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법정 구속 후폭풍…재벌 승계구도에도 ‘빨간불’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2 12:00
  • 호수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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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관대한 법 적용 관행 깨져
재판 중인 대림·LS그룹 오너 일가 초긴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시 구속됐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은 1월18일 파기환송심에서 뇌물공여 등의 혐의와 관련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18년 2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자유의 몸이 된 지 1078일 만이다. 다시 총수 부재 상황을 맞게 된 삼성에는 비상이 걸렸다.

주요 경제단체들도 이 부회장 구속에 대해 일제히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무역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총수 부재로 삼성은 물론 우리 경제 전반에 후폭풍이 불어닥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입장문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1월15일 ‘국가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이 부회장에게 기회를 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총수 부재 사태 맞은 삼성의 고민

당장 증시가 요동을 쳤다. 이 부회장 구속 하루 만에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S 등 삼성 주요 계열사의 시가총액이 21조원이나 증발했다. 이 중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의 주가 하락률이 6.8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밖에 삼성생명(4.96%), 삼성전자(3.41%), 삼성SDS(3.19%) 등 주요 계열사 주가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사태로 회복과 성장이 필요한 시기에 총수 부재 상황을 맞으면서 삼성이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삼성 계열사들의 기초체력이 충분한 만큼 주가 하락이 단기적 조정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된 2017년 8월25일에도 계열사 전반의 주가가 소폭 하락했지만 금세 회복했다. 삼성전자의 경우만 해도 판결 직후 이틀간은 1%대 주가 하락세를 보였지만, 이후 3거래일 만에 이전 주가 수준으로 돌아왔다. 이 부회장이 1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하는 사이 삼성전자는 오히려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주가가 20% 이상 올랐다. 총수 부재가 경영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란 재계의 주장은 기우에 불과했다.

현재 삼성 안팎에서 우려하는 건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은 2018년 8월 향후 3년간 180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이듬해인 2019년 4월에는 시스템 반도체에 10년간 133조원을 투자해 세계 1위에 오른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공개한 바 있다. 최근 이 부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현재 계획 중인 대규모 투자에는 제동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앞서 수감생활 중에도 경영진으로부터 현안을 보고받고 의사결정에도 관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옥중경영을 해 온 것이다. 그룹 사령탑 역할을 해 온 미래전략실의 해체와 그해 7월 경기 평택 반도체 생산라인 준공식 때 2021년까지 30조원 투자 결정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도 당장 의사결정이 필요한 현안들은 이 부회장에게 직접 보고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상황에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 교정시설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이 부회장은 구치소 수감 후 4주간 격리된다. 이 기간에는 주요 경영진이 이 부회장을 만나 현안을 논의할 길이 원천 차단된다. 경영 진공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격리가 해제되는 4주 이후에도 일반 접견은 하루 10분으로 제한된다. 옥중경영을 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명확한 셈이다.

격리 기간이 끝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한 재판이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사망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 정리와 상속세 재원 마련 방안을 옥중에서 해결해야 하는 부담도 안게 됐다.

‘징역3년, 집행유예 4년’, 이번엔 없었다

재계에서도 이번 판결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눈치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재벌 총수 일가가 수사 대상이 된 경우는 대부분 승계와 관련이 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증여·상속세와 무관치 않다. 관련법에 따르면 30억원 이상 증여·상속 시 최고세율인 50%가 적용된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해질 경우 세율은 65%까지 올라간다. 이는 프랑스(45%), 미국·영국(40%), 독일(30%)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수치다.

이 때문에 재벌들의 승계 과정에서 다양한 편법과 불법이 동원됐다. 선대로부터 넘겨받은 주식의 절반을 팔아서 세금을 납부할 수 있지만, 지분율이 낮아져 지배력이 희석되거나 해외 투기자본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등의 논리를 들었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계속해서 재벌가의 부당한 부 대물림에 제동을 걸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다. 일감 몰아주기는 그동안 재벌가에서 애용돼 온 승계 방식이었다. 재벌 후계자가 보유한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줘 사세를 키운 뒤 이를 승계 재원으로 활용하는 식이었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2012년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고, 2015년 이를 규제하는 내용이 담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본격 시행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당한 부 대물림을 근절하겠다고 공언했고, 최근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황이다. 사실상 승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창구가 사라져가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벌가는 승계 재원 마련을 위해 금융권 문을 두드리고 있다. 보유 중인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 위해서다. 이 경우 재산권만 담보로 설정하고 의결권은 인정되기 때문에 경영권 행사에는 지장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봉착했다. 기업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64개 대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55개 그룹의 오너 일가 주식담보 현황을 조사한 결과,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한 주식의 가치는 2017년에서 지난해까지 3년 사이(9월18일 종가 기준) 9조206억원에서 14조8328억원으로 64.4%(5조8122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사례를 보면,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의 장남 정기선 부사장은 2019년 3월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를 확보, 3대 주주에 오르는 과정에서 500억원의 주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았다. GS그룹 4세인 허세홍 GS칼텍스 사장(330억원) 등도 300억원 이상의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과 이경후 CJ ENM 부사장 남매는 승계 과정에서 각각 200억원대 주담대를 일으켰고,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 부부의 장남 담서원씨와 장녀 담경선씨도 지난해 말 주담대를 190억원과 77억원까지 각각 늘렸다. 특히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장남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전무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 한화에너지 글로벌전략담당 상무보는 보유 지분 전량을 담보로 제공했다. 김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의 담보 제공 비율은 90%를 상회했다.

2020년 2월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편·불법 피해 금융사로 직행

이들의 공통점은 현재 승계 작업이 진행 중이고, 승계 재원 창구를 마련하지 않았거나 규제로 승계 자금 마련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주식담보대출을 통한 승계 재원 마련은 향후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이 그동안 총수 일가에 관대한 법 적용을 해 온 관행이 깨진 점도 주목된다. 재계 안팎에서는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를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2019년 10월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 ‘재벌 체제 폐해 시정’ 등을 당부했다. 삼성이 이 권고를 받아들이면서 지난해 1월 준법감시위가 출범했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재판부가 이재용을 풀어주기 위해 명분을 쌓고 있다”는 얘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준법감시위를 양형 조건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실형을 선고했다. ‘재벌 봐주기’라는 비판을 고려한 판결로 풀이된다. 계열사 부당 지원을 통한 사익편취 등의 혐의로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그룹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은 오너 일가 지분율이 100%인 에이플러스디를 통해 통행세를 거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이 회장은 현재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자홍 니꼬동제련 회장과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은 LS엠트론 회장 등 LS그룹 오너 일가도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오너 일가 지분이 49%인 LS글로벌을 거래에 끼워넣어 이른바 ‘통행세’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물론 LS그룹 측은 “정상적인 거래로, 재판을 통해 성실히 소명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판결은 이들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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