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바이든 행정부, 中과 ‘힘에 입각한 평화’ 유지하나
  • 김흥규 아주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0 10:00
  • 호수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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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협력관계 재설정한 미·중, 좁아지는 한국 입지

중국의 공식적 입장은 미국과 달리 세계 패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주장을 그대로 수긍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은 아직 세계가 인정할 비전이나 행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중국은 적어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발전도상국이란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함부로 국제무대에 나서지 말고 힘을 감추면서 자신의 역량을 함양하라는 덩샤오핑의 유지가 중국 외교정책에도 적용됐다. 외교는 중국 경제 발전의 대목표에 종속되는 범주에 속해 있었다.

시진핑 체제가 들어서면서 미·중 전략경쟁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우선 시진핑 주석은 그간 중국의 부상을 반영하면서 공세적으로 미국을 자극하고 국제질서 변화를 추동했다. ‘일대일로’ 정책은 중국 최초로 세계를 대상으로 한 중국식 대전략 추진이라 할 수 있다.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중국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무역분쟁에서 신냉전이라 할 수 있는 양상까지 보이며 중국과의 갈등 전선을 확대했다. 대만 문제,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 이념과 체제 경쟁 등 미·중 간 전략적 협력관계의 기초라고 할 수 있던 묵계들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러시아와 북한을 끌어들여 지정학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구도를 만들려는 시도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 확산과 트럼프의 재선 실패를 거치며 미국은 궁지에 빠졌고 미·중 관계는 더욱 악화했다. 반면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중 공세를 이겨낸 중국의 대미 자신감은 크게 높아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은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미·중 관계의 세 번째 변화를 이끌고 있다. 바이든의 외교안보팀은 실용적이면서도 효과성을 중시하는 대중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우선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거나 미·중 간 갈등과 충돌을 심화할 수 있는 정책보다는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며 관리하려 하고 있다. 중국과 충돌하는 영역, 경쟁하며 관리해야 할 영역, 협력해야 할 영역으로 세분해 대중국 정책을 재정립하려는 것이다. 물론 중국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점에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했던 경제번영네트워크(EPN)나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와 같은 대중 견제 정책들의 취지는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다.

3월18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캡틴 쿡 호텔에서 미·중 양국이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사진 오른쪽 두 번째)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왼쪽 사진 왼쪽 두 번째) 간 싸늘한 설전이 오갔다.ⓒAP 연합
3월18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캡틴 쿡 호텔에서 미·중 양국이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사진 오른쪽 두 번째)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왼쪽 사진 왼쪽 두 번째) 간 싸늘한 설전이 오갔다.ⓒAP 연합

냉전시대의 잔재 ‘가치외교’ 부활 가능성

두 번째로, 미국은 자체적인 역량과 영향력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기보단 우방국들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3월 백악관에서 발간한 ‘국가안전전략 임시지침’에 따르면, 미국은 다시 과거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패권 시절을 복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동맹을 다시 결집해 중국을 비롯한 러시아·북한 등과 맞서려 한다. ‘가치를 중심으로 한 외교’는 냉전시대의 잔재를 환기시킬 수 있어 한동안 조심스럽게 통용됐지만 이젠 공공연하게 회자된다. 가치외교는 국제정치에서 미국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더라도 쉽사리 동맹과 우방을 결집하고, 우·적 관계를 가릴 수 있는 ‘스마트’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세 번째는 미·중 전략경쟁의 핵심이 과학기술 경쟁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다.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에서 ‘기술동맹’ 추진은 가장 핵심적인 외교안보 정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대중 4개국 연대인 쿼드(Quad)가 외교안보적 영역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바이든 대중 정책의 핵심은 어떻게 대중 기술동맹을 형성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은 향후 과학·기술 혁명을 선도하고 새로운 표준을 수립하는 국가가 결국 세계를 리드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중국과의 기술경쟁에도 미국은 ‘기술 권위주의 체제’와 ‘기술 민주주의 체제’의 대결로 이념과 가치의 외투를 씌우고 있다. ‘기술 신냉전 시대’라 할 만하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의 실탄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분야는 미·중 전략경쟁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미국은 과거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생산을 포기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텔의 재진출을 선언하기도 했다. 5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정부의 자국 반도체 산업 지원도 추가됐다. 향후 파운드리 시장은 TSMC·삼성·인텔 3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인텔을 중심으로 동맹체제 형성의 구심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뉴딜 정책 이래 최대 규모인 2조2500억 달러(약 2542조5000억원)를 국내 인프라 투자사업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美, 강경한 대중 정책 펼치기엔 여력 부족

네 번째로 미국은 ‘힘에 입각한 평화’ 정책을 지속 추진할 전망이다. 중국은 이미 효과적인 A2AD(반접근·거부전략) 능력을 보유했다. 이는 유사시 서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접근에 막대한 장애를 안겨줄 수 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사일 방어체계의 획기적 개선과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아태 지역 배치,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성과를 활용한 군사혁신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미 하원 군사청문회에서 밝힌 바처럼, 한국 배치 사드 체계의 질 개선 사업은 이미 시작됐다. 이는 중국이 극렬히 반대한 3NOs(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든 시대 미·중 관계가 어떠한 양태를 띠게 될지 아직 충분히 예측하긴 어렵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저지선(Bottom Line)이 어디인지 떠보고 있다. 핵심이익에 대한 타협 불가 방침도 분명히 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경쟁하고 타협할 수 있는 회색지대를 확대하고 미국과 그 동맹들을 계속 시험대에 올릴 것이다. 중국 측 자료에 의하면, 미·중은 이번 미국 알래스카 회담에서 공개적인 설전을 보였지만, 비공개회의에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상호 공유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과 극단적인 충돌을 할 의사가 없음을 중국 측에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국력과 리더십은 예전 같지 않고, 이를 회복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미국도 알고 있다. 더구나 미국 국내정치는 내전 양상이라 할 정도로 분열돼 있다. 2022년 중간선거도 신경 써야 한다. 대외정책에서 중국에 대한 대응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대외정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정도로 국내정치 공간은 여유롭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대중 정책의 실제적인 변화는 불가피하다.

한반도 역사에서 주변 강대국이 부상할 때마다 한국은 막대한 고통을 겪어왔다. 위정자들과 주축 세력들은 기존 강대국 관계에서 자신의 이해를 동일시하며 국제정치를 정치화했다. 객관성은 사라지고 경로 의존성만 강화됐다. 한국의 이해를 놓고 볼 때, 중국에의 편승은 당장 고려하기 어려운 최후의 선택지다. 그러나 한·미 동맹만을 고집스럽게 외치는 것도 궁극적인 답은 아니다. 고수들이 즐비한 강대국들의 전략경쟁 세계에서 한국의 입지와 선택은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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