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정직과 도덕성’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4 10:00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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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조사 결과 '정직과 도덕성'이 40.3%로 1위
'사회적 공헌'도 중요 요소…김범수·김봉진 등 1세대 IT 기업인들 기부 앞장서

선도적으로 기술을 획득한다.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키운다.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 그것이 있는지 여부가 기업가를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고도성장기에 경제 성장을 이끌어야 했던 기업들에 요구됐던 이 항목들은 잘못된 상하관계와 상명하복 문화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지금 대중은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사회적 가치’를 요구한다. 윤리·환경을 생각하는 마인드, 사회공헌 요소 등이 기업가의 이미지와 기업의 앞길을 바꾸고 있다. 이번 시사저널 조사에서 오늘날 대중은 기업가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정직과 도덕성’을 꼽았다.

➊ ➋ (왼쪽부터)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이사회 의장·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김정주 NXC 대표·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시사저널 임준선·시사저널 포토  

대중은 '갑질'을 참지 않는다‘오너리스크’가 위험한 이유 

도덕성은 ‘갖춰야 할 것’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될’ 필수덕목이다. 가장 정직하고 도덕적인 기업은 따로 있지 않다. 다만 대중은 윤리를 거스른 기업만을 기억할 뿐이다. 우리는 ‘갑질 사태’를 잊지 않는다. 대표의 개인 비리나 일탈로 기업이 위기에 빠지는 ‘오너 리스크’는 그래서 위험하다. 한진그룹 오너가의 '땅콩 회항', 미스터피자(MP그룹) 오너의 경비원 폭행 사건과 '치즈 갑질', 종근당 오너의 불미스러운 사건 등은 아직도 대중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논란이 된 사건은 언제든 다시 들춰볼 수 있다. 오너의 부도덕함이 알려지고, SNS를 통해 그 사실이 확산된다.

오늘날 대중은 참지 않는다. 불매운동을 통해 소비자로서 기업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오너의 일탈은 곧장 매출 하락으로 연결된다. ‘갑질’이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시장에서의 기업 이미지 전반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앞으로는 기업 경영만 잘해서는 인정받지 못한다. 윤리가, 도덕성이, 정직함이 기업의 평판을 가른다. 특히 기업을 일궈낸 업적을 지닌 오너 1~2세에 비해, 기업 운영의 책임을 이어받게 된 3~4세 오너들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시사저널이 ‘기업인 인식 관련 국민 설문조사’를 통해 ‘가장 필요한 기업인의 덕목’을 물은 결과, 40.3%의 응답자가 ‘정직과 도덕성’이라고 답했다.

이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조명받는다. 그래서 요구되는 또 하나의 덕목은 ‘사회적 공헌(16.1%)’이다. 과거 대기업들은 경영권 승계 등의 논란이 일거나 오너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속죄하는 의미로 사회공헌에 나섰다. 그래서 범현대가 그룹 오너들이 자발적으로 사재를 출연해 세운 아산나눔재단은 그 등장만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대다수의 대기업이 그룹 내 사회공헌사업에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한다. 회사 차원의 기부를 하고, 취약계층을 돕고, 어려움을 겪는 협력사를 지원하고,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우리가 사회적 가치를 챙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기업인들의 행보는 전통 기업들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1세대 IT(정보기술) 기업 수장들은 개인적인 자산 기부와 사회적 책임에 초점을 둔 경영에 적극적이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이사회 의장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세계적인 자발적 기부운동인 ‘더 기빙 플레지’의 기부자가 됐다.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결정은 한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김봉진 의장은 약 5000억원, 김범수 의장은 5조원가량을 기부할 것으로 추산된다. 김범수 의장은 “앞으로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결심을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는 2018년 사재 1000억원을 내놓기로 약속한 후 매년 어린이 병원 등에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1세대 IT기업의 성공으로 도전 정신 재부각

장수 기업을 들여다보면 도전정신을 보이며 회사를 일궈낸 기업가들이 있다. 58세에 현대중공업을 만들어낸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평생 도전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반도체 사업을 시작해 지금의 삼성을 만들어냈다. 기업가들이 갖춰야 할 세 번째 덕목은 ‘도전정신(15.8%)’이다. 도전의 가치는 시대를 관통한다. 최근 ‘날고 있는’ 1세대 IT 기업들을 만들어낸 것도 도전정신이다.

김봉진 의장은 모바일 네트워크와 모바일 앱을 배달 서비스와 묶어 서비스의 잠재력을 폭발시켰고, 배달의민족을 7조원이 넘는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키워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늘어나는 쿠팡의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면서 모바일 시대가 가져온 기회를 잡아냈다. 쿠팡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72조원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평가됐다. 카카오의 미래를 확신한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 네트워크’를 통해 다각도로 시장을 흔들고 있다. 도전으로 일궈진 젊은 기업들의 등장 때문일까. 20대 응답자들이 도전정신에 높은 가치를 뒀다. 20대 응답자(19~29세)들은 도전정신(18.6%)을 사회적 공헌(9.3%)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평가했다.

이 외에도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장인정신’과 ‘창의성’이다. 남다른 철학으로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장인정신이 기업가가 갖춰야 할 필수항목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10.8%였다. 장인정신은 뭘까. 한국산업교육학회 회장을 지낸 장원섭 연세대 교수는 저서 《다시, 장인이다》를 통해 “현대적 장인은 더 이상 전통 기술을 고수하고 그대로 전수하는 역할이 아니다. 높은 숙련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배우며 자기 지식과 기술을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창조적으로 일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혁신하는 기업가의 마인드는 국가가 자랑하는 ‘백년 기업’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수공업의 틀을 이미 뛰어넘은 장인정신은 IT 서비스, 문화, 게임 영역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기업 이미지를 리뉴얼하면서 장인정신과 도전의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창의성(8.2%)’이 그 뒤를 이었다. 기업가들의 자유로운 창의성은 많은 스타트업을 일궈냈고, 코로나19가 촉발한 비대면 시대의 새로운 서비스들을 등장시켰다. 전통 기업들도 업무 형태를 바꾸고 사옥 공간을 개편하면서 창의적 사고를 격려한다. 최근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주목받는 기업가도 있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다. ‘국민 가격 프로젝트’ 등 가격 파괴 정책 등을 제시하며 승부수를 던져온 정 부회장은 SNS나 프로그램 간접 출연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대기업 오너 이미지를 구축했다. 최근 ‘용진이형 마케팅’ 등 독창적인 오너 마케팅을 통해 그룹 이미지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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