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에 ‘하나회’라니 누가 그 재판을 믿겠는가 [쓴소리 곧은 소리]
  • 최진녕 변호사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3 10:00
  • 호수 16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아래서 벼락 출세한 우리법연구회·인권법연구회 출신 법관들
김미리 판사, 조국·靑 울산시장 선거 개입 재판 계속 공전시켜

‘재판이 곧 정치‘라며 판사의 정치색을 인정하자는 취지의 글이 2017년 8월30일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라왔다. 사법의 정치화 논쟁이 일어나고 법원이 발칵 뒤집혔다. 글을 쓴 오현석 판사는 진보 성향 판사 연구단체로 알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 멤버이자 이들이 주축이 된 전국법관대표회의 위원이었다. 그 무렵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은 9월25일 제16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했다. 김 대법원장 역시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취임 3년 반이 지난 지금, 김명수의 선언은 유효한가.

인사가 가장 큰 문제였다. 김 대법원장의 ‘코드 인사’가 사법부를 정치 논쟁의 한가운데로 밀어넣었다. 전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 등에서 요직을 맡았던 상당수 법관이 이른바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이유로 법복을 벗은 반면, 그 진상조사에 참여한 법관 다수는 법원행정처와 서울중앙지법 등 핵심 자리에 배치되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청와대와 여당 국회의원으로 직행했다. 문 대통령이 정치를 하는 가장 큰 이유를 우리 정치의 주류 세력 교체라고 한 것처럼, 김 대법원장도 인사를 통해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의 판사들로 법원 주류 세력을 교체하려 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장 회의가 예정된 3월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장 회의가 예정된 3월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우리법연구회 등의 회원들 약진이 눈부시다. 행정처 기조심의관 이탄희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이수진 판사,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 최기상 판사는 법복을 벗자마자 여당인 민주당에 입당한 뒤,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이자 김명수 대법원장의 배석판사였던 김형연 판사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한 뒤 법제처장으로 영전했다. 과거 보수정권에서 검찰이 출세의 지름길이었다면, 이번 정부 들어서는 사법부 내 특정 모임의 판사가 그 길을 대체하는 모습이다.

올해 법원 인사를 보면 우리법연구회 등이 가히 법원 내 ‘하나회’ 같은 권력형 모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과장이 아니다. 성지용 신임 서울중앙지법원장은 2017년 김 대법원장 지시로 만들어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조사단에 참가했고, 대형 형사사건 배당과 영장전담판사 인선 등을 결정하는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인 고연금 판사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판사 블랙리스트’ 1차 조사에 참여했다. 대한민국 기업의 핵심 사건을 처리하는 송경근 신임 민사1 수석부장판사도 같은 인권법연구회 소속으로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 때 검찰 수사를 주장했었다. 

서울중앙지법의 재판장은 법원에서 3년, 같은 재판부에서 2년간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인권법연구회 출신인 윤종섭 형사36부 부장판사는 6년째 서울중앙지법에 유임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김미리 형사21부 부장판사도 서울중앙지법 같은 재판부에 3년째 유임됐다. 30년 동안 이런 인사는 처음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반면 김 대법원장은 전임 대법원장 시절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을 역임한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재임용 신청을 하지 않은 채 제출한 사직서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수리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였다. 임성근 판사가 탄핵당해 쫓겨날 여지를 마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취임 일성으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선언했지만, 임성근 부장판사가 건강상 문제 등으로 사표 수리를 간곡히 요청했음에도, 김 대법원장은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그중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라며 수리를 거부했다. 이후에는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 “임성근 부장이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으나, 해명은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말은 부도가 난 셈이다.

최근 사법권 남용 첫 유죄 판결문을 통해 인권법학회 진성 회원 73명의 명단이 공개되면서 그중 18명이 법원장, 재판연구관, 심의관 등 요직에 발탁된 사실이 밝혀졌다. 사법부 안팎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이던 인권법 연구 모임이 대법원장의 사조직이라거나 당장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정 단체의 인사 독점 현상에 따른 후유증도 심각하다. 지난 2월 법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낸 판사 수가 80명을 넘었다. 전체 법원장·고법부장 134명 중 20명(14%)이 동시에 사직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재판 지연 등 사법자원 손실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정치색을 띤 특정 파벌 인사들이 요직을 독점하는 사법부는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재판은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한 듯이 보이기도 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기한이 지난 재판부를 유임시키거나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부를 교체하는 것은 사법 독립의 원칙상 있을 수 없다. 판사의 재판 진행과 판결 결과가 법관 인사에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남겼다는 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인사 운영은 문제가 심각하다.

인사 관례를 깨고 서울중앙지법에 4년째 유임된 김미리 부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의 재판장,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주심판사를 맡고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재판은 1년 반가량 공회전하고 있다. 두 건 모두 판결 결과에 따라 현 정권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사건이다. 반면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법정 구속한 1심 재판부는 잔류 신청을 했지만 교체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원칙대로 3년 만에 변경된 반면, 윤종섭 형사36부 부장판사는 6년째 서울중앙지법에 유임되면서, 최근 사법권 남용 사건 중 유일하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가 정치화되면, 법치가 무너지고 법치가 무너지면 공화국이 붕괴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