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홍은 왜 한국판 《트루먼쇼》 주인공 됐나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0 11:00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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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예능프로 뺨칠 언론과 포털 과잉 보도의 심각성

마치 영화 《트루먼쇼》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지금 박수홍이 주인공 트루먼이다. 친형과의 갈등과 분쟁 상황이 알려지면서 매일같이 박수홍의 일상사가 공개되고,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러한 사생활로 가득 채워지는 언론은 과연 괜찮은 걸까. 

개그맨 박수홍ⓒ연합뉴스

관찰카메라·언론이 공조하는 연예인 사생활 보도 

현재 네이버나 다음의 연예 뉴스면은 온통 박수홍 관련 기사들로 채워져 있다. 보통 연예인 관련 논란들이 터졌을 때 연예 뉴스가 관련 기사로 채워지는 건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거의 2주 가까이 박수홍 관련 기사가 계속 등장하고, 심지어 ‘많이 본 뉴스’ 1위부터 10위까지를 도배하다시피 채워지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지금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박수홍 관련 일거수일투족까지 모두 기사화된다. 홈쇼핑에 나와 “열심히 살겠다”는 모습을 보였다는 기사부터, 과거 방송에 나와 그가 했던 말이나 눈물을 흘렸던 장면들이 다시 소환되어 각별한 의미로 재해석되는 기사들까지 쏟아진다. 과연 이런 언론의 모습은 정상적인 걸까. 

이 사안은 박수홍이 반려묘인 다홍이와 함께 보내는 일상을 담은 유튜브 채널 댓글 창에 누군가 폭로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 글에는 박수홍이 전 소속사 대표였던 친형에게 지난 30년간 100억원대의 수입을 횡령당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당연히 이 글은 여러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되었고, 사안은 일파만파 커져 갔다. 결국 박수홍이 그 글이 사실이라고 인정하자 박수홍 관련 기사들이 더욱더 쏟아져 나왔다. ‘100억원대’라는 자극적인 문구는 박수홍도 자신이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고 얘기했지만, 언론들이 ‘화력’으로 활용하면서 마치 기정사실인 양 보도됐다. 

박수홍이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은 이 사안으로 인해 새삼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됐다. 마침 2부작 파일럿으로 방영됐던 SBS 《뷰티 앤 더 비스트》에서 박수홍이 반려묘 다홍이를 만나 살 수 있는 희망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처한 상황과 연결되면서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 박수홍의 어머니가 계속 출연할 수 있는지도 관심거리가 됐다. 결국 잠시 방송을 하지 않는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고 그것 역시 기사화돼 화제몰이를 했다. 하지만 이 사안은 박수홍이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으로 마무리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침묵하던 친형의 난데없는 ‘93년생 여자친구’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다. 

박수홍의 친형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이 갈등과 분쟁의 시작이 재산 문제가 아니라 박수홍의 93년생 여자친구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야기는 ‘탈세’ ‘낙태’ 같은 자극적인 박수홍 관련 또 다른 ‘썰’로 이어졌다. 박수홍 측은 ‘이미지 흠집내기’라며 이 사안의 본질은 ‘횡령’이라고 강변했지만, 이미 사생활 폭로와 이를 통한 여론전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법적’으로 어떤 판결이 나야 할 이 사안이 ‘여론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수홍과 친형 사이에 벌어진 분쟁과 갈등인지라, 일반 대중이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는 쉽지 않고 그것이 또 그리 중대한 사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언론매체들이 앞다퉈 두 사람 관련 기사들을 실시간 중계하듯이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라, 여론전은 더 활활 타오르고 있다. 대중은 기사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며 때론 혀를 차지만 정작 이 여론전에 자신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연예 매체들이 여론전을 만들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끄집어내 기사화하는 건 이 사안이 중대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마치 관찰카메라의 실제 버전처럼 자극적인 소재를 가진 이 사안이 조회 수를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물론 이처럼 연예 매체들이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논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박수홍 사안이 특이한 건 사생활 실시간 중계에 가까운 실제 버전의 관찰카메라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다. 

박수홍이 3월2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전 소속사, 가족 관련 소문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박수홍 인스타그램 캡처

AI 활용해 관련 뉴스 쏟아내는 주요 포털들 

박수홍 관련 사안들은 물론 일정 부분 ‘사회 사건’으로서 공적인 영역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토록 오래도록 대서특필될 사안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기사가 마치 《트루먼쇼》 중계하듯 그 사생활들을 파헤쳐 보도하고, 포털에 자극적인 기사들이 도배되는 양상은 그것이 우리 사회의 더 중요한 사안이나 정보들을 통째로 가려버리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포털에 중립을 요구하는 정치권과 이에 대응해 자신들은 언론매체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포털의 상황이 밑그림으로 깔려 있다. 네이버도 다음도 이제는 기사 배치에 에디터 대신 인공지능(AI)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물론 포털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기사 배치가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AI는 정치 중립적일까. 

성실한 취재 기사와 심층분석 기사보다는 당장 눈앞의 자극적인 이슈 기사들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하나의 이슈에 온통 쏠려버리는 AI의 편향성은 포털의 정치적 중립성보다 더 심각한 사태를 만들 수 있다. 포털은 스스로 매체가 아니라고 하지만 현재 대중이 언론을 접하는 창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창이 온통 누군가의 시시콜콜한 사생활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고, 그래서 정작 중요한 사안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런 중요한 창을 인간이 아닌 기계가 맡아 한다는 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트루먼쇼》는 누군가의 내밀한 사생활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자극적이다. 그래서 대중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중이 온통 《트루먼쇼》에 몰입해 있을 때,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건 다름 아닌 트루먼과 대중이다. 트루먼이 자신의 사생활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고통을 겪을 때, 매일같이 그 사생활을 마주하는 대중도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제 누군가의 사생활을 이렇게 실제로도 계속 들여다보는 일에 무감각해지는 건 과연 괜찮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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