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오르는데 ‘미래 가치’ 광산을 헐값에 판다고?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8 08:00
  • 호수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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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보다 전기전도율 높은 구리 재조명…정부는 칠레·파나마 광산 속속 매각

인류 문명의 발전은 소재의 발전이었다. 돌을 이용한 석기시대에서 구리를 이용한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금속에 눈을 뜬 인류는 다양한 금속을 추출해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인류는 철을 이용하면서 오늘날의 문명을 건설했다. 석탄을 이용한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발전한 제철업은 대량의 철강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철강은 조선·자동차·건축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핵심적인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구리는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가공할 수 있어 일찍부터 활용됐지만 매장량이 제한돼 있으며, 강도 등에서도 철에 비해 뒤처지기 때문에 핵심적인 소재 자리를 철에게 내줬다. 그렇지만 구리는 다양한 용도로 산업에 사용돼 왔으며, 경기의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어 세계경제 흐름을 예측하는 주요 지표로 구리 가격 변동이 활용되고 있다.

중국 장쑤성 난창시에 위치한 한 구리 파이프 생산공장ⓒAP 연합

철에 내준 왕좌 되찾아가는 구리

이런 구리가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골드먼삭스가 향후 12개월 동안 구리 가격이 현재에 비해 24% 상승할 것이며, 2025년까지 70%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는 사실이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구리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 변동은 일상적인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기 회복 흐름에 따라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골드먼삭스의 예측은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구리 가격 상승은 일반적인 경기 변동에 따른 수요-공급에 의한 가격 변동을 넘어 최소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구리 수요 확대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최근의 구리 수요 확대는 좀 더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노력의 핵심에는 탈(脫)탄소와 전기화라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존재한다. 기후변화 원인으로 꼽히는 탄소 배출량을 낮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석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전력 생산에서 석탄 소비 감소와 더불어 태양광·풍력 등 재생 에너지 활용이 증가하고 있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재생 에너지 생산 가격은 화석 에너지와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전력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좀 더 깨끗하고 안전하며 편리한 전기는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사용 범위와 양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운송 부문에서는 전기자동차 보급에 따라 향후 전력 소비량이 급속도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가장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구리다. 구리는 전기전도성이 좋고 반응성이 낮기 때문에 전기를 이용하는 곳에서는 빠지지 않는 핵심 소재다. 반도체처럼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것부터 초고압송전 및 해저송전 등 대량의 전력을 이동시키는 데까지 구리는 필수적이다. 재생 에너지 보급은 단순히 전력 생산방식 변화뿐 아니라 송·배전망의 대폭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자연적 조건에 크게 의존하는 재생 에너지 특성상 수요처와 떨어진 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송전선로 건설이 필요하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송전망은 오래전에 구축돼 이 같은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더 큰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개도국의 전기 보급 확대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전력망 개편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골드먼삭스는 2030년까지 구리 수요가 현재에 비해 600%에서 최대 90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골드먼삭스, 2030년 수요 900% 증가 예상

구리 공급은 다른 자원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국가에 집중돼 있다. 칠레를 비롯해 멕시코·페루·미국·콩고민주공화국 등이 주요 구리 수출국이다. 수요 확대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이들 국가는 구리 생산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광산 개발에 따른 환경 피해 및 지역주민의 반발 등으로 급속한 생산량 확충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기조가 각광받고 있다. 환경 피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광업에 대한 투자가 정체상태여서 수요를 충족시키는 공급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구리는 해외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다. 칠레를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서 수입된 원광을 제련해 제품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안정적인 공급선 확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과거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는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해외 광물자원 확보에 공을 들였다. 자원외교로 알려진 이 과정에서 니켈·코발트 등의 광산을 확보했다. 구리도 칠레 산토도밍고, 파나마 코브레 등의 광산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칠레 산토도밍고 광산을 매각했으며, 파나마 코브레 광산 역시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구리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만큼 비싼 가격에 매각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다. 산토도밍고 광산의 경우 약 2억4000만 달러(약 2681억원)를 투입했지만 1억5000만 달러(약 1675억원)에 매각됐다. 파나마 코브레 광산 역시 지나치게 낮은 매수 희망가격으로 인해 유찰된 상태다. 2018년 3월 자원 공기업이 보유한 해외 자산 전부를 매각하도록 한 방침이 알려지면서 매수자들이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을 때 뒤늦게 고가에 매입하고, 정작 해당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시점에 헐값에 매각함으로써 이중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구리는 단순한 원자재를 넘어 미래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핵심 소재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확보 어려움이 예상되면 조달청 등을 통한 비축 확대를 통해 대처해 오고 있다. 그렇지만 비축사업은 단기적 상황에서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는 명확하다. 결국 전력자원에 대해서는 단기적인 가격 흐름 변동에 따른 수익과 손실을 따지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핵심 산업 역량의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고 적정 수준의 공급원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해 산업 및 경제의 대폭적인 체질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이에 필요한 핵심 소재의 안정적 확보에 대한 고려는 부족한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주요국의 대규모 통화 확대와 초대형 재정투입 사업이 이어지면서 세계 경기는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자재 가격 역시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해외 자원자산의 무조건 매각이라는 과거의 정책적 결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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