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중도 잡기야!”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2 12:00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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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출범 이후 쪼그라들었던 중도층, 갈수록 확산…민심 이반, 지난해부터 감지

결국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자리는 모두 국민의힘의 품에 안겼다. 여당의 완패다. 마지막 공표된 선거 여론조사 결과와 거의 다르지 않다. 대통령선거를 11개월 앞두고 펼쳐진 이번 4·7 보선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했다. 결과를 떠나 향후 정국에 미치는 영향이 치명적이라 더더욱 그랬다.

선거 초반부터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는 ‘정권 심판’ 성격이 뚜렷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후반부에 실시되는 선거인 데다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겹쳤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는 ‘LH 사태’ 여파다. 여러 차례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지만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급기야 LH 사태가 터지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말았고,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치는 구도는 ‘정권 심판’에 무게가 실렸다. 이슈는 ‘부동산’이고 후보에 대한 검증은 그다지 결정적인 비중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3월 중순부터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박형준 후보와 관련된 부동산 의혹이 주목을 받았지만 선거 판세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왜냐하면 유권자의 표심을 좌우하는 기준이 이미 구도와 이슈에 집중되고, 후보에 대한 평가는 중도층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보수·진보·중도로 나뉘는데, 이번 선거에 가장 영향을 미친 이념별 유권자층은 중도층이었다.

돌이켜보면 2016년 총선에서 제3정당인 국민의당 약진 이후 중도 세력은 더 이상 정치권 지형의 유의미한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 지방선거부터 보혁 양자 대결 구도는 더욱 뚜렷해졌다. 지난해 4월15일 실시된 총선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정부·여당의 연이은 부동산 정책 실패는 중도층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민생은 외면한 채 ‘윤석열과의 싸움’만 지루하게 이어갔던 게 중도층 민심 이반의 결정적 원인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중도층은 다시 강하게 부활했다.

4·7 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월2일 서울역에 설치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중도층, 지난해 25.4% → 올해 32.9%로 확대 

먼저 중도층 ‘규모’에 변화가 나타났다. 지난 2017년 대통령선거 구도는 외형상 진보(문재인)-보수(홍준표)-중도(안철수) 3자 구도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진보를 견인하고 중도를 흡수한 문재인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전 보수정권의 국정 농단 파장에다 안철수 후보의 어정쩡한 행보가 중도층의 표심을 문 후보 쪽에 확 쏠리도록 만들었다.

문 대통령 집권 이후 진보진영은 더욱 강화되고 중도층이 설 자리는 많지 않았다. 그만큼 중도의 규모가 줄어든 셈이다. 한국갤럽의 정기 지표 조사에 참여하는 응답자들의 이념 성향을 분석해 보았다(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 2018년 지방선거 직전 실시된 1000여 명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스스로 중도층이라고 응답한 숫자는 272명으로 나타났다. 진보는 100여 명이나 더 많은 366명이라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보수층은 이념 성향 분류에서 가장 숫자가 낮은 187명이었다. 채 200명도 되지 않는 낮은 비율이다. 당시는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70% 안팎을 기록하던 때였다. 

비슷한 추세는 지난해 국회의원 총선 때까지 이어진다. 총선 직전인 4월13~14일 실시한 조사에서 ‘정치적 성향이 무엇인지’ 물어본 결과 중도층은 254명으로 지방선거 때보다 더 줄어들었다. 진보층은 333명으로 조금 줄어들었고 보수층은 279명으로 지방선거 때와 비교하면 100여 명 가까이 늘어났다. 2018년 지방선거 때와 비교하면 진보·중도층이 다소 줄었고 그만큼 보수층이 더 늘어났다. 물론 그래도 지난해 총선까지 가장 많은 정치 성향은 진보층이었다.

그러나 이번 4·7 보선을 앞둔 시점에 중도층 비중은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3월30일~4월1일 조사에서 스스로 정치 성향이 중도라고 밝힌 숫자는 329명으로 가장 많았다. 보수층은 지난해 총선 때 조사와 큰 차이가 없었고, 반면 진보층은 약 25%로 그 비중이 더 낮아졌다(그림①). 정치 성향으로 나누어볼 때 중도층이 가장 많아진 셈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부·여당에 조금씩 실망하기 시작한 국민이 자신을 더 이상 진보라고 말하지 않고 중도라고 답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중도층은 이념·정치보다 경제적 이슈 더 관심

두 번째로 중도층의 ‘성격’에 변화가 발생했다. 중도층은 자신들을 대변할 만한 정치 세력이 있다면 선택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진보나 보수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 힘을 실어준다. 2017년 대선에서 중도는 문재인 후보에게 무게를 두었다. 국정농단 청산과 개혁 과제 실천을 잘할 인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 초반 그 기대감은 더 커졌다. 2018년 남북 관계의 급진적 진전으로 중도층은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환호했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까지 중도층은 계속 성원을 보냈다. 그러나 조국 전 장관부터 시작된 검찰 개혁 갈등으로 이탈하기 시작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추·윤 갈등’을 겪으며 중도층 이탈은 더 본격화되었다.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중도층에 이번 4·7 보선 구도에 대해 물어보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결정된 지난해 7월 조사에서 중도층에 보선을 바라보는 성격을 질문한 결과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되어야 한다는 정권 심판 성격이 54%로 나타났다. 올 1월에 실시된 조사에서 중도층의 ‘정권 심판’ 성격은 58%로 더 높아졌다. 보선이 실시되기 직전인 3월23~25일 조사에서 중도층 10명 중 7명 가까운 비율로 정권 심판 성격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림②).

중도층은 이념에만 전적으로 매몰되지 않는 정치 소비자다. 진보나 보수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는 극한 정치적 대립 국면이 불편한 계층이다. 경제적인 이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성과가 나오는 생산적인 이슈에 더 집중한다. 선거란 자기 지지층에 중도층을 보태는 과정이다. 4·7 보궐선거 결과는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과 부산의 문 대통령 긍정 지지율이 여당 후보의 득표율이고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비율이 국민의힘 후보의 득표 결과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중도층 이탈이 가장 큰 이유다. 중도층 유권자를 끌어들이지 못한 여당 후보는 선거 패배를 맛보았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와 비교하더라도 중도층 이탈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미 중도층 이탈이 지난해부터 포착되었지만 여권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각 정치 세력이 되새겨야 할 슬로건은 다시금 분명해졌다. ‘바보야, 문제는 중도 잡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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