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망해도 재단은 망하지 않는다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5 13:00
  • 호수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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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세인고·삼일여고 파행…근절되지 않는 사학 비리에 울산시교육청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울산 세인고등학교가 결국 문을 닫는다. 울산시교육청은 ‘사학 비리 온상’으로 낙인찍혀 더 이상 신입생을 모집할 수 없게 된 세인고를 내년 2월 폐교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이미지 개선을 위해 교명도 바꾸고 학교 이전을 시도했지만, 가는 곳마다 손사래를 쳤다. 셋방까지 얻어 학교를 옮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학부모와 신입생들은 비리로 얼룩진 세인고를 철저히 외면했다. 

세인고의 추락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아무개씨는 1988년 울산 울주군 청량면에 사립 일반고인 홍명고등학교를 설립해 이사장을 맡았다. 2000년 초까지만 해도 38학급에 전교생 1600여 명으로 울산에서 가장 큰 고등학교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홍명고 학교법인 태화학원 이사회는 2015년 6월 이 이사장을 해임했다. 이사회는 “이사장이 불법 학사 개입·부당지시·도덕성 논란 등을 일으켜 더는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해임했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류아무개씨를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하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2016년 교명도 세인고로, 법인명도 울산학원으로 바꿨다. 이사회 관계자는 "안 좋은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로 총동창회·이사회·교원·학생·학부모 등이 함께 결정했다"고 말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는 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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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웅촌면에 위치한 세인고는 울산시교육청이 내년 2월 폐교하기로 결정했다.ⓒ박치현 제공

재단 이사장 측 “상황 복잡해…”, 답변 회피 

최근 울산경찰청에 현 이사장과 행정실장의 비리 고소장이 접수됐다. 류 이사장과 행정실장 김아무개씨가 공모해 교육청 정관 등을 어기고 최아무개씨를 행정직 직원으로 특별 채용했다는 것이다. 돈이 오갔을 개연성도 제기됐다. ‘사립학교 사무직원 인사운영 지침’은 채용 사유가 발생하면 1개월 전에 교육청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인고는 이 규정을 무시했다.

또 김 실장이 서울 선진지 견학 출장을 간 것처럼 서류를 꾸며 법인 돈을 횡령했고, 교육청 감사에서 김 실장의 각종 비리(주의 9회, 경고 5회)가 적발됐는데도 5급으로 특별 승진한 배경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한 전 이사회 관계자는 경찰에 이를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교감을 포함한 교사 12명이 초과근무를 하지 않고 수시로 수당을 챙긴 정황이 교내 CCTV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이 당시 학교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환수 조치’ 선에서 사건을 무마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고소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이사장과 김 실장은 기자에게 “상황이 복잡해 설명하기 어렵다. 다음에 통화하자”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세인고의 ‘수상한 학교 운영’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재단 측은 2018년 1월 이사회를 열어 산업단지 개발업체에 학교법인 울산학원 기본재산(교육용 및 수익용)을 팔기로 의결하고 ‘사전매매협약’을 체결했다. 재단 관계자는 “학교 인근에 공단이 있고 건물이 낡아 이전이 불가피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매매가는 150억∼160억원으로 알려졌다. 울산의 다른 한 사학재단 이사장은 “학교 재산을 매각하려면 교육청과 협의해야 한다. 세인고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협약’이란 꼼수를 들고나온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학교 재산은 팔려도 돈이 재단에 묶여 이사장이 가져갈 수 없다. 하지만 사학재단 관계자들은 ‘구멍’은 있다고 말한다. ‘이중계약’으로 차액을 이사장이 챙기는 건 관행이며 불문율이라고 귀뜸했다. 세인고는 학교가 팔릴 것에 대비해 2013년부터 이전 부지를 찾고 있었다. 울주군 천상 지역으로 이전을 추진했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그리고 2018년에는 북구 송정지구로 위치변경계획 승인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역시 무산됐다. 사학 비리 학교로 낙인찍힌 세인고가 자신들의 동네로 오는 것을 결사 반대했기 때문이다.  

재단 측은 2018년 8월 서휘수 교장을 직위해제했다. 학교 공립화를 주장하며 재단과 마찰을 빚었다는 게 이유였다. 서 전 교장은 "온갖 비리로 ‘바람 잘 날 없는 학교'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공립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는데, 재단과 견해를 달리해 퇴출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류 이사장은 "(직위해제는) 학교 내부 문제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세인고 학부모들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 3학년생 학부모 A씨는 “교육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재단의 비정상적 운영을 교육청이 보고만 있어 학생들만 희생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갈 때 없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세인고는 지난해 3월1일 폐교 상태인 웅촌초등학교 검단분교로 임시 이전했다. 비리, 이미지 훼손, 학교 매매·이전 추진 실패 등을 반복하면서 세인고는 2년 연속 신입생을 받지 못했다. 현재 3학년 50여 명만 학교에 남아 있다. 울산시교육청은 2021학년도 일반고 신입생 배정에서 세인고를 제외했다. 그리고 내년 2월 폐교 조치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재단의 이미지 실추로 이전할 곳이 없고 신입생도 없어 폐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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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의 삼일여고는 2020년 교육부의 건물 정밀안전진단에서 붕괴 위험 수준인 재난위험시설 D등급을 받았다.ⓒ박치현 제공

학교 건물 붕괴 위험 속, 학생 안전 심각

1993년 개교한 울산 삼일여자고등학교도 올해 신입생을 한 명도 받지 못했다. 울산시교육청이 신입생을 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일여고는 지난해 교육부 건물 정밀안전진단에서 붕괴 위험 수준인 재난위험시설 D등급을 받았다. 시교육청은 삼일여고에 대해 2년 안에 개축하라고 통보했다. 개축 비용은 100억원인데, 재단은 돈이 없어 손을 놓고 있다. 학부모 B씨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학교에 자식을 보내야 하는 부모의 조마조마한 심정을 재단과 교육청이 외면하는 것 같아 너무 원망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삼일여고는 국유지(산림청 소유) 1만500여㎡를 빌려 학교를 지었다. 하지만 2002년 자산매입 과정에서 계약이 해지됐다. 국유지 관리권을 이관받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삼일여고 재단에 19년간의 무단점유 변상금 30억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아직 납부하지 않고 있다. 학교 운영비가 바닥난 상태였다. 울산시교육청이 지난해 감사에 착수했다. 각종 비리와 부적절한 학교 운영을 적발하고, 지난 2월 임시(관선)이사를 파견했다. 재단이 더 이상 학교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실기업의 ‘법정관리’ 상태인 셈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구체적인 비리는 말할 수 없지만, 심각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위험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안전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해당 건물에 대해 긴급 구조보강을 완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4월20일 삼일여고를 찾아 교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답변할 상황이 아니다’고 거절했다. 김종섭 울산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은 “재단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교육청은 뭘 하고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특혜 의혹도 불거졌다. 국유지를 무단 점유한 삼일여고에 울산시교육청이 11억7000만원을 들여 체육관을 지어준 사실이 밝혀졌다. 김 의원은 “교육예산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 땅에 건물을 지어줄 게 아니라 사학재단 비리부터 근절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학교는 망해도 재단은 망하지 않는다. 사학재단 운영비(교사 급여 등) 대부분은 교육청이 지원한다. 밑질 게 없는 장사가 사학이란 말까지 나온다. 울산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채용 대가, 공사비 부풀리기, 학교 부지 이중계약이 재단의 돈벌이 수단이 되는 사례를 많이 봐왔다. 사학재단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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