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광풍] 파이어족 꿈꾸던  MZ세대, 文 정부에  단단히 뿔났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3 14:0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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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 정권이 우릴 가르치려 해?"…불안한 청년층의 가상화폐 투자 자화상

“코인으로 돈 벌어 핵파이어를 꿈꿨다. 친구들이 그리도 ‘하락 2파 온다. 둠황챠’라고 외쳤는데, 진짜 떡락빔을 볼 줄이야. 고대 코인 인간들은 좋겠구나. 난 그냥 원화채굴이나 하며 살란다.”

한 온라인 가상화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가 쓰는 신조어로 뒤죽박죽인 글을 직역하면 이렇다. “가상화폐로 돈 벌어 행복한 조기 은퇴를 기대했다. 친구들이 그렇게도 ‘대폭락이 온다. 도망쳐’라고 외쳤는데, 실제 폭락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비트코인 등 유명 가상화폐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좋겠구나. 나는 그냥 직장생활로 월급 받으며 살래.”

MZ세대에게 ‘가상화폐’란 희망이다. 돈벌이 수단이 변변치 않은 MZ세대에게 ‘땀 흘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 부(富)를 키우라’는 말은 ‘꼰대의 수사(修辭)’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소릴 들을 게 뻔하다.

그렇기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4월22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한 “가상화폐 거래소를 9월에 모두 없앨 수도 있다” “가상화폐 투자는 잘못된 길” 등의 발언은 MZ세대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눈에 비친 은 위원장 발언은 기성세대의 차가운 눈빛 그 자체다. 저축해 모은 돈 2000만원을 가상화폐 구입에 썼다는 직장인 김진성씨는 “일본 로또에는 세금이 안 붙는다. 왜? 꿈에 투자한 거니까. 그런데 우린 복권처럼 가상화폐에도 세금을 매긴다. 복권처럼 한탕 치기로 여기는 것 같아 열받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4월27일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4월27일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일본은 로또에 세금 안 붙인다, 그런데 코인에 세금을?”

지난 4월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 4월29일 오전 11시 현재 무려 14만5600여 명이 동의한 것도 이러한 정서 때문이다. 자신을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글쓴이의 은 위원장 사퇴 이유는 오늘날 대한민국 MZ세대의 마음을 대변한다. 글 작성자는 “4050 인생 선배들에게서 배운 것은 내로남불이며 아랫사람들에게 가르치려는 태도로 나오는 것이 대한민국을 망친 어른들의 공통점”이라고 일갈했다.

이 글은 투자를 바라보는 세대 간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4050 인생 선배들은 부동산으로 쉽게 돈을 벌었지만, 우리에겐 투기라며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덕분에 우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하나 가질 수 없는 현실이다”는 부분에선 울분이 느껴진다. 은 위원장 발언이 불러온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MZ세대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불확실한 미래이기에 ‘각자도생’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하는데 그 탈출 수단이 가상화폐와 같은 고수익 투자상품이라는 것이다. 한 대형 블록체인 기술개발 업체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가뜩이나 열받아 있는 이 세대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렸다”고 평가했다.

같은 날 똑같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비트코인을 좀 그만 건드리세요”라는 제목의 글 요지 역시 비슷하다. 요약하면 이렇다. “(문재인 정부) 임기 4년 동안 아파트 값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집이 없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벼락거지’가 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코인을 시작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김성모씨는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와중에 입으로 규제를 외치던 공직자들이 뒤로는 여러 주택을 보유하고, 공정한 토지 개발에 앞장서야 할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투기에 앞장서는 세상인데 누구에게 공정과 정의를 외친단 말인가”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가상화폐 투자를 기성세대의 문법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MZ세대가 은 위원장의 발언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 것은 철없는 자녀를 훈계하는 듯한 가부장적 화법으로 가득해서다.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가상화폐’라는 말 자체가 이들에겐 어색한 단어다. 이들은 그보단 ‘코인(Coin)’이란 말에 더 익숙하다.

연중무휴 24시간 거래…상한·하한가 규제 없어

주식, 부동산과 달리 가상화폐 시장에선 MZ세대들이 주인공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금융위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등 4대 가상화폐 거래소의 올 1분기 신규 가입자는 모두 249만5289명이었으며, 이들 중 20대가 32.7%(81만6039명), 30대가 30.8%(76만8775명)로 절반을 넘었다.

5675억3000만원으로 집계된 신규 가입자 예치금 중 30대가 약 1918억9383만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20대의 경우 9억5766만원으로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3개월 동안 증가율이 284.3%로 가장 높았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관계자는 “문의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 중 MZ세대 비중이 가장 높다”면서 “거래소 입장에서도 지금의 과열 양상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물론 IT(정보기술) 기반인 가상화폐의 고유한 투자 방식에 MZ세대가 익숙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상화폐 전문 변호사인 이재범 이재범엔비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연중무휴 24시간 내내 거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액으로 투자가 가능하며 상한선, 하한선 등의 기준이 없다는 데 젊은 층이 열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코인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최선두권에 속한다. 가상화폐 정보제공 업체인 코인힐스에 따르면,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소 시장에서 우리나라 업비트는 시장점유율이 2.97%로 4위(4월29일 오전 11시 기준)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큰 거래소는 중국계 ZBG(59.23%)다.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경우 거래되는 통화가 4월29일 오전 11시 기준 미 달러가 80.52%로 1위, 그 뒤를 6.37%인 우리 원화가 잇고 있다. 유로화는 6.15%, 엔화는 3.81%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한 가운데 특히 20대의 내림세가 크다는 데는 가상화폐 규제에 대한 반발 심리가 한몫한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은 위원장 발언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두드러진다. 리얼미터의 4월 셋째 주 조사에서 20대의 부정평가 증가율은 7.9%포인트 오른 71.1%를 기록해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여권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일각에선 노무현 정부 때 민심이반을 가속화시킨 ‘바다이야기’를 연상케 한다고 말한다.

MZ세대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FIRE’족(族)이란 말이 유행이다. 재무적 독립(Finance 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tire Early)의 합성어로 ‘대박 투자로 조기 은퇴’를 뜻하는 이 말에는 투자 성공에 대한 갈망과 냉혹한 직장생활에서 빨리 뛰쳐나와 편안하게 살고 싶은 심리가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해외 기관투자가에 맞서 적극적으로 국내 토종기업에 투자하는 동학개미나 해외 주식 직접투자에 나선 서학개미는 MZ세대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가상화폐 투자자·동학개미·서학개미의 공통점은 ‘높은 수익을 위해선 일정 부분 위험(Risk)을 감수하겠다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4월20일 공개된 신한은행의 ‘2021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 투자 비율은 38.2%로 전년 대비 8.3%포인트 상승했으며 연령대가 낮을수록 증가 폭이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주식 투자율은 39.2%로 한 해 전(23.9%)보다 가장 많이(15.3%포인트) 늘어났다. 무엇보다 20대 주식 거래자 중 85.8%가 지난해 처음으로 투자에 뛰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세대가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린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난해 말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가 펴낸 보고서(‘5가지 키워드로 본 밀레니얼 세대의 투자와 미래’)에는 MZ세대의 투자 속내가 보다 자세히 담겨 있다. 전국의 밀레니얼세대(만 25~28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8.0%가 “과거보다 경제 성장과 자산 축적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내 집 마련이 꼭 필요하다’는 응답자(70.6%) 중 ‘자신의 소득만으로 주택을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말한 의견은 70.3%를 차지했다. 또 세 명 중 한 명(31.7%)이 해외 투자를 고려해 본 적이 있거나 해외 투자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정나라 선임연구원은 “이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선 데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를 투자 기회로 삼고자 하는 의지도 있지만, 동시에 저금리 환경 및 부동산 급등으로 인한 불안감과 박탈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자산관리 전문가인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는 “MZ세대들은 주식만 해도 1000만원 미만으로 특정 종목에 ‘몰빵’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하듯 가상화폐 투자할까 우려돼

MZ세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벼락거지(넋 놓고 있다 일순간 하층민으로 떨어지는 것)’다. 그렇기에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빚투(빚내서 투자)’한다. 충분한 여윳돈도 없겠지만, 이자 등을 감안할 때 예·적금은 구시대 유물과 같은 투자상품이다. 가장 최근인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분석한 ‘청년층 고용·노동 통계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청년 4명 중 1명(22.9%)은 한 달에 한 푼도 저축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대출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전체 주식 투자자의 마이너스통장 대출 잔액은 2019년과 비교해 별 달라진 바 없었지만 20대만큼은 75만원에서 131만원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과)는 “게임 속 가상화폐에 익숙한 젊은 층은 실물화폐에 대한 감각이 무딜 수밖에 없으며, 그렇다 보니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이 빠르다”면서 “게임에서 채굴이나 사냥을 해 돈을 버는 것에 익숙한 이들이 가상화폐를 마치 게임하듯 여긴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상화폐 투자로 큰 성공을 거뒀다는 무용담만 넘쳐나면서 투자 손실에 대한 경각심이 줄어든 것도 걱정거리다. 실제로 MZ세대들이 자주 찾는 온라인 카페에선 “비트코인으로 수십억을 벌어 잘 다니던 대기업에서 나왔다”는 등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힘든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박을 좇는 사회풍조가 만연하는 것은 근로의 질을 떨어트리는 요인이기도 하다.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단어가 24시간 내내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낮과 밤이 바뀐 삶을 일컫는 ‘뱀파이어’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MZ세대들의 코인 투자 금액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본다. 표면적으론 광풍이 몰아치고 있지만, 우려를 나타내는 MZ세대 내부의 목소리도 커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까지 이어지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그보다는 수익률 하락으로 미래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서 자칫 이들 세대의 자살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한 가상화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일만 하는 코리안으로 태어난 게 불행하다. 빨리 코인 올라서 라틴 애들처럼 한 번뿐인 인생 느리게 즐기며 살고 싶다. 딱 한 번뿐인 인생인데. 삶이 개성도 없고 사는 것이 맨날 남들하고 똑같냐. 나도 빨리 파이어족,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자신의 현재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하고 싶다. 해외여행 가 보면 유럽 애들은 한 달씩 휴가 내서 여유로운데, 한국인들은 여행 가도 X나게 일정이 바쁘더라. 불쌍한 한국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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