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정당’ 녹색당, 독일 정치 최강자로 떠오르다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6 11:0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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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선두 달리는 녹색당의 40세 여성 총리 후보 베어복, ‘포스트 메르켈’로 부상

올가을 치러질 총선까지 약 5개월이 남은 지금, 독일에서는 선거와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무려 16년간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후임자를 결정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메르켈은 2005년 총리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독일과 유럽연합(EU)의 중심에 서왔다.

‘포스트 메르켈’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해 제1야당인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가 일찍이 총리 후보로 낙점됐지만, 집권여당인 기민-기사련(기민당과 기사당의 연합정부)을 비롯한 다른 당에선 어떤 후보들이 등장할지 소식이 캄캄했다. 그러다 4월19일, 녹색당과 기민-기사련에서 각각 당 대표인 안나레나 베어복과 라셰트 아르민을 후보로 내세우겠다고 연이어 발표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선거판이 다시금 요동치고 있다. 독일 정치권에서는 우파(보다 엄밀히 말하면 중도우파) 성향의 기민-기사련과 좌파 성향의 사민당이 대립해 왔다. 여기에 좀 더 좌파 성향인 녹색당이 제3당의 위치에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역사상 녹색당에서 창당 후 첫 총리 후보를 배출하게 돼 관심이 커졌는데, 그 주인공인 베어복은 1980년생으로 올해 나이 40세 여성이란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가족을 꾸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녹색당을 잘 대변하는 이미지를 가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즉 가정과 직업을 다 가진 여성상을 스스로 대변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로부터 성평등을 체화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만으로 총리 후보까지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의 뛰어난 정치 감각은 일찍이 동료와 지지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왔다. 특히 녹색당과 같이 미래지향적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에서는 약점으로 현실감각의 결여가 꼽히는데, 그는 현실 감각도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28세에 이미 녹색당의 브란덴부르크 지역 대표를 역임하고, 32세에 연방의원 자리에 오른 이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2019년까지만 해도 당의 공동대표인 로베르트 하벡이 총리 후보로 더욱 활발히 거론됐는데, 베어복은 이러한 역량을 인정받아 짧은 기간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독일 녹색당 총리 후보로 지명된 안나레나 베어복 공동대표ⓒEPA연합

베어복, 스스로 성평등 체화한 인물로 평가돼

베어복은 적극적으로 기후 정책에 대한 실무를 도맡아왔다. 코로나19 창궐 이후로는 가족 및 교육 정책에 관여하고, 최근에는 특히 국방과 관련된 주제에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녹색당은 대개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에 국방이라는 주제에 주춤하는 경향을 보이거나 아예 논쟁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베어복은 달랐다. 그는 독일 연방군의 장비에 더 투자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독일군뿐만이 아닌 유럽연합 전체의 국방력 강화를 주장하며, 전쟁에 드론을 투입하는 등 전쟁의 자동화 흐름엔 단호히 반대함으로써 녹색당원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잃지 않았다.

이 외에도 베어복의 인기 상승에는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 번째는 다른 당 경쟁 후보들의 미미한 지지세다. 사민당 총리 후보인 숄츠 내무부 장관의 경우, 지난해 독일의 대형 핀테크 기업 와이어카드의 회계부정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이후 장관 역할에서도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베어복과 같은 날 기민-기사련 연정 총리 후보로 발표된 라셰트 기민당 대표 역시 심심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기득권 정당의 60대 남성 후보라는 점에서, 녹색당 40세 여성 후보인 베어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상대적으로 고루한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또한 연정 지도부에선 라셰트를 총리 후보로 선출했지만, 내부 경쟁 상대였던 마르쿠스 죄더 기사련 대표에 대한 여론의 지지세가 훨씬 더 강하다. 따라서 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실제 라셰트가 총리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이가 드문 실정이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 54%가 베어복이 총리 후보가 된 것을 긍정적으로 봤지만, 라셰트를 긍정적으로 보는 응답률은 32%에 불과했다. 한편 마르쿠스 죄더의 경우 만약 총리 후보가 됐다면 약 47%가 지지했을 것으로 점쳐졌다.

이는 연정연합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결과란 지적이 제기된다. 기사련의 경우, 바이에른 지역에서만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총리직을 맡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정국에서 죄더는 가장 우선적으로 지역 내 방역조치를 실천함으로써 다른 지역에 본보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최근 그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도 그 영향이었다. 하지만 당에서 최종적으로 그를 선택하지 않으면서, 기민-기사련 연정에서의 총리 배출 가능성은 한 걸음 더 멀어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베어복이 선전한 두 번째 이유로는 녹색당의 강세를 꼽을 수 있다. 녹색당의 위상은 이제 더 이상 제3당이 아니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은 사민당을 누르고 21석을 얻은 전력이 있다. 이후 독일 내 각종 지방선거에서도 녹색당이 제2당 입지에 올라섰다. 최근 발표되는 다양한 설문조사를 봐도, 기민-기사련은 대략 21~28%, 사민당은 13~17%지만, 녹색당은 23~28%의 지지율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녹색당이 여당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독일 국민이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후변화 및 전반적인 환경문제에 많은 각성을 하고 있는 분위기와도 관련된다. 특히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집회가 독일 곳곳에서 꾸준히 진행되면서 해당 의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은 날로 증가해 왔다. 이는 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층 주도로 사회적 논의 흐름을 바꿨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정치권은 이러한 시대정신 전환이 해당 가치를 수호하는 정당 지지율 상승으로 직결된 현상을 눈여겨보고 있다.

녹색당 시대정신에 공감 표시하는 독일 사회

베어복으로 대변되는 녹색당의 이념이 비로소 힘을 얻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기존 정당을 지지하는 많은 이가 그간 녹색당의 이상주의적 가치들이 환경은 살릴지언정 경제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주유비가 더 오를 것이고, 가뜩이나 높은 전기요금 역시 더 올라갈 것이며, 각종 기업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베어복이 당 대표로서 이끈 녹색당은 일반 시민들의 이러한 우려를 진작 파악했다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총리 후보가 됨과 동시에 베어복이 발표한 선거강령에는 청년층의 창업을 지원해 초기자본금 2만5000유로를 지급하겠다는 공약과, 관료주의를 철폐하고 디지털화를 확장하겠다는 입장이 담겨 있었다. 또한 재산세 인상을 통해 서민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안도 제시했다. 그의 발표에는 “녹색당은 친환경적인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

녹색당의 상승세는 오랜 기간 거대 기득권 정당이었던 기민련과 사민당의 축소로 이어지고, 나아가 독일 정치판 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란 관측을 낳고 있다. 현재 독일 국민의 또 다른 관심사는 어떤 당들이 서로 연정해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독일 총리의 경우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로 실시된다.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이 아니라, 독일 대통령이 추천하면 연방의회에서 투표를통해 선출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후보 개인에 대한 지지율보다는 정당의 세(勢)와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훨씬 더 중요하다. 녹색당이 지금의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해 메르켈에 이은 여성 총리를 또다시 배출할 수 있을까. 기존의 정치적 구도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지금, 독일 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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