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징벌적 손배’ 개혁이냐, 개악이냐…지루한 싸움 또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3 10: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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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논의 필요” 지적에도 與, 언론 징벌법 밀어붙이는 이유

정부·여당이 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를 들고나왔다. ‘검찰 개혁’ ‘사법 개혁’에 이어 이번엔 ‘언론 개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사 등에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입법을 천명하면서 곧장 정치권을 비롯해 언론계 등 곳곳에서 찬반 논쟁이 들끓었다. 민주당은 야당과 언론계 등의 반대에도 3월 임시국회에서 주요 관련 법안 6개를 통과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개혁이냐, 개악이냐의 지루한 평행선 싸움이 또다시 시작된 것이다.

민주당이 개혁의 강력한 추진을 위해 만든 ‘미디어·언론 상생 태스크포스(TF)’의 단장 노웅래 최고위원은 “허위뉴스와 가짜뉴스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야당과 일부 언론계에선 표현의 자유 문제와 기준의 모호성으로 맞섰다. “거짓과 불법 정보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게 국민의힘의 반대 이유다. 언론노조 역시 “정말 이 법안들이 ‘민생’을 위한 것이냐”고 되묻고 있다. 이러한 반대에도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기존 유튜브·SNS뿐만 아니라 언론사와 포털까지 포함시키며 더욱 고삐를 당기고 있다.

ⓒ일러스트 정찬동 

국회 전문위원들 “표현의 자유 과도하게 제한”

우려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우선 민주당이 처리하겠다고 밝힌 주요 법안에 대한 각 상임위원회 수석전문위원들의 검토보고서를 살펴봤다. 거짓·불법정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내용이 담긴 윤영찬 민주당 의원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검토보고서엔 “이미 거짓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다른 위반행위보다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징벌적 손해배상같이 강화된 제재는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된 후 도입함이 타당할 것”이라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속 전문가의 지적이 담겨 있다.

양기대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또 다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포털 댓글 피해자가 게시판 운영 중단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에 대한 검토보고서에도 “사업자의 영업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자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있다. 보도 피해자가 기사 열람 차단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신현영 민주당 의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도 역시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있다”는 평가가 달렸다. 다시 말해, 언론 개혁을 위한 입법 처리에 좀 더 섬세하고 다각적인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이 이처럼 언론 개혁을 밀어붙이는 이유로는 몇 가지가 꼽힌다. 우선 국민적 지지세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추진해 온 검찰 개혁은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사태를 거치며 진정성이 희석됐지만, 언론 개혁은 아직 국민 다수가 그 정당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게 민주당의 인식이다. 언론에 대한 여론의 전반적인 불신이 곧 민주당으로선 개혁을 밀어붙일 명분이 된 것이다. 실제 지난해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응답자 81%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2020년 5월28~31일 미디어오늘 의뢰 리서치뷰 조사,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00명 대상).

이낙연 성과 욕심과 언론 불신 맞물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4월 보궐선거와 이후 대선까지 염두에 둔 속도전이란 분석도 있다. 당장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임기 막바지로 향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대표는 2월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시작으로 연일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회 안정과 신뢰 유지를 위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대선주자 지지율 하락세 등 위기를 겪고 있는 언론인 출신의 이 대표가 친문(親文)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내에선 언론 개혁 이슈가 당의 숙제인 ‘중도층 잡기’에도 설득력 있는 어젠다가 돼 줄 것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동시에 공공의 적인 ‘기득권 적폐’로 언론을 상정해, 집토끼인 기존 지지층까지 더욱 결집할 수 있다는 전략인 것으로 해석된다. 더 이상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이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하지 않는 지금, 언론 개혁이야말로 선거전에서 힘을 발휘할 최선의 무기라는 것이다.

민주당 일부에 깊이 깔려 있는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조국 사태 등 앞선 검찰 개혁 과정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며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더 크게 인지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지지층 요구도 상당하다”면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당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비극을 맞은 데 당시 언론들의 영향도 분명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가짜뉴스 근절’이라는 프레임을 야당이 언제까지 거부하며 막을 수만은 없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도 이전부터 가짜뉴스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지엔 동조해 왔다. 2018년 민주당은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만들어 한 달 만에 5000여 건의 신고를 받았다. 당시부터 민주당은 처벌법을 발의해 가짜뉴스를 잡는 그물망을 촘촘히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해 왔다. 그런데 그 무렵 자유한국당(현재 국민의힘) 역시 가짜뉴스 센터를 개설해 제보를 받았고 법적 대응까지 추진했다. 당시 지방선거를 앞둔 특수성이 있긴 했지만, 가짜뉴스 척결에 대해 민주당 못지않게 목소리를 내왔던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는 여야가 합의해 가짜뉴스 언론에 대한 적절한 제재를 만드는 작업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민주당이 논의 강도와 속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야당과 일부 여론은 이미 앞선 권력기관 개혁 과정을 거치며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과 앙금이 쌓여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민주당이 숨 쉴 틈 없이 언론 개혁마저 속도를 내니, 의도의 순수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장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게다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라는 강력한 처벌안을 제기하면서 정작 그에 따른 마땅한 논의를 생략한 데 대해서도 비판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언론노조 등 관련 단체 역시 공청회 개최 등을 주장하며 법안 처리 전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 상태로는 가짜뉴스의 기준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모호해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다. 김동훈 기자협회장 역시 “핀셋으로 집어내듯이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이들을 골라내야 하는데, 지금 방식은 모든 언론을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모든 것이 ‘사법화’되는 흐름이 이번 언론 개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우려도 나온다. 무조건 법으로 처벌하려는 행태가 과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언론에 문제가 있는 것과 그것을 개선하는 건 구분해야 한다”며 “정치가 처벌자 역할에 앞장선다는 건 조심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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