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혈전증’ 제대로 알아야 대처 가능하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8 11:00
  • 호수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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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혈전증 관련 정보 5가지⋯이상 반응이 접종 4일째까지 이어지면 병원 찾아야 

백신 접종으로 인한 혈소판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이 온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한 달 동안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특정 백신을 맞은 후 이와 관련한 부작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유럽연합(EU) 30개국에서 보고된 혈전 생성 사례는 4월4일 기준 222건이고, 미국에서는 얀센 백신 접종자 680만 명 가운데 8명에게서 같은 사례가 발생했다.

혈전은 혈액순환을 막을 수 있는 혈액 덩어리(피떡)를 말한다. 특정 약물이 원인일 수 있고 장시간 앉거나 누워 있어도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 자체도 혈전 문제를 유발한다. 그런데 백신 접종 후 혈전 생성 사례가 나오자 세계 각국은 특정 백신을 계속 사용할지를 놓고 판단 근거를 찾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의약품청(EMA) 그리고 각 나라 방역 당국은 관련 사례를 조사했다. 아직 백신과 혈전의 명확한 인과성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 유의미한 사실은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감염병 전문가들은 혈전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기보다는 의학적으로 확인된 정보를 제대로 숙지하면 대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부작용이 보고됐다. 개인 안전과 집단면역을 위해 백신 접종을 피하기보다는 지금까지 발견한 사실들을 숙지하고 유사시에 치료를 받는 자세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아스트라제네카ㆍ얀센 백신 접종 후 혈전 생성

최근 독일과 노르웨이 연구팀은 혈전 부작용이 나타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자들의 혈액에서 혈소판을 공격하는 항체를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NEJM)를 통해 발표했다. 얀센 백신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EMA는 4월20일 얀센 백신이 혈소판 감소를 동반하는 특이 혈전과 연관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발생하는 혈전 생성 사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뿐만 아니라 얀센 백신 접종자 중에서도 나왔다. 두 백신은 제조방식이 같다. 아데노바이러스를 코로나19 항원 전달체로 쓰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전문가들은 아데노바이러스 벡터를 혈전증 부작용의 원인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들 백신은 화이자 백신이나 모더나 백신보다 유통과 보관에 용이하고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세계 각국이 사용 중이다. 얀센 백신은 다른 백신과 달리 1회 접종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발생 가능성이 드문 ‘희귀 혈전증’

그렇다고 아스트라제네카나 얀센 백신을 맞은 모든 사람에게 혈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3월22일까지 영국과 EU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2500만 명 가운데 86명에게서 혈전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들을 조사한 EMA 산하 의약품위험성평가위원회(PRAC)는 4월7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시 매우 드물게 혈소판 감소가 일어나는 혈전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백신 접종 후의 혈전증은 발생률이 매우 낮은 희귀 혈전증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WHO와 국제혈전지혈학회(ISTH)는 백신 접종 유지를 권고했다. 백신 접종으로 얻는 이득이 미접종으로 인한 위험보다 크다는 점을 고려한 판단이다. 또 희귀 혈전증이 백신 때문이라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점도 근거가 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연간 30만~60만 명이 폐와 다리 그리고 기타 신체 부위에서 혈전 증상이 보고된다. 하루 약 1000~2000건의 혈전 생성 사례가 생기는 셈이다. 

 

세계 각국이 찾은 해법 ‘연령 제한 접종’

희귀 혈전증은 고령자보다는 젊은 사람에게서 주로 발생한다는 공통점도 최근 발견한 사실이다. 이에 따라 대다수 국가는 연령별로 접종의 득실을 따져 백신 접종을 이어가고 있다. 가뜩이나 백신 부족 현상이 벌어진 데다 접종 자체를 중단하면 집단면역 형성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만든 영국과 함께 최근 우리나라도 30세 미만을 접종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조금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나라도 있다. 호주는 50세 미만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하고 이들에게는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다고 발표했다. 캐나다·프랑스·벨기에는 55세 미만을 제외했다. 네덜란드·스페인·독일·이탈리아·아일랜드·포르투갈·에스토니아·필리핀 등은 60세 미만을 배제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65세 미만을 접종 대상에서 제외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아예 중단했고, 콩고민주공화국은 예방 접종 프로그램을 연기했다.

유럽을 동서로 나눠볼 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에 연령 제한을 둔 나라는 대체로 서쪽에 몰려 있다. 폴란드·헝가리·불가리아·체코 등 이른바 동유럽 국가들은 연령 제한 없이 모든 성인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 중이다. 백신 수급에 따라 각국의 접종 전략에 격차가 생긴 것이다. 백신 접종에도 부익부 빈익빈 논리가 적용된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얀센 백신 접종자에게서도 희귀 혈전증이 발생한다는 EMA의 조사 결과가 나옴에 따라 그동안 접종을 일시 중단했던 나라들은 연령 제한을 얀센 백신 접종에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우리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있는데 접종 후 보통 1~3주, 길게는 4주 이내에 혈소판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이 드물게 생길 수 있다. 방역 당국은 30세 이상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기로 했다. 또 이미 1차 접종을 마친 30세 미만 중 희귀 혈전증이 생기지 않은 사람은 2차 접종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권고하고 있다. 이는 국가 방침이지만 접종을 시행하는 의사는 희귀 혈전증 부작용을 접종자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접종자에게 관련 증상을 잘 숙지하고 유사시 진료받도록 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귀 혈전증의 부위별 증상

희귀 혈전증은 발생하는 부위에 따라 증상이 다르다. 혈전이 뇌 정맥에 생기는 것이 뇌정맥동혈전증(CVST)이다. 뇌로 가는 혈액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뇌가 붓거나 출혈이 생기거나 뇌세포가 괴사하는 등 뇌졸중과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마비 증세나 시력 저하와 같은 신경계 이상 증상이 생긴다. 또 심한 두통이 생기기도 한다. 백신 접종 후 나타나는 일반적인 두통은 3일 정도 지나면 사라지고 타이레놀을 먹으면 증상이 완화된다. 그러나 혈전 때문에 생긴 두통은 타이레놀을 먹어도 별 효과가 없다. 

간·비장·신장 등 내장기관에서 나온 혈액이 모이는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것이 내장정맥혈전증(SVT)이다. 울혈(장기에 피가 모인 상태)과 혈액순환 장애로 복통이 발생한다. 복통이 진통제로도 회복되지 않으면 SVT를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메스꺼움이나 구토 증상도 생길 수 있다. 

혈전이 폐동맥에 생기면 폐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호흡이 힘들어지고 흉통이 생긴다. 다리 정맥에 혈전이 생기면 다리가 붓거나 통증이 발생한다. 혈소판이 감소하면 접종 부위에 좁쌀만 한 붉은 점(출혈반)이 생기거나 쉽게 멍이 든다. 김 교수는 “백신 접종 후 나타나는 일반적인 이상 증상은 3일째부터 사라진다. 접종 후 이상 반응이 4일 이후까지 이어지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 진료받을 것을 권한다. 희귀 혈전증은 백신 접종 후 보통 3주 이내에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헤파린을 제외한 항응고제로 치료

일반적인 혈전 치료에는 혈액이 굳는 것을 방지하는 항응고제를 사용한다. 그런데 사용하지 말아야 할 항응고제도 있다. 헤파린이라는 항응고제는 오히려 희귀 혈전증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헤파린을 사용할 때 드물게 혈소판 감소를 일으키면서 혈전이나 출혈이 생기는 사례가 있다. 따라서 이번 경우에 헤파린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대신 면역글로불린과 같은 다른 항응고제를 사용해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이와 같은 치료 지침을 만들어 의료진에게 배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희귀 혈전증을 예방하기 위해 백신 접종 전에 아스피린을 먹으려는 사람이 있다. 아스피린은 혈액을 묽게 만든다.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이 있을 때 타이레놀을 복용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접종 전 아스피린 복용은 검증되지 않았고 오히려 접종 후 항체 형성을 방해할 수 있어 의료진들은 권장하지 않는다. 

 

부작용을 ‘위험 경고’로 보지 못한 미국 FDA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월27일 얀센 백신의 긴급 사용을 승인했다. 승인의 근거는 4만3783명을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시험 결과였다. 이후 FDA가 공개한 결과를 보면 임상시험에서도 혈전과 혈전 색전증 부작용이 있었다. 백신을 맞은 2만1895명 가운데 14명, 위약군 2만1888명 가운데 10명에게서 각각 부작용이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FDA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중증이나 사망을 줄일 필요가 있었으므로 약 2만 명 가운데서 나온 부작용 사례를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FDA가 부작용 사례를 위험 신호로 보지 않고 노이즈(의미 없는 사례)로 판단하고 사용을 승인한 것 같다. 그러나 미국 방역 당국은 얀센 백신의 사용을 중단했다. 현실에서 680만 명에게 접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 부작용을 노이즈가 아니라 위험신호라고 인지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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