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문재인 정부, 디지털 낙관론에 기울어
  • 김윤태 고려대 교수. 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9 17:00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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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프랑스 사회학자 앙드레 고르는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에서 임금노동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았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노동자 계급 숭배 문화를 부정했다. 고르는 실업의 증가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개인의 자유와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그의 주장은 옳지만, 오늘날 그의 견해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직도 대다수는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원하며 실업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간주된다.

임금 노동의 종말은 인공지능 시대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수많은 운전기사가 실업자가 될 수 있다. 반면 구글의 개발자는 억만장자가 된다. 미국 과학자 제리 카플란은 《인간은 필요 없다》라는 책에서 구글의 검색엔진, 아마존의 도서 추천, 페이스북의 얼굴 인식 등 많은 영역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응용되면 상위 1% 사람들만 더 많은 부를 축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경제학자 에릭 브린욜프슨와 앤드루 맥아피도 《제2의 기계시대》에서 2000년 이후 급속하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이 미국의 풍요를 만드는 한편, 대공황 시대와 같은 불평등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에 맞추어 문재인 정부는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고, 최근에는 ‘디지털 그린뉴딜’을 주창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낙관론에 기운 듯하다. 하지만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관론도 상당히 많다. 어떤 분석가는 현재 일자리의 70%가 30년 이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낙관론과 비관론을 성급하게 선택하고 싶지 않지만, 최근 제기된 노동의 대안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는 있다.

첫째, 미국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정보기술 발전으로 기업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제3부문 또는 시민사회의 자원봉사와 같은 새로운 노동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둘째,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리처드 프리먼은 기술의 이익을 공유하는 사회화를 제안했다. 로봇세와 플랫폼세 도입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셋째, 영국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은 급증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프리케리이트’라고 부르며,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에서도 강남훈 한신대 교수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을 제기한 이래 관심이 커졌고 보수 야당도 강령으로 채택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월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제2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2월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제2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나는 시민사회의 자원봉사는 이윤을 만들지 않지만, 임금노동과 다른 ‘시민노동’(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용어)으로서 적극 격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로봇과 플랫폼으로 초과이익을 얻은 기업에 대한 과세도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의 출발점으로 우선 청년수당과 청년자산 제도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보편적 고교 교육, 아동수당, 보육수당에 이어 보편적 노인기초연금을 전면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와 종속 노동자를 위한 보편적 사회보험이 가장 시급하다. 이를 위한 국가의 조세 개혁과 노동 개혁이 중요한 시대적 과제다. 

우리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에게 무조건 좋은 것인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돕고 사업 기회를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한편,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높아질수록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빈부 격차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기술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며, 기술의 진보가 저절로 멋진 테크노 유토피아 또는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인간이 만든 사회 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기술의 진보가 소수 개발자와 투자자의 이윤이 아니라 사회 모든 사람의 혜택에 기여하도록 사회 제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인간이 기술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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