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新기업가정신·창업2.0’ 정책 절실
  • 전성민 가천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벤처창업학회 부회장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5 10:00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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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벤처 강국 한국, 돈가뭄 여전…도전정신 강조보다 맞춤 지원책 필요 

우리나라 벤처창업기업 지원정책은 1990년부터 시작돼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 창업지원법·신기술금융지원법·벤처기업 확인제도 등이 시행됐고 창업교육·엔젤투자 분야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하지만 벤처 생태계의 자생력 강화보다는 벤처기업의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정부 주도의 ‘선물세트식’ 지원정책이 계속된 것도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공급자 중심으로 추진되는 창업정책은 초기 혁신 스타트업들을 지속 성장시키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벤처투자제도는 사전규제와 투자제한 규율이 강해 민간 자본이 유입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태펀드 또한 수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돼 자본은 많은데 초기 스타트업은 투자받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국내 엔젤투자와 벤처투자 규모는 매년 확대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미국, 이스라엘, 중국에 이어 벤처투자 4대 강국으로 도약했으나, 정작 초기 스타트업들이 겪는 장애요인 중 ‘창업자금 확보에 대해 예상되는 어려움’이란 답변이 가장 많은 71.9%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9월17일 경남 창원시 스마트그린 산업단지의 태림산업을 방문해 태림산업 관계자로부터 시설을 안내받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9월17일 경남 창원시 스마트그린 산업단지의 태림산업을 방문해 태림산업 관계자로부터 시설을 안내받고 있다.ⓒ연합뉴스

독일, 예산 손실 감수하며 초기 스타트업 육성

대학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창업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창업 교과과정을 만들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업공간과 재원지원, 해커톤을 개최하기도 한다. 하지만 창업교육을 받는 대학생들은 “교수들은 안정된 직장에 다니면서 왜 자꾸 청년들한테 창업하라고 하느냐, 취업을 못 시켜주니 창업으로 취업률을 올리려는 것 아니냐”고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대학생 상당수가 창업에 관심이 없고 다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 된다. 창업교육에 열을 올리는 교수, 관심 없는 학생들, 창업 실적을 따지는 정부,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대학 창업교육 현장의 민낯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초기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어떤 기업가정신, 창업정책을 지향해야 할까.

독일과 일본은 역사상 제조업 중심으로 정부 주도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두 나라는 스타트업 정책에서는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이 두 나라는 뒤늦게나마 벤처기업이 신기술 개발, 산업구조 고도화, 고용 창출에서 경제적 의의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초기 스타트업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현재 독일은 약 8억8600만 유로(약 1조2000억원) 규모의 하이테크 창업자 펀드(HTGF·High-Tech Grunderfonds)라는 공공 벤처펀드를 운영해 첨단기술 초기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HTGF 자금의 대부분은 정부에서 출자하고 목표 투자 손실률 30%로 운영된다. 이는 정부 예산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초기 스타트업 투자를 강화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HTGF의 특징은 기술혁신 성과가 우수한 초기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경영지원을 병행한다는 점이다. 자금은 대부분 정부가 출자하고 기업 성공에 필요한 기술, 대규모 자본 투자자 네트워크 및 비즈니스 노하우는 민간에서 제공한다. 특히, 민간 창업전담팀이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고, 지속적으로 충분한 자금과 성공적인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다음 단계 투자 유치를 지원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HTGF의 목적이 수익률에 있지 않고 혁신 스타트업 발굴 및 후속투자 유도에 있기 때문에 HTGF 투자 회사의 부도율을 약 30%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수익률보다 정책적 목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벤처펀드에 출자하는 모태펀드와 별개로 민간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분야에 직접 투자하는 정부 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

한편 일본은 인구 감소, 불경기를 겪으면서 혁신의 돌파구를 대학에서 찾고 있다. 일본 정부는 주요 대학 중심으로 대학 기반의 벤처캐피털(VC) 운영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2015년 제정된 ‘산업경쟁력강화법’을 기반으로 도쿄대·교토대·오사카대·도호쿠대 등의 대학에 1조원 이상 규모로 대학 기반 VC를 설립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일본의 대학 기반 VC 제도는 교수 및 연구실 창업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양적 측면에서 빠른 성장과 함께 성과를 보이고 있다. 몇 년 전 도쿄대 중국인 유학생이 창업한 포핀(PopIn)은 바이두에 약 3000억원에 매각됐으며 세계재난로봇대회(DARPA)에서 1위를 한 도쿄대 로봇공학 회사인 ‘샤프트’는 구글에 인수됐다. 반면 우리나라 모태펀드의 교육계정은 규모가 200억원 이하로 미미하다. 대학의 창업지원 목표는 학부생의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대학들은 수익활동에 규제를 받고 있으며 교육부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자율적인 운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벤처캐피털 연합체 등 대학 내 벤처기업 육성 시급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혁신 스타트업 생태계를 강화해야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이 두 나라의 사례에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독일 HTGF는 적절한 수준의 정부 예산 손실을 감수하면서 초기기업 투자를 통해, 시장에서 소외된 영역에 투자를 확대하고 민간 모험자본 확충까지 이끌어내 유럽에서도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HTGF 사례를 보면 간접투자와 직접투자는 정책적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예산을 바탕으로 하는 독립된 조직을 설립했다. 대기업이 해당 펀드에 소규모로 출자하지만, 인력을 파견해 투자 결정에 참여하고 사업 기회도 제공하게 함으로써 민간의 선별 능력과 조기 사업 제휴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간접투자를 하는 모태펀드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기관 설립이 필요하고 네이버·카카오 등 혁신적 민간기업들이 운영에 참여하는 형태로 가져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지속적인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대학과의 오픈 이노베이션 체계가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학발 기술 사업화에 대한 연구와 함께 스타트업에 대한 규제 완화 및 교수, 실험실 창업에 대한 지원 방안 마련이 시급한 때다. 대학펀드와 관련해 과학기술부가 대학 및 연구소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총괄하는데 이 중 일부를 모태펀드에 출자해 대학 및 연구소 기술 사업화에 투자하는 전용펀드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기존 펀드와 달리 운용기간도 10년 이상 장기로 늘리고 전문가들이 이름을 걸고 투자할 수 있는 펀드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모태펀드가 대학의 기술 사업화를 위한 대형 펀드 출자를 제시함으로써 대학 간 연합 벤처캐피털 설립을 유도하거나 대학의 벤처투자를 위한 대학 자금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대학지원금의 대학창업펀드 출자를 허용하고 대학발 기술 사업화 및 대학창업펀드 출자 부분을 대학 평가에 반영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어떻게 새로운 기업가정신과 벤처정책을 정하느냐는 미래의 국운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산업의 구조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역동적인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초기 스타트업 창업에 우리 모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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