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영국 “민주당은 우리가 손잡고 갈 개혁정당 아냐”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9 07:30
  • 호수 16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여영국 정의당 대표
“사회주의라 비판 받더라도 할 건 해야”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연대 없다”

진보정당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을까. 진보정치의 상징이던 고(故) 노회찬 의원은 하방(下方)연대, 즉 낮은 곳과의 연대에서 그 답을 찾았다. 좌와 우의 정치 논리가 아니라 상하로 놓인 삶을 살피고 가장 바닥으로 향하는 것, 여기에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진보 원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역시 진보정당의 무대는 투쟁의 현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단단한 바위가 아닌, 그에 맞서 깨지는 달걀 편에 섰을 때 비로소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가 생긴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정의당은 위태롭다. 대중은 정의당을 기득권의 대항마가 아닌 또 다른 기득권으로 인식한다. 정의당을 줄곧 괴롭힌 ‘민주당 2중대’란 호칭은 이를 가장 잘 상징한다. 전신인 민주노동당 시절 ‘무상교육·무상급식·무상의료’처럼 색이 선명한 진보 의제를 선도하던 모습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단 6석이라는 지난해 총선 성적은 이런 정의당을 향한 깊은 실망의 증거였다. 이후 당은 계속 쇄신을 꾀했지만, 당내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크게 힘을 받지 못했다. 한때 10%대 중반까지 치솟았던 당 지지율은 이젠 한 자릿수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중에게 진보정당의 존재가 더는 절실하지 않은 것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조국 사태 잘못된 포지셔닝, 당 근본 무너져”

3월24일, 가라앉던 배의 새 선장이 된 여영국(56) 정의당 신임 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곧장 전국 순회를 시작했다. 순회버스엔 ‘투기공화국 해체’ 문구를 크게 써붙였다. LH 사태로 촉발한 부동산 투기 문제를 뿌리 뽑는 일부터 시작해, 기득권 거대 양당과 확실히 선을 긋겠다는 의지다. 김용균재단·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도 찾았다. 다시 어렵고 낮은 곳, 배제된 삶들과 연대하는 것이 당의 유일한 살길이란 판단에서다.

시사저널은 4월13일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여 대표를 만나, 당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방향키를 조정할지 물었다. 여 대표는 용접공 출신의 노동자 정치인이다. 1965년 경남 사천 출생으로 부산기계공고와 창원대를 졸업했다. 1983년 통일중공업에 입사해 전국금속노동조합 조직국장을 역임하는 등 30여 년간 노동 운동에 몸담았다. 2019년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사망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진 경남 창원성산구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1대 총선에서 재선을 노렸지만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낙선했다.

지금 정의당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나.

“그동안 국민 속 진보정당은 그래도 답답한 마음을 헤아려주고 쓴소리도 대신 해 주는 ‘소금’ 같은 역할이었다. 그게 무너졌다. 존재의 가장 근본이 흔들렸던 것이다. 그게 바로 신뢰의 위기로 이어졌다.”

존재의 근본이라면.

“우리 사회에 진보정당 하나쯤은 있어야 노동자나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대변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다. 그게 흔들렸다. 특히 2019년 조국 사태 때 보여준 정의당의 모습이 결정적이었다.”

조국 사태 당시 당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나.

“그렇다. 당시 정의당은 잘못된 포지셔닝을 취했다. 정의당 지지층은 다양하다. 조금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도 ‘그래도 정의당은 존재해야 한다’며 비례대표 표는 정의당에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국 사태로) 이들이 모두 등을 돌리게 됐다.”

그때 기득권을 옹호했다는 점에서 ‘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당시 정치 개혁과 검찰 개혁이 시대적 과제이자 우리 당 주요 과제이기도 했다. 사실 우린 정치 개혁에 중점을 더 두고 있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힘을 합쳐야 했다. 그러나 조국의 불공정 행위보다 검찰 개혁 대의를 앞세웠던 건 큰 패착이다.”

정의당이 ‘현장’과 멀어졌다는 평가는 여 대표로선 가장 뼈아픈 지적이다. 바깥에서의 투쟁보다 국회 울타리 안 입법 투쟁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그는 공감한다. “노동을 대변하고 여성과 청년을 대변하겠다고 하는데, 정작 노동자와 여성과 청년들은 우릴 믿고 지지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전부 우리 당에 있다.” 여 대표는 당의 노선부터 다시 제대로 잡겠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이 대변하는 노동도 기득권화됐다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새로운 플랫폼 노동자 등 특수고용자들을 위한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공감한다. 그동안 노동을 대변한다고 했지만, 노동 전략이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노동문제가 생기면 연대하고 힘을 보태는 수준에 머물렀지, 한국 사회 노동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의제를 만들지 못했다. 취임 후 김용균재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차례로 방문했고 (배달노동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도 만날 예정이다. 정의당이 가장 중심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의 순서대로 찾아가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우리 당이 대중 속에 발을 들이기 쉽지 않다.”

당의 구성원이 다양해졌다. 반가운 일이지만 일각에선 ‘노동자 정당’ ‘페미니스트 정당’ 등 정의당의 좌표를 두고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당의 진단과 바로 관계되는 질문이다. 우선 우리 사회 노동의 형태가 변했다. 일반 국민은 이제 우리 당을 민주노총과 대기업을 옹호하는 정당으로 본다. 바깥의 노동을 대변하겠다고 했지만, 그걸 중심으로 정치적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냥 띄엄띄엄 현안에 대응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니 당연히 정치화가 잘 안됐다. 그 사이 상대적으로 휘발성이 높은 젠더 문제가 정의당 이름과 함께 더 많이 언급되고 보도됐다. 이 점에서 정의당이 도대체 무엇을 지향하는 당인지 의구심을 가지게 됐던 것 같다.”

2010년 이후 진보정당이 선제적으로 띄운 의제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정의당이 어떤 차별화된 의제를 다시 내세울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 당시 ‘무상 시리즈’를 비롯해 진보정당은 여러 의제를 앞장서 제시해 왔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것들은 상식이 됐다. 하지만 그 후 상당 기간 당은 진보·보수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민주당 왼쪽에 서서 개혁을 선도하려 했지만, 선거 때만 되면 연대를 강요받았다. 그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신뢰를 잃었다. 민주당은 이제 우리가 손잡고 갈 개혁 정당이 아니다. 지난해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들어 양당 기득권 체제를 견고히 했고,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과 함께 개발 경쟁, 토건 경쟁을 벌였다. 기득권 이익동맹을 확실히 구축한 것이다. 그 기득권 바깥에서 고통받는 다수와 손잡고 갈 것이다. 반(反)기득권 정치동맹을 형성하고, 진보냐 보수냐가 아닌 삶의 문제에 깃발을 꽂고 당을 이끌 계획이다.”

내년에 있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의 연대는 없는 것인지 물었다. 여 대표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없다”고 단언했다. 1시간여의 인터뷰 중 가장 힘주어 답한 대목이었다. 지난해 총선부터 올해 초 중대기업재해처벌법 처리 과정 전반을 거치며 민주당에 느낀 실망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기득권과의 대결, 그 첫걸음이 부동산 투기공화국 해체인 건가.

“땅으로 부를 축적하고 세습하는 행위를 전부 없애야 한다. 이는 한국 경제 구도를 왜곡했고 하루하루 벌어 사는 사람들에게 절망을 줬다. 대기업들부터 기술 투자보다 땅에 투자해 더 이익을 챙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연설회를 하는데, 한 시민이 ‘투기와 투자는 구분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문제 제기를 해 왔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땅은 돈벌이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철저히 공적으로 분류돼야 하며, 사적으로 활용할 경우 사용료를 충분히 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거대 정당들이 말하는 이해충돌방지법 수준을 넘어 ‘토지공개념’이 분명히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두 축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다. 토지공개념은 너무 왼쪽으로만 치우친 게 아니냐는 불만도 있다.

“사회주의라는 소리를 들어도 그 정책은 해야 한다. 그걸 두려워해선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도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불로소득도 가장 높다. 이는 자산 불평등의 핵심이다. 부동산 문제를 바로잡지 않고는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나라 국·공유지가 전체 30%도 안 된다. 캐나다는 88%이며, 기득권을 신봉하는 미국도 50%에 이른다. 토지공개념을 바로 세워 우리도 30년 안에 최소 60%를 국·공유지로 만들어야 한다.”

ⓒ시사저널 이종현
4월19일 국회의사당 앞 계단에서 정의당 여영국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당직자들이 코로나 손실보상법 소급 적용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국가 일자리보장제, 내년 대선 당 핵심 공약”

이 모든 청사진을 실현할 전제조건은 당내 공감대 형성과 여론의 발화다. 그런데 모두가 쉽지 않다. 정의당 구성원들의 색채는 다양해졌고, 국회에서 당은 힘이 없다. 민심 또한 아직 차갑다. 바닥을 향한다고 바닥의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여 대표는 당 정책위의장으로 장혜영 의원을 임명했다. “정체성이 강한 의원들이 당의 과제에 전면적이고 적극적으로 결합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바닥 민심을 가져올 방안으로는 정도(正道)를 택했다. 이들의 삶을 바꿀 비전을 제시하는 것. 그는 “빈손이 아닌, 제대로 된 답을 갖고 다시 밑바닥에서 마이크를 잡겠다”고 강조했다.

대중의 삶을 바꾸기 위한 비전과 의제가 있나.

“내년 대선 때 핵심 공약으로 ‘국가 일자리 보장제’를 내세우려 한다. 사람이 사는 데 가장 기본이 노동이다. 실업 상태가 얼마나 잔인한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실업률이 3%면 양호한 거라고? 이런 개념 자체를 버려야 한다. 단 한 명의 국민도 실업 상태로 둬선 안 된다. 국가가 직고용하는 형태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제공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국가는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까. 여 대표는 “사회가 불안해지고 고령층이 많아지면서, 돌봄 노동의 필요성이 커지고 안전 영역에서의 감시 역할이 중요해졌다. 국가나 지자체가 책임지고 이와 관련한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 생명감시단, 안전 지킴이 일자리를 국가가 국민에 바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첨언했다.

내년 대선에서 최대 화두가 될 기본소득보다 일자리를 더 앞세울 예정인가.

“이게 핵심적인 기본소득이라 생각한다. 실현만 되면, 현재 지급되는 실업수당이나 노년층에게 지원되는 기존 복지 재원도 상당 부분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대표 임기가 끝나고 어떤 평가를 받고 싶나.

“당이 확실하게 독자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놓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지지층을 새로 형성하고 새판을 짜야 한다. 페이퍼 정치가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쳐 동의를 얻어내는 정치로의 노선 전환을 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여영국 지도부가 그래도 한국 사회 기득권-반기득권 경쟁에 주춧돌 하나는 놨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