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인터뷰] “中 압박하면 北이 핵 포기? 거대한 착각”
  • 김종일·구민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6 13:00
  • 호수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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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北 도발은 빨리 협상하자는 메시지”
“‘굿 이너프 딜’로 북핵 문제 하나씩 풀어야”

익숙한 패턴이 있다. 북한의 도발이 시작된다. 제재와 외교적 해법이란 서로 다른 문제풀이가 제시된다. 한반도를 넘어 미국과 중국에서도 갑론을박이 시작된다. 미·중의 서로 다른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는 양자택일을 요구받는다.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의 훈수까지 더해진다. 고차원 연립방정식이다. 아주 가끔 고차원 연립방정식을 뚫고 평화의 목전까지 협상이 진행되나 싶다가도 일은 자주 틀어진다. 

다시 북한의 도발이 시작됐다. 미국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외교라인을 새롭게 짰다. 대화의 시작일까, 갈등의 서막일까.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드러난 현상의 뒤꽁무니만 쫓다 보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상황을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 베테랑 전문가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래서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찾았다. 민주평통은 평화·통일정책의 수립 및 추진에 관한 대통령 자문·건의 기능을 수행하는 헌법기관이다. 

정 수석부의장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서생적 문제의식’을 원칙과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상인적 현실감각’을 타협을 해서라도 일을 되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 그는 김영삼 정부에서 3년6개월 넘게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을 맡았다. 김대중 정부 초 통일부 차관을 거쳐 2002년 1월부터 2004년 6월까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연달아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러면서 남북 장관급 회담 수석대표로 활동했고, 개성공단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4월2일 10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서생적 문제의식(철학)’과 ‘상인적 현실감각(전략)’을 시원시원하게 풀어냈다. 북핵 문제 해결에서 미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힘의 논리’를 분명하게 인정하면서도,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 식으론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미국에 우리가 주지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거듭된 북한의 도발은 “미국의 외교 우선순위에 북핵 문제를 1순위로 올려 대화를 하자는 메시지”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방법론도 제시했다. 단계별 협상으로 작은 것부터 하나씩 주고받으며 상황을 진전시켜 나가는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 방식이다. 바로 ①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②유엔 안보리 제재 일부 완화 ③북한의 추가적인 핵시설 폐기 ④미국의 대북 단독 제재 완화 등의 방법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북한이 수위를 높여가며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속내가 뭘까. 

“북핵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 빨리 대화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가 담긴 북한의 돌려차기다.” 

‘돌려차기’를 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북한의 도발에는 ‘대북 문제를 미국 외교의 최우선 순위로 올려라’라는 속내가 담겨 있다. 북핵 문제 협상을 시작하면 대북 제재가 일부 완화될 수 있고, 지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도발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빨리 협상을 시작할 수밖에 없도록 자극을 좀 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한국 정부를 향해서도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입장에선 기분 나쁜 일임에 틀림없지만, ‘한국 정부가 빨리 미국을 협상 테이블에 앉혀 달라’는 북한의 속내를 읽어야 한다. 최근 한·미·일이 안보실장 회의 등을 개최하며 대북 문제에 대한 원칙을 만들어가는 것은 좋지만, 북한의 행동은 협상 속도를 높이자는 메시지라고 봐야 한다.”

북한이 협상에 진정성과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나. 

“대북 문제에서 제일 중요한 점이 지피지기(知彼知己)다.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상대방의 의도와 능력을 먼저 제대로 파악한 후 이를 자신의 능력과 견주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북한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가’를 파악하려면 지금 북한이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메시지에서 읽어내야 할 키워드는 바로 ‘경제’다. 연초부터 김 위원장이 발신하고 있는 메시지의 상당수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짜증이 날 대로 난 상태로 보인다. 그러니 그에게도 북핵 협상은 중요하다. 협상에 시동이 걸려야 제재가 일부 완화되고 숨통이 트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면 미국이 약점을 잡고 제재 수위를 더 조일 수 있으니 오히려 더 강하게 나오는 거다. ‘우리 죽겠다’ ‘좀 도와 달라’고 하면 미국이 찍어 누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니 ‘더 큰 사고를 칠 수 있다’는 식으로 겁을 주는 것이다. 이게 바로 북한의 돌려차기식 메시지다.”

바이든 행정부에 대북 협상 의지는 어느 정도나 있을까.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톱다운’ 방식으로 ‘빅딜 협상’을 하진 않을 것이다. 일단 우리와 일본 등 주요 동맹과 협의해 북핵 문제를 푼다는 대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개최된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가 시작이다. 우리도 발언권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일본의 목소리도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우리가 북한과 미국이 협상 테이블을 차릴 수 있게 다리를 놔야 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이번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국이 동맹국인 한·일 안보 책임자들과 일대일 자격으로 대북 협상의 원칙을 조율해 대북 정책을 정하겠다는 대원칙이 정해졌다는 게 표면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도 든다. 첫 번째 이유는 한반도가 아닌 미국으로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여기엔 우리 의견을 듣기보다는 미국 입장은 이러저러 하니까 여기에 맞춰 협조하라는 인식이 깔려 있을 수 있다. 이번 한·미 외교·국방장관이 2+2 회의를 마치고 내놓은 공동성명에 포함된 ‘완전한 조율(fully coordinated)’이란 표현에도 이런 맥락이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완전한 조율’이란 표현은 말은 좋지만, 결국엔 미국이 ‘오케이’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오히려 우리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우리가 정말 전략적으로 잘 움직여야 할 때다.”

일본의 참여는 왜 부정적으로 보나.

“그게 불길한 예감의 두 번째 요인이다. 한국은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길 절실히 바라는데, 일본은 그게 싫은 나라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활용하려 한다. 일본은 이를 레버리지 삼아 아시아의 군사대국이 되고자 한다. 미·일은 중국 견제라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다.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가려면 북한이 계속해서 사고를 쳐줘야 한다. 그렇기에 일본은 북한을 계속 자극하려 한다. 이 점은 불안요소다. 이번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가 마지막 회의가 아니라 향후 한·미·일이 긴밀히 공조하는 입구 역할을 하는 회담이 될 수 있게 우리가 더 역할을 해야 한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연달아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며 개성공단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연합뉴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연달아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며 개성공단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연합뉴스

우리가 북·미 협상의 다리를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정부가 집중해야 할 점 중 하나가 바로 미국에 널리 퍼진 북핵 문제 해결 방식인 ‘중국 활용론’이란 신화를 깨는 것이다. 미국에는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를 중국이 쥐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즉 북한의 혈맹이자 절대적 우군인 중국을 끌어들여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나올 것이라는 방법론이다.”

실제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

“북한이 중국의 설득과 압박에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북핵 문제 방법론은 ‘판타지’다. 거대한 착각이다. 이런 구상은 오래됐는데, 한국과 미국적 관점에서 비롯된 오해다. 실제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가 좌우한다. 그러니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본다. 미국은 이런 식으로 북한도 중국의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할 것이라고 본다. 이 관점에선 북핵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고 꼬이는 이유의 핵심이 중국이다. 중국이 제 역할을 안 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활용하겠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구사하려고 한다.”

일반적 상식에 반하는 주장이다.

“북핵 문제를 푸는 첫 번째 단추가 여기에 있다. 이런 논리가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에서 생산돼 거꾸로 국내는 물론 일본 등 주변국에 전파된다. 우리 정부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알리고 공론화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는 것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알게 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 논리를 얼마나 빠르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대북 협상의 진척 속도가 결정될 수 있다.”

북한 정보에서는 양과 질 모두 미국이 최고라는 인식이 많다. 

“과거에는 분명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 싱크탱크에서 생산하는 대북 관련 보고서와 정보들이 전부 ‘팩트(fact)’라는 믿음은 위험하다. 북한 관련 정보는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맥락과 해석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들을 보면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군산복합체 자금이 상당히 지원되는 싱크탱크에서 나온 정보는 과연 100% 믿을 만할까? 우리 국민들이 이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에서 수입된 ‘북한은 절대악’ ‘곧 전쟁을 벌일 미치광이 국가’ 등의 논리에 우리 국민 일부가 동의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당히 의도적으로 편집된 정보일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그런 논리를 생산하는 집단의 뿌리는 어디이며, 자금 출처는 어디인지 등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

“미국 의회에서 열리는 ‘대북전단금지법(전단법)’ 관련 청문회가 바로 그렇다. 전단법에 반발하는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현실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반대하는 미국인들이 우리 쪽 접경지역에 수도권 인구의 11%, 남한 인구의 5.5%나 되는 286만 명이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대북전단이 뿌려지는 비무장지대(DMZ) 북측 지역에는 북한 인구가 많이 살지 않는다. 반면 대북전단이 살포되는 우리 지역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산다. 북한이 이에 반발해 포탄을 쏘아올리면 정말 많은 인명 피해가 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만 외치는 사람들은 분단된 한반도의 특수한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이처럼 한가한 이야기를 하는 거다.”

북핵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풀 수 있을까. 

“우리는 북·미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다리를 놔야 한다. 속상한 말이지만 문제를 풀 수 있는 결정권이 우리에겐 없다. 북한이 원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미국과의 수교, 비핵화 결정 등을 풀 수 있는 주체는 미국이다. 북한이 지금 미국에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은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이다. 미국도 충분히 협상에 임할 수 있으면서 북한이 못 이기는 척 협상장에 나올 수 있는 판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하노이 회담도 결렬됐다. 정말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하노이 회담이 깨진 이유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폭로·비리 뉴스가 쏟아져 엄청나게 수세에 몰려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걸 한 방에 뒤집고 싶어 했다. 그래서 판을 깬 거다. 더 큰 뉴스로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싶어 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굿 이너프 딜’로 시작하면 된다. 미국이 이 방법론에 동의해 협상 테이블에 앉게 우리가 설득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굿 이너프 딜은 단계별 협상을 전제로 한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주고받으며 상황을 진전시켜 나가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왕창 큰 걸로 한 번에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조금씩 하나씩 적당한 결과물을 내면서 성과를 주고받는 게 굿 이너프 딜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면 유엔 안보리 제재를 일부 완화해 준다. 이후 북한이 사찰에 동의하고 추가적인 핵시설을 폐기하면 미국의 단독 대북 제재도 완화한다. 이런 식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 때도 우리가 이렇게 몰아가려고 했던 거다. 이 설명논리에 따르면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북한이 도발을 하는 것은 빨리 회담을 하자는 뜻이다.”

미국이 동의할까.

“결국 북핵 문제 해결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의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맞바꾸는 거다. 이 방식 아니면 어렵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의 역할은 적고, 미국이 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종전선언에 합의하고 불가침만 보장받으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무턱대고 핵을 내려놓기는 어렵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공포, 즉 ‘카다피 트라우마’가 있다. 그러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 간 상호 불가침 조약이 핵심이다. 이걸 국제적으로 보장하는 방식의 평화협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개념 정리할 필요가 있다.”   

 

■ 정세현은 누구인가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대북 전략과 협상, 정책을 망라한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다. 1945년 중국 헤이룽장성(북만주)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귀국해 전북 임실 오수에서 성장했다. 전주북중,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통일비서관과 민족통일연구원장으로 일했다. 그는 통일부 직원 출신의 첫 통일부 장관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했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석좌교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원광대 총장을 거쳐 2019년 9월부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판문점의 협상가: 정세현 회고록》, 《담대한 여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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