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교수 “한국에서 아동학대는 범죄가 아니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4 10:0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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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 “아동학대 범죄자, 100명 중 99명은 빠져나간다”

“학대받는 아동에 대한 정책은 늘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시행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가 작심하고 정부의 아동학대 정책을 비판했다. ‘정인이 사건’으로 인해 법적·제도적 정비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근시안적인 정책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동학대 사범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2019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혐의자 100명 중 99명은 벌금조차 내지 않고 ‘교육’ 수준의 미미한 처벌만 받았다.

이 교수는 4월26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강력한 처벌과 함께 피해 아동의 ‘복귀’나 ‘격리’를 결정할 정교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만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정부·여당이 통과시킨 ‘정인이법’에 대해서도 “현장 경찰들에게 무거운 짐만 지우는, 정교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1~2년이 아닌, 10년 뒤를 내다본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시사저널 최준필 

아동학대 사건의 검거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실제 형사처벌 수준은 미미하다는 지적이 많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약 3만 건의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실제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는 약 1%에 그치고 있다.”

2019년 통계를 보면, 판결이 나더라도 보호처분 비율이 높은데.

“가정법원에서 아동보호 사건으로 처리된 경우다. 이것은 사건으로 처리됐다기보다는 면죄부를 줬다고밖에 볼 수 없다. 실제 형사사건으로 넘어간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중 대부분이 집행유예 판결이 나고, 징역형 이상은 극소수다.”

처벌 비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동학대를 범죄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아동학대처벌법의 목표가 ‘원가정 복귀’다. 가해자에게 형사책임을 묻기보다는 일종의 계도나 선도를 해 보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계도나 선도를 할 사안이 아닌 것도 사건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이다. ‘정인이 사건’만 해도 3번가량 내사 종결된 사건이었다. 한국에서 아동학대는 범죄가 아니다.”

정인이법 시행 이후에 2회 이상 신고될 경우에는 무조건 아동을 분리·보호 조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 신고를 무시할 수는 없게 됐다. 다만 아이들에게 일종의 ‘충격’을 줄 수 있다. 지금껏 아이들에게 ‘세상’은 부모뿐이었는데, 이제는 어색하고 무서운 사람들하고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분리의 필요성을 ‘재학대’ 여부로 판단하는데, 2회 신고가 적합한 기준인지도 의문이다. 아랫집에서 윗집의 ‘층간소음’을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도 있다. 아동학대로 인해 층간소음이 발생한다며 악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고쳐지지 않아 재신고하게 되면 2회 신고로 분류돼 분리 조치가 이뤄지게 된다. 재학대 여부에 대한 면밀한 심사가 필요하지만, 현행법은 2회 신고 시 무조건 분리하도록 하고 있다. 과잉 신고의 우려가 있다.”

정인이법도 졸속 처리된 법안이라 보는 것인가.

“맞다. 위험성 평가가 전문화돼야 한다. 위험성 평가를 강조했더니 경찰에서 급조한 ‘체크리스트’를 내밀었다. 그것을 보니 경찰 자체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종이 쪼가리가 있으면 뭐 하나. 결국 말단 경찰들에게 맡기는 것 아닌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동학대 전문인력을 지자체에 둔다고 한다. 담당자들의 전문성은 떨어지고, 현장의 저항은 심해지면서 소위 ‘개판’이 되고 있다.”

방법은 없을까.

“부처에서 조급함을 버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면밀하게 살펴 ‘10년 후’를 내다봐야 한다. 아동·청소년 사건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설계해야 하는데, ‘급한 불’만 끄려고 한다.”

외국의 경우에는 어떤가.

“외국에서는 전문가들이 모여 ‘위험성 평가’를 한다. 가정폭력이 재발할 위험성까지 판단한다. 재발 위험성 안에는 아이의 생명권 위협 여부도 포함된다. 경찰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재발 위험성 등을 평가한다.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 이웃과 학교 선생님까지 면담해 분리의 필요성을 따지는 절차가 있다. 또 이들에게는 나름의 권한이 부여돼 있다. 한국의 ‘특사경(특별사법경찰)’ 같은 권한이다. 이들은 분리 조치뿐만 아니라 친권 제한도 할 수 있다. 친권을 제한하면 국가에서 지급하는 ‘아동수당’도 중단되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조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권한도 주지 않으면서 조사만 하라고 한다.”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1차적으로 자치경찰이 아동학대 사건을 맡고, 이후에 수사로 넘어가면 국가수사본부에서 수사한다.

“자치경찰이 열심히 아동학대 사건을 조사한다 해도, 사건이 될 것 같으면 국가경찰이 모두 채가는 구조다. 만약 수사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게 되면 1차적으로 조사하는 현장 경찰이 모든 공격을 받게 된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자치경찰이기 때문이다. APO(학대예방경찰관)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현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APO를 그만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이래서야 일이 되겠나.”

재학대의 경우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인데.

“분리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라는 제도는 상담을 해서 갱생한다는 것인데, 몇십 시간 상담으로 갱생이 되겠나. 현재 시행하는 ‘조건부 유예 제도’는 실효성이 낮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학대 가해자들의 재범률이나 재학대율에 대한 통계를 내야 하는데, 다들 껄끄러우니 추적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유교적 전통’ 때문에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런 부분이 있다. 옛날에는 아동학대에 대해 가부장적 권리나 권위로 여기기도 했다.”

연예인 사유리가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아 화제가 되었다. ‘대안가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차라리 그런 형태가 낫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성숙하고, 책임질 수 있지 않나. 그럴 때 출산해야 한다. 우리의 고정관념처럼 아빠와 엄마가 무조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잘 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면 되는 것 아닌가. 부모가 한 명이거나 동성 부모라 하더라도 아이가 잘 클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아이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양육을 ‘위탁’할 수도 있다. 무조건 원가정이 좋다는 생각도 바꿀 필요가 있다. 원가정 복귀가 무조건적인 해답인지도 잘 모르겠다. 학대 가정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에이전트들은 사실상 국가 예산만 받아내겠다는 것 아닌가 싶다. 교육의 효과는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모텔에서 태어나 모텔에서 죽은 아이의 부모가 몇십 시간의 교육을 받아서 곤란함을 해결할 수 있을까. 급조한 정책은 제발 그만했으면 한다. 정책은 산으로 가고 아이들은 죽어나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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