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나…‘백승호 분쟁’이 남긴 상처와 교훈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0 12:00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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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의 겨울 이적시장(선수 정기등록)은 3월 마지막 날 마무리되지만, 보통 개막을 앞둔 2월말에 굵직한 이적은 정리된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달랐다. 3월 내내 한 선수의 이적 여부에 모두의 눈과 귀가 쏠렸다. 최종적으로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은 백승호가 주인공이다. 

지난 2월초 백승호는 독일 프로축구 2부 리그의 다름슈타트를 떠나 전북으로의 이적을 타진했다. 전북이 다름슈타트와 이적료에 대한 합의점을 찾고,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에 백승호의 신분조회를 거쳐 영입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할 때만 해도 순조롭게 진행하는 듯했다. 하지만 협상 마무리를 위해 백승호가 귀국하기 직전인 2월 중순 변수가 발생했다. 수원 삼성이 백승호가 2010년 자신들의 유스팀인 매탄중 재학 시절 팀의 금전적 지원을 받고 바르셀로나 유스팀으로 향하며 쓴 합의서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수원은 백승호에게 매년 1억원씩 총 3억원을 지급했다. 동시에 두 차례에 걸쳐 합의서를 썼는데, 2차 합의서에는 국내 복귀 시 ‘형태·시기·방법 등을 불문하고’ 수원에 입단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타 구단에 입단할 경우에는 지원금 반환과 추가 손해배상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때부터 한 달 넘게 펼쳐진 백승호 분쟁이 본격화됐다. 선수 측과 수원 구단은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으로 팽팽히 맞서며 갈등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선수 영입의 9부 능선에 도달했던 전북은 그대로 영입을 강행해도 등록과 기용에 문제가 없다는 연맹의 유권해석이 나왔음에도, 원만한 해결이 최선이라는 판단에 따라 협상을 중단하고 한발 물러섰다. 백승호의 계약 위반에 대한 축구팬들의 비판적 시선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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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호 선수는 수원과의 분쟁으로 자칫 선수 생명이 중단될 뻔한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사진은 2019년 9월3일 국가대표로 선발된 백승호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면ⓒ연합뉴스

“유소년 시스템 근간 흔들어” vs “개인 계약 문제 감정적 대응”

백승호 측은 뒤늦게 순리대로 가겠다며 수원 입단을 타진했다. 그러나 이미 신의를 상실한 데 실망했다는 수원은 백승호 측의 입단 의사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대로 시간이 흘러 3월 내 등록하지 못하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쪽은 백승호였다. 전북으로의 이적 추진이 그대로 막힐 경우 다름슈타트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미 팀 내 입지가 약해져 주전 경쟁에서 밀린 백승호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원금 반환 등으로 수원과의 갈등을 풀고 전북으로 가든, 수원에 입단하든 이적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경우 민사소송도 예고됐다. 

가장 황당한 쪽은 다름슈타트였다. 백승호의 이적을 허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한 팀이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유소년 시절 지원에 대한 합의서 문제로 한 달 넘게 절차가 멈춰버린 탓이다. 오히려 다름슈타트가 수원 측에 백승호 영입 의사를 물을 정도였다. 동시에 이 상황이 수원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합의서에 근거해 백승호의 국내 복귀 시 최우선으로 데려올 수 있는 권리는 명시했지만, 다름슈타트에도 이적료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초 다름슈타트가 전북과 합의한 이적료는 80만 유로(약 10억6000만원)로 알려졌는데, 수원으로선 이 금액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2014년부터 삼성그룹 산하 스포츠단이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뒤 씀씀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백승호 분쟁은 거대한 프레임 대결로 전개됐다. 수원은 백승호가 전북으로 이적할 경우 어린 선수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K리그 유스 시스템의 근간이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북이 백승호를 영입할 수 있는 명분까지 약화시킬 수 있는 주장이었다. ‘배은망덕’ ‘배신’ 등 격한 표현도 수원 관계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수원 팬들과 언론도 거센 비판을 펼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급해진 백승호 측은 당시 지원금 계약서와 합의서를 작성했던 아버지를 중심으로 진화에 나섰다. 합의서가 존재하는데 이를 수원에 확인하거나, 전북에 알리지 않은 명백한 실책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그러나 수일이 지나도 합의 분위기는 형성되지 않았다. 명백한 실책을 저지른 쪽은 백승호였고 수원도 그에 따른 피해자였지만, 대응 방식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백승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브리온컴퍼니의 공식 입장문에 따르면, 수원은 K리그 등록 마감일 임박 때까지 선수 측의 거듭된 사과에도 독일로 돌아가는 것과 진정성 있는 사과문만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적을 위해서는 백승호뿐만 아니라 수원도 이행 의사를 적극적으로 보여야 했는데, 이 문제를 푸는 데는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극적인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던 3월 넷째 주말 수원은 최종적으로 14억2000만원을 지불할 경우 합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백승호 측에 전했다. 지원금 3억원과 법정 이자 1억2000만원, 거기에 전북이 백승호 영입을 위해 다름슈타트에 지급하려는 이적료 10억원까지 더해진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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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일 수원과 전북의 K리그1 경기에서 수원 서포터즈가 전북을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펼쳐보이고 있다.ⓒ뉴스뱅크

3자 간 갈등 넘어 지역 비하와 구단주 비방까지…감정 소모만 남겨

그런데 이것이 백승호 측의 신의 상실을 지적하고, 유스 근간 보호를 외치던 수원의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이 있다. 지원금과 법정 이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선수의 가치에 해당하는 10억원을 손해배상으로 추가 청구한 것은 합의서 안에 명시된 객관적 근거가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수 소유권이 없는 상황에서 지원금을 근거로 현재 가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요구하는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금지하고 있는 서드파티(구단이 아닌 3자인 법인·개인이 선수 지분에 투자해 이득을 취하는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결국 전북은 등록 마감 하루를 앞둔 3월30일 백승호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그로 인해 백승호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전북 역시 합의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수원 측과 소통하지 않아 오해를 불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수원은 전북이 백승호 측에 귀국 후 자가격리를 위한 숙소를 제공한 점을 들어 이미 계약을 완료한 상태라고 의심하고 더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측면이 있었다. 전북이 수원과 백승호 두 당사자의 문제라며 뒤로 물러서기보다는 오해를 적극적으로 풀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한 달 넘게 이어진 공방과 갈등은 큰 상처와 감정 소모를 남겼다. 공교롭게 백승호 이적이 공식 발표된 직후인 4월3일 수원과 전북은 맞대결을 펼쳤다. 전북이 3대1로 승리했지만, 이 사태에 뿔난 수원 팬들의 항의 걸개가 걸린 관중석에 더 관심이 모였다. 거기에는 백승호와 전북 구단에 대한 저격을 넘어 전북의 구단주인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에 대한 비방도 포함됐다. “정의(定義)와 선(善)은 어디에’라는 문구였다. 개XX, 호로XX 등 욕설이 담긴 문구도 쏟아졌다. 경기를 앞두고는 수원의 일부 과격한 서포터즈가 SNS에 백승호를 비판하며 ‘쥐XX는 전라도로’라는 특정 지역 비하 포스터를 게재해 큰 논란이 됐다.

결국 선수의 안이한 판단과 양 구단의 현명하지 못한 대응이 지나친 감정 소모를 낳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팬들이 구단과 선수의 입장을 원색적으로 보도한 미디어에 편승해 과몰입하기 때문이다. 백승호의 전북 입단을 앞두고는 법적 대응 불사라던 강경 분위기가 최근 들어 원만한 합의를 통해 해결하려는 분위기로 급격히 흐르는 것이 더 허무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스스로 이렇게까지 싸울 필요가 없었다는 방증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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