 비용 아끼려다 경제적 피해 더 커져“ 비판

지난해 12월, 미국·영국·캐나다 등의 첫 코로나 예방접종이 전 세계에 보도되면서 본격적으로 바이러스에 대항할 백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백신 접종은 마비된 일상을 다시 정상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 코로나19 검사는 의료보험 적용을 받거나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백신 접종 비용은 연방에서 부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1월5일 기준 독일 인구 100명당 0.38명이 접종을 받았다. 이는 이스라엘 15.83명, 바레인 3.62명, 영국·미국 약 1.39명과 비교해 보면 꽤 적은 수치다. 일단 독일에서는 접종 우선 대상자를 세 집단으로 분류해 1순위부터 진행하고 있다.

독일 수도 베를린의 한 체육관에 설치된 백신 접종센터 앞에서 2020년 12월27일(현지시간) 시민들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을 맞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EPA 연합
독일 수도 베를린의 한 체육관에 설치된 백신 접종센터 앞에서 2020년 12월27일(현지시간) 시민들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을 맞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EPA 연합

허가된 백신 미국보다 적게 구매한 EU

현재 접종이 시행되고 있는 1순위 집단에는 80세 이상, 요양시설 거주자, 간병인,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진, 응급대원 등이 속한다. 2순위는 70세 이상, 다운증후군, 치매나 기타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 난민수용소나 노숙자 시설 거주자, 의사, 경찰 등이다. 3순위에는 60세 이상, 교사, 당뇨나 천식 등의 병력이 있는 사람, 정치·행정·사법기관에서 일하는 사람, 소방대원 등이 속한다.

하지만 독일은 연방제이기 때문에 주마다 속도나 과정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우선 접종 대상자는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접종받을 수 있는 센터의 접근성이나 필요한 인력에 따라 규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구 100명 대비 접종을 받은 사람이 메클렌부르크는 0.86명이지만 니더작센은 0.11명에 그치는 등 지역별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독일 정부에서는 1월말까지 400만 회분의 백신을 확보할 것이며, 3월말까지는 1300만 회분을 기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올 1분기에 1100만~1300만 명이 접종받을 것이라고 한다. 유럽연합(EU)에서 주문한 백신 중 3억 회분이 독일 몫이다. 독일 인구가 8300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1인당 2회 백신을 접종받기에 충분한 양이다. 하지만 이 3억 회분에는 아직 허가가 나지 않은 백신도 있고, 공급 날짜도 불확실하다. 이 때문에 올 2분기까지 독일 전체 인구가 접종받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보건부 장관 옌스 슈판의 말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이 가을 전에 접종받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게 독일 사회의 주된 여론이다.

슈판 장관은 지난해 11월초부터 시행된 2차 락다운(봉쇄령)이 발표될 때 신속한 예방접종을 호언장담하며 연말부터 이루어질 접종으로 빠른 일상 복귀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특히 백신을 개발한 회사가 독일 기업인 바이오엔테크여서 독일에서의 접종은 매우 빠를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하지만 독일에 앞서 미국과 영국에서 접종을 시작하고 그 무렵 독일의 락다운이 더 심화하면서 여론은 비판적으로 흘러갔다.

독일에서는 지난 12월21일에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에 대한 허가가 떨어졌다. 이는 독일이 자체적으로 백신을 검증하지 않은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EU에서는 나라별 공정한 백신 공급을 위해 국가별 백신 주문을 하지 않고 EU에서 전체 주문을 해 회원국에 배분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때문에 EU가 허가를 전담했는데, 그 과정이 오래 걸렸던 것이다. 지난해 12월 영국에서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아스트라제네카, 미국에서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 이렇게 각각 두 개의 백신이 허가를 받았다. 그동안 EU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만 허가를 받았고 1월6일에야 모더나 백신이 승인됐다. 많은 이가 접종이 늦어진 탓을 EU에 돌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메르켈 독일 총리는 1월5일 기자회견에서 “독일은 주변국과의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백신을 주문하고 가장 먼저 접종을 시작하더라도 주변 EU 회원국들이 접종을 시작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EU 차원의 대응에 대한 정당성을 옹호한 것이다.

EU는 6개 기업과 약 20억 회분의 백신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8월 옥스퍼드대학과 협력하에 백신을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를 시작으로 사노피, 존슨앤드존슨,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독일 기업 큐어백, 그리고 미국계 기업인 모더나 순으로 계약했다. 수량으로 따지면 충분할 것 같지만 문제는 여기에 아직 효능이 충분히 입증되지 못한 백신도 다수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EU는 사노피 백신 3억 회분을 주문했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올해 말에나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상용되고 있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는 3억 회분, 그리고 미국에서 이미 접종이 시작된 모더나 백신은 1억6000만 회분만 주문한 상태다. 미국에서 전체 인구 3억3000만 명을 위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6억 회분과 모더나 백신 5억 회분을 주문했다는 사실과 비교했을 때, 4억4600만 인구에게 백신을 공급해야 하는 EU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주문량 외에 계약 시기 또한 지적을 받고 있다. 왜 다른 회사와는 여름부터 계약을 체결했으면서, 2차 유행이 한창 진행 중이던 11월에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 등과 계약을 맺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바이오엔테크 설립자 우우르 샤힌은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EU의 이러한 행보가 의아했다”며 “백신을 충분히 확보했고 다 잘 컨트롤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고 밝혔다.

 

EU, 화이자·모더나와 계약 많이 늦어져

이러한 대처의 이유로는 백신 가격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모더나 백신 1회분이 약 15유로(약 1만9500원),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12유로(약 1만5600원)인 반면, 일찍이 계약을 맺은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1.78유로(약 2314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는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아, 선주문한 4억 회분 백신은 현재 무용지물이다. 백신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현재 셧다운으로 인해 입고 있는 경제적 비용을 더 고려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EU는 회원국 전체를 위해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와 260억 유로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만 지난해 11~12월 폐업 위기 사업체에 지원한 금액이 300억 유로가 넘는다. 또한 1월31일까지 연장된 셧다운에는 일주일당 약 35억 유로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측된다. 백신에 드는 비용을 아끼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 EU가 과연 현명한 판단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접종을 시작했지만 진행이 더디다. EU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생명이 달린 백신 접종조차 자주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불만과 이러한 관료주의적 지체를 독일이 어떻게 극복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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