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안철수 기싸움은 야권 후보단일화 흥행 노림수?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3 14:00
  • 호수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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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야권 후보 단일화 시도 1차는 실패, 그럼에도 가능성 큰 이유

정치 입문 후 여러 차례 단일화 시도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제대로 ‘승자’가 돼 본 적이 없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선(박원순), 2012년 대선(문재인), 2017년 대선 그리고 2018년 서울시장 선거(김문수)까지, 단일화에 대한 의지의 크기는 달랐지만, 모두 그의 양보 혹은 실패로 끝났다. 안 대표만큼 단일화의 기억이 씁쓸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4월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다섯 번째 단일화 테이블에 앉게 된 안 대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기세가 등등하다. 1월19일 그의 깜짝 기자회견 내용은 이를 증명한다. 안 대표는 이날 국민의힘에 입당은 하지 않고 현 상태로 국민의힘 후보들과 같이 경선을 치르겠다는, 이른바 ‘오픈 경선’을 제안했다.

애초부터 안 대표로선 국민의힘이 수락하든 안 하든 불리할 게 없는 제안이었다. 우선 국민의힘에 단일화 공을 넘기며 자신은 할 만큼 했다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다. 단일화 실패에 대한 책임론 역시 자신보다 국민의힘, 특히 안 대표를 지속적으로 밀어낸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향하게 된다. 더불어 안 대표와의 연대 필요성을 강조해 온 국민의힘 내 중진 의원들을 불붙여 김 위원장을 더욱 압박할 수도 있다. 실제 권영세 의원을 비롯해 당내 적지 않은 의원들이 이미 안 대표의 제안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김 위원장은 안 대표의 제안에 즉각 “안 대표가 꾀를 부리고 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거절했다. 사실상 1차 단일화 협상은 김종인-안철수 둘 사이 평행선을 좁히지 못해 실패로 끝나게 됐다.

ⓒ시사저널 박은숙·임준선
ⓒ시사저널 박은숙·임준선

‘2011년 박원순 전략’ 도모하는 안철수

김종인 위원장과 안철수 대표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인사들은 단일화를 위해 물밑에서 공을 들여왔다. 이 역할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인 정진석 의원, 그리고 김무성 전 대표 등이 꼽힌다. 각각 안철수 측, 국민의힘 내부, 그리고 원외를 맡아 몇 개월간 김 위원장과 안 대표 사이를 조율해 온 것으로 확인된다.

실제,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안 대표에게 국민의힘 입당을 권유하는 일각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마포포럼에 안 대표를 초청하는 등 안 대표와 국민의힘의 거리를 좁히는 데 힘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정 의원 역시 공관위원장 목소리로 국민의힘-국민의당 통합 및 후보 단일화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에도 김 위원장과 안 대표 간 입장 차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안 대표는 오픈 경선 제안 후에도 국민의힘이 단일화를 위해 적극성을 보여주길 거듭 촉구하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 말대로 3월 국민의힘 후보가 최종 결정된 후 단일화 논의를 본격화하면 늦는다는 입장이다. 안 대표는 1월20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는 게 곧 김종인 위원장 본인도 정치적으로 더 인정받는 길이다. 목표를 같이해야 한다”며 “당장 단일화를 위한 실무협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3월 단일화 논의’는 늦다는 시각 우세

3월이든 그 전이든 국민의힘이 단일화 협상에 나설 때까지 안 대표는 지금보다 지지율을 높여 더욱 확실히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획으로 파악된다. 복수의 지지율 여론조사를 봐도, 안 대표는 나경원·오세훈 전 의원 등 국민의힘 후보들을 오차범위 밖에서 따돌리며 야권 후보 선두를 지키고 있다. 안 대표는 연일 “단일화 없인 필패”라고 외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의힘 입당 등 자신이 한발 양보하면서까지 진행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가능하다면 그 사이 금태섭 등 바깥의 후보들과 연대를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 대표가 양보했을 당시 박원순 전 시장이 당선됐던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박 전 시장 역시 당시 거대 야당인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고 바깥에서 몸집을 키운 후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박영선 의원과 최종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 승리한 바 있다. 더구나 이번 보궐선거는 코로나19 속 ‘언택트’ 선거 유세로 치러지는 만큼, 다른 때보다 지역 조직이 크게 활용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의 약점인 부족한 당세(黨勢) 또한 그리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김종인 위원장은 안 대표와 단일화 없이 3파전으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나경원·오세훈 외 10여 명의 후보 간 경선을 통해 자체 흥행을 도모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TV 토론이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안 대표의 지지세가 한풀 꺾일 거란 관측도 나온다. 물론 안 대표는 김 위원장의 자신감 표현은 ‘전략적’ 태세일 뿐이라며 “단일화는 결국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단일화에 여유를 부리는 김 위원장과 달리 국민의힘 내 불안감은 짙다. 한 중진 의원은 “김 위원장이 그동안 뉴페이스 후보를 열심히 찾았지만 사실상 실패하지 않았나. 나경원·오세훈 두 인물의 무게감은 상당하지만, 새바람을 기대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3월이면 단일화를 충분히 얘기할 시간도 없고, 그때라고 원활히 성사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 지금부터 계속 적극적으로 단일화 논의를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석 공천관리위원장 역시 1월13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승리를 위해 단일화는 선택이 아닌 당위”라며 피할 수 없는 일임을 강조했다.

차 단일화 시도는 사실상 실패했지만, 물밑 논의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단일화 시기나 방법 등에 이견이 있을지언정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안 대표는 물론 국민의힘 구성원들, 심지어 김 위원장까지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당 경선을 예고하고 있는 나경원·오세훈 두 국민의힘 후보 역시 단일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을뿐더러, ‘민주당 후보는 반드시 꺾어야 한다’는 야권 후보들의 ‘반문(反文) 정서’ 또한 어느 때보다 강하다. 혹여 최종적으로 단일화에 실패해 승리를 빼앗길 경우, 야권 전체가 민심으로부터 냉혹한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공감대도 두텁다. 한 차례 협상 불발에도 여전히 김 위원장과 안 대표 간의 기싸움이 끝내 단일화 앞에서 타협을 이루게 될 것이란 관측이 강하게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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